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의 동물대탐험 5 : 황제펭귄의 행진> 최재천 / 황혜영 / 다산어린이 (2024)
[My Review MMCLIV / 다산어린이 9번째 리뷰] 어린이들에게 '책 선택권'을 자율적으로 주시는 학부모들이 많다. 최근에는 자녀의 '독서교육'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 많아서 웬만한 전문가들보다 훨씬 더 탄탄한 실력을 갖춘 분들도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전문가 학부모들은 어쩔 수 없이 '도서선정'에 있어서 비효율적인 방법을 쓰시는 분들이 많다. 그 비효율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가 어린이들이 읽을 책을 '아이들의 의사'에 전적으로 맡겨놓고 학부모들은 그저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만 '검사'하는 형식으로 독서교육을 진행하시는 분들이 꽤 많다. 그도 그럴 것이 학부모들도 '맞벌이'를 하느라 독서교육까지 '전담'하며 교육을 진행하기는 무리가 있어서, 주말을 이용해서 온 가족이 다 함께 도서관에 방문해서 일주일동안 읽을 책을 싹쓸이(?) 해서 바리바리 싸들고 귀가하시는 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모아온 수확물들은 온가족이 두런두런 모여 앉아 독서삼매경에 빠지는 것도 정말이지 좋은 독서교육방법인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다보면 자연스레 '독서 편식'이 심해지고, 그로 인한 '지식 불균형'이 형성된다는 점을 간과하면, 자녀들이 학년이 올라갈수록 여러 장르의 책 가운데 '호불호'가 명백히 갈려서 애써 기른 '독서력'에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잘못된 '독서습관'으로 책을 열심히 읽는데도 별 효과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
독서로 쌓은 지식은 초등시절까지는 '문학 50%', '비문학 50%'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똑똑한 어린이로 가르치고 싶다면 '문학 30%', '비문학 70%'로 비문학 비중을 높여주는 것이 좋다. 하지만 저학년보다는 고학년부터 길러주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여기서 욕심이 나는 학부모라면 '문학 비중'을 그대로 50% 수준으로 놓은 다음에 '비문학 비중'을 80% 수준으로 늘려서 더 많은 책을 읽히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렇게 초등시절을 보낸 어린이들은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중고등시절에도 '책 읽는 습관'을 내려놓지 않게 된다. 이게 가장 중요한 포인트이며, 진정한 '독서교육의 효과'를 보게 되는 것이다. 왜냐면 초등시절에 읽은 책보다는 중고등시절에 읽은 책이 더 감명 깊게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초등시절에는 '경험'이 폭넓지 못하고 '안목' 또한 좁을 수밖에 없다보니 아무리 좋은 책을 읽었더라도 자기 스스로 '뇌 각인' 시킨 지식이 좁고 얕을 수밖에 없다. 허나 중고등시절에 읽은 좋은 책은 '평생 기억'으로 남아 성인이 된 뒤에도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 비판적 사고로 되새김하며 올바르고 올곧은 '가치관 형성(자아성찰)'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나 중요한 힘을 기를 수 있는 좋은 시절인데, 초등시절에 '읽었던 책'이라며 중고등시절에 소홀히 하면서 '독서량'도 현저히 줄여버리면 이 좋은 기회를 스스로 날려버리게 되는 셈이다.
그런데 여기서 '비판적 사고력'을 기르는데 가장 좋은 책이 '문학책'이 아니라 '비문학책'이다. 물론 문학책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아니라 비문학책 속에 담긴 '고급지식'을 많이 접할수록 '비판적 사고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문학책으로도 충분히 가능하지만, 문학은 이런 '고급지식'이 직설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비유와 상징' 같은 것으로 감춰놨기 때문에, 그걸 다시 한 번 '해석'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해석 능력을 키운다면 정말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할 수도 있겠지만, 요즘처럼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학생들에게 그걸 스스로 터득하라고 던져주기만 한다면 너무 비효율적이다. 그렇다고 '모범답안'처럼 어린왕자는 이렇게 해석하고, 홍길동은 저렇게 해석해야 한다는 식으로 정답을 정해준다면 '비유와 상징' 따위의 고급진 표현법도 더는 고급지지 않은 것이 된다. 그래서 문학은 해석이 생명이며 어려운 것이다. 남들과 똑같지 않고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창의성까지 요구하는 경향이 문학쪽에선 강한 편이기 때문이다. 허나 비문학은 '이해 요구'를 우선하기 때문에 창의력을 기를 부담을 줄여 주게 된다. 그리고 비문학 자체가 '고급 지식'으로 가득한데, 그 지식이 왜 그러한지부터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고급 지식을 습득하는데 부담이 덜하다는 것이다. 거기다 비문학적 지식이 쌓이면 쌓일수록 만물을 '이해하는 폭'이 점점 더 넓어지기 때문에, 비문학책을 한 권 섭렵할 때마다 '생각하는 힘'이 점점 더 넓어지고 강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강해진 '생각하는 힘'으로 문학책 속에 담긴 '비유와 상징'을 창의적으로 해석하게 되면 천편일률적으로 달달 외우던 '모범답안'을 넘어 자기가 이해한 세상을 상상력(창의력)으