<한국 현대사 산책 1960년대편 1권 : 4·19 혁명에서 3선 개헌까지> 강준만 / 인물과사상사 (2004)
[My Review MMCLXXI / 인물과사상사 29번째 리뷰] 내가 좀 그렇다. 뭔가 시대의 흐름을 읽는 '신기(神技)'는 갖고 있지만 대부분 '뒷북'을 치는 경우가 많다. 유행에 첨단을 걸으며 발빠르게 쫓아가지는 못하지만 대세를 판단하는데 있어 느리지만 틀림은 없는 편이다. 이런 내 성향을 아주 잘 맞추는 증거가 바로 '개정판'이다. 왠지 꽂히는 책이 있어 남들보다 뒤늦게 '책구매'를 하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개정판'이 출간하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퇴마록>이 그랬다. 물론 30년 전에 구매해서 읽은 '초판본'이 있지만, 중간에 '개정판'이 나와 구매하지 않았다가 재작년 쯤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는데, 올해 '개개정판'이 출간했다. 이런 경험이 참 많다. 이문열의 <평역 삼국지>도 '구판'을 신나게 사모으니 '새책'이 떡하니 나왔고, 공원국의 <춘추전국 이야기>도 그런 케이스다. 그런데 이 책도 올해 '개정판'이 출간했다. 한창 구판을 읽으며 올해 신나게 구매에 열을 올렸더니 '연말'이 되어서야 '개정판'이 출간된 것이다. 단순한 '표지갈이'만 하는 수준이 아니라 출간한 지 20년이 지났으니 내용도 대폭 추가한 '개정증보판'이 출간된 듯 싶다. 이참에 '구간'과 '신간'을 함께 읽어야 겠다. 시리즈가 방대한 관계로 '개정판'을 바로 접할 수 있을지는 장담하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이제 1960년대다. 4·19 혁명으로 무너진 이승만 정권으로 새로 출발한 '제2공화국 체제'로 시작했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혁명 이듬해인 1961년 5월 6일에 박정희가 이끄는 군내부의 소장파들에 의해 '군사쿠데타'가 일어나 정치권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물론 당장 체제를 전복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곧 야심을 드러냈고 정권을 탈취해 '제3공화국'을 열었다. 박정희는 자신들이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정권을 차지했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기에 국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고 정권을 빠르게 안정시키기 위해서라도 '경제성장'을 달성시켜야만 했다. 그리고 그 달성목표를 향해 무조건 돌진했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점들은 잠시 묻어두고 오직 '달콤한 열매'를 따기 위해 혈안이 되었던 셈이다. 이게 대한민국의 1960년대라고 요약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이다.
그럼 강준만은 박정희 정권을 뭐라 정의했을까? '기회주의'라고 단언했다. 사전적 의미로는 '일정한 신념이나 주관이 없이, 그때그때의 형편에 따라서 되는 대로 행동하는 사람을 가리킨다'라고 설명되었다. 허나 '기회주의'는 주체나 동인(動因)에 따라서 여러 갈래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에 박정희 정권에 대한 평가가 딱 들어맞는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묘하게 잘 어울리는 것 같지 않은가? 또한 기회주의는 부정적인 관점으로 볼 수도 있지만, 긍정적인 관점으로 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오늘날 대한민국 국민들이 '박정희 정권'에 대한 상반된 평가도 잘 설명할 수 있는 대목을 엿볼 수 있다. 심지어 개인에 따라서는 '기회주의'를 싫어하기도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읽기 시작한 야마오카 소하치의 <대망>(원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주인공 '덕천가강'도 기회주의에 끝판왕으로 평가 받는 장본인 아니겠는가. 들리는 소문에는 60, 7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이 소설에 그토록 열광했다고 하던데, 그럴 수밖에 없던 이유가 바로 '기회주의'가 판을 치던 시절이었기 때문으로 이해하면 좋을 듯 싶다.
그럼 기회주의는 왜 판을 치는 것인지 강준만의 설명을 들어보자. 한국사회에 기회주의가 난무할 수밖에 없는 몇 가지는, 첫째, 역사가 격랑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 압축적 근대화와 그에 따른 '역사 지체 현상' 때문이다. 셋째, 과도한 외부 환경의 영향이다. 넷째, 공적 영역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독특한 '소용돌이 문화' 때문이다. 라고 풀어냈다. 다른 건 이해하기 쉬우니 둘째치고, '소용돌이 문화'란 무엇인가? 흔히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고 표현하는 것처럼 한 번 휘말리면 좀처럼 벗어나기 힘든 현상을 말하는 것일테다. 바로 우리 사회문화가 그랬다는 말이다. 한국 사회의 동질성과 중앙집중성은 곧잘 '극단주의'를 낳았기 때문이다. 중간이 설 자리가 없고, 대립의 양 끝단에서 첨예하게 갈등을 불지피며 어느 한 쪽이 지쳐 떨어져 나가 죽을 때까지 아귀 다툼을 벌이고 만다. '모 아니면 도'인 상황이 너무 쉽게 벌어진다. 흔히 말하는 '치킨 게임', '승자독식 게임'이 우리 나라에서 횡행한 까닭이다. 이 때문에 외국 언론에서도 한국을 '민주주의 교과서'라면서 극찬하면서도, 한편으론 '양극단'에서 첨예하게 대립하는 세력간의 알력다툼이 빈번하게 벌어지는 것을 주목하며, 21세기 한국 같은 민주국가에서 '비상계엄'이 벌어지게 된 원인이 거기에 있다며 분석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어찌보면 위태롭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런 '기회주의의 폐해'를 너무 오래 경험한 탓일까? 남북이 대치하고 아직도 '전쟁중'인 나라인데도 이렇게나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외국인들의 눈'에는 신기하게 보여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초긴장된 상태로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론 그런 숨막히는 긴장감이 대한민국이 발빠르게 성장하는 원동력이었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긴장의 끈을 내려놓을 때가 되었다. 아니,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이제 다른 나라를 선도하는 국가로 발돋움했는데, 대한민국처럼 빠르게 성장하고 싶으면 '초긴장 속에서 살아가라'고 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지 않겠는가 말이다. 우리는 이를 '역사적 비극'으로 보고 있는데, 너희들도 비극적으로 살아보라고 조언을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럼 새로운 원동력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그걸 찾기 위해서라도 한국 현대사를 다시금 조명해야만 할 것이다. 철저한 반성 위에서만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암튼, 혁명 이후 세워진 '장면 내각 정부'에 대한 평가부터 시작해보자. 일단 장면 총리는 리더십이 부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한민국사에서 최초의 '의원내각제'가 시작부터 실패작이었느니, 대한민국은 '강력한 대통령제'가 더 잘 어울리느니 그런 평가는 논외로 친다. 어떤 민주제도를 따르던 중요한 것은 '주권'을 가지고 있는 국민들,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제대로 운용만 한다면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초의 의원내각제라는 불행에, 리더십 부재라는 불운이 겹쳐서 '혁명 이후' 한국 사회는 극도로 혼란스러웠고, 그로 인해 '5·16 군사정변(군사쿠데타)'는 필연이었다는 설명은 '결과론'일 뿐이다. 이는 오히려 쿠데타에 성공한 세력이 '승자의 역사'를 쓴 것에 불과하다고, 자신들이 한 행적을 '정당하게' 평가내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김대중 대통령의 당시 '장면 총리'를 평가한 이야기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장 총리는 보기 드물게 선량한 사람이었지만 심약하였고, 위기대처 능력에 있어서는 문제가 있었다."(<역사와 함께 시대와 함께 : 김대중 자서전 1>, 인동(1999), 146쪽) 많은 사람들이 평가하기를 장면은 정치인이 아니라 '성직자'에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했다. 실제로도 '천주교'에 몸담고 있다가 청렴하다는 평가를 받아 정치인이 된 케이스다. 개인적으로는 근면 성실 청렴 결백하고 깨끗한 사람이었지만, 정치를 하기에는 '리더십'이 심각할 정도로 부족했고, 심지어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킨다는 정보를 접하고도 "미국이 있는데 설마 쿠데타를 일으킬 리 없고, 일으켰다 하더라도 성공할 리 없다"는 식으로 정치적 감각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장면 내각'을 무능력하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리더십은 부족했더라도 성정이 깨끗한 사람이 지도자로 있으니 적어도 '부정부패'에서 멀리 떨어질 수는 있었다. 그 결과, 혁명 직후 쏟아져 나온 시민들의 불만과 그로 인한 시위 덕분에 혼란스러운 국면도 조금씩 잦아들고 있었다. 그러니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명분 가운데 극도의 정치적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는 대목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인 셈이다. 그보다는 저들의 '정치적 야욕'이 군사정변의 주요 목적이었다고 보는 것이 훨씬 논리에 맞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역사는 '군사정변'을 일으킨 세력이 정권을 잡는 방향으로 흐름을 틀었다. 한국에 연이어 대혼란이 찾아온 시점이었다. 그런데 왜 북한과 미국은 잠잠했던 것일까? 나중에서야 김일성은 그때가 절호의 기회였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지만, 북한은 명백히 오판을 했던 셈이다. 왜냐면 박정희가 잠시나마 '남로당 출신'이었다는 점에서 고무되었다고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쪽에 큰 혼란이 벌어졌는데도 '남로당의 봉기'를 기다렸다는 정황이 곳곳에서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북한 방송 청취'가 가능했었다고 한다. 이승만 시절은 말할 것도 없고, 박정희 정권 초기에도 남쪽 사람들이 '새 소식'을 접하는 방송으로 '북한 방송'이 늘 10~20%를 웃돌았다고 하니 말이다. 비단 남파 간첩이 많았기 때문이 아니라 정세가 극도로 불안했고, 정부를 100% 믿을 수 없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국민들도 나름의 '고육책'이었다. 물론 청취하다 들키면 '빨갱이'로 낙인 찍힐 위험이 크지만, 이승만을 믿었다가 제 발등을 찍힌 국민들의 감정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던 셈이다.
그럼 북한은 그렇다치고, 미국은 '군사쿠데타'를 왜 용인했던가? 미국은 애초부터 '정의로운 나라'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들에게 '정의'는 오로지 '미국 이익'이었다. 한마디로 한국 정부에 누가 권력자로 들어서던 미국의 이익에 큰 걸림돌이 없다면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이는 우리가 '혈맹'이라 부르면서 미국에 의지하고 '숭미(崇美)주의'를 가지고 있던 것에 비하면 정말 배신감과 자괴감에 빠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런 미국을 상대로 박정희 군사정권은 발빠르게 움직였다. 바로 '반공'을 국시로 못박으며 발빠르게 태세전환을 꾀했던 것이다. 이는 전적으로 자신이 '남로당 출신'이었다는 사실이 작용한 결과다. 미국의 신뢰가 없으면 자신들의 정권유지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직감하고, 빠르게 '빨갱이 색출'에 나섰던 것이다. 따라서 '혁명군'은 강력한 반공국가 건설을 표명했고, '좌익 사상범들을 체포'하고, '보도연맹 관련자들을 체포'하자. 심지어 좌파 이데올로기에 물든 지식인, 사회단체 지도자, 노조 지도자 등 사회 불만세력과 좌익 활동 경력자들을 대대적으로 수색하고 체포하는 성과를 미국에 그대로 전달했고, 미국의 환심을 사는 데에도 큰 성과를 거뒀다. 박정희는 '혁명공약 제1항'대로 반공을 국시로 확고히 했다는 것으로 미국의 사상검증을 무사히 통과했던 것이다.
이로써 북한은 착각과 오판으로 절호의 기회를 날렸으며, 박정희 정권은 발빠르게 체제 안정을 구축하는 행보를 연이어 밀어붙였다. 5월 19일 계엄사령부는 <민족일보> 폐간 통보와 함께 조총련계로부터 약 1억 환의 불법도입자금으로 발간한 것을 빌미삼아 '괴뢰집단을 옹호하는 언론'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씌워서 3명을 사형을, 5명은 중형을 선고했다. 이에 국내의 언론과 문인 들이 관대한 처분을 요청하는 진정서를 박정희 앞으로 보냈으나, <민족일보> 대표였던 조용수는 그해 12월에 사형을 집행했고, 2명은 무기징역으로 감형하는 선에서 끝냈다. 당시 32살이었던 조용수는 "민족을 위해서 할 일을 못하고 가는 게 억울하다. 정규조(친구) 동지에게 돈을 꾸어다 신문 만드는 데 썼는데, 갚아주지 못하고 가게 돼 미안하다"는 유언을 남겼단다. 이게 소위 '좌익사상'에 물들고 '국가전복'을 획책하던 심대한 문제를 일으킬 만한 '용공분자의 최후 발언'이란 말인가? 그냥 '평범한 시민'이자 언론인으로서 바른 말을 하며 올곧게 살아가려는 젊은이의 목소리처럼 들리지 않느냐는 말이다.
우리가 박정희 정권의 면면을 살펴보면, 국가적인 큰 이미지로 보면 대단히 훌륭한 업적을 남긴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허나 그렇게나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위대한 성과를 만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희생양'을 자처했던 국민 개개인에게는 비극을 넘어 참극이 벌어지는 풍경을 살펴볼 수 있다. 이승만 때에도 그랬지만, '소수'를 위해서 '대다수'를 희생시켜야 했던 우울한 역사가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셈이다. 오늘날에도 '국가'를 위해서 개인의 '희생'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수구꼴통들이 많은데, 왜 '자신'이 그 희생양을 자처하지 않는지는 참으로 의문스럽다. 전광훈 목사, 전한길 열사...당신들이 가진 '목숨'까지 내놓으라고 말하진 않겠다. 허나 당신들이 가진 '전재산', 당신 가족들의 명의로 되어 있는 '모든 재물'을 대한민국 국민들을 위해서 헌액하라. 그러면 당신들의 애국심을 쬐끔 믿어줄테니 말이다. 당신들이 찬양하는 '윤어게인'이 실현된다면 바로 그런 시대로 되돌아가게 될테니 말이다.
이런 말을 들은 수구꼴통들은 이리 항변한다. 박정희가 경제성장을 했기 때문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이렇게 잘 먹고 잘 살고 있지 않느냐고 말이다. 그러니 자본주의 만세고, 반공정신에 투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북한처럼 굶어죽기 딱 좋을테니 말이다. 이건 맞는 말일까? 앞서도 말했지만, 박정희 때 경제성장을 이룩한 것은 사실이다. 허나 '박정희'가 경제성장 시킨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 경제성장의 주체는 엄연히 '대한민국 국민들'이고, 수없이 미싱을 돌렸던 공순이를 비롯한 노동자와 땡볕에서 땀 흘려 곡식을 일궈낸 농민들이었다. 이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수출도 못했고, 먹거리 해결도 못했다. 그런데 어찌 '박정희' 혼자만의 공로냔 말이다. 물론 훌륭한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모두에 언급했던 '소용돌이 문화'도 바로 그것이 핵심이다. 구심적이 있었기에 그 중심을 향해 똘똘 뭉쳤고, 정상을 향한 일치단결이 한몫 했기 때문에 이뤄낸 '한강의 기적'이었다고 말이다. 그렇다. 그런 점도 있다. 그런데 '한강의 기적'이란 엄청난 성과조차 '소수만을 위한 잔치'에 불과했다는 지적은 어찌 대답할 것인가? 박정희 때 이룬 경제성장은 국민들의 허리띠를 졸라매서 만들지 않았느냔 말이다. 그런데 경제성장으로 얻은 열매는 누구에게 돌아갔나? 소수의 재벌들에게 '재투자'란 명목으로 대부분 돌아갔고, 국민들은 여전히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고, 반공을 위시한 공포정치로 수많은 국민들은 숨죽이며 살아야 했다.
우리는 거시적인 성과에 취해서 미시적인 문제점을 등한시 하는 경향이 아직도 여전하다. 강준만이 지적하는 '소용돌이 문화'가 그것이다. 이제 우리는 시각을 다변화해야 한다. 21세기 세계정세가 혼란할수록 우리끼리 더욱 똘똘 뭉쳐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혼란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들어서 스스로의 힘으로 헤어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이럴수록 우리는 더욱 의연해져야 한다. 성과에 환호라며 기쁨은 만끽하다가도 문제에 봉착하면 조속하게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모아야 하는 것이다. 너무 당연하지 않은가. 여전히 냉전시대의 전유물인 '남북대치'에 매몰되고, '정권다툼'에 혈안이 되고, '숭미주의'에 빠져서 대한민국이 당연히 누려야 할 모든 것을 '다른 나라(주변 강대국)들의 눈치'를 보면서 움추려들어야만 하는가? 이젠 당당히 어깨를 펴라. 이젠 대한민국이 '강대국'이기 때문이다. 전세계인들이 한국을 주목하고 있지 않은가? 부러워서 바라보는 것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강대국에게 눈치보는 나라가 아니라, 눈치 주는 나라임을 명심하라. 강력한 리더십에 의존하는 '구심력'에 만족하지 말고, 원대한 선도국가 되어 '원심력'을 발휘해야 할 때란 말이다. 그렇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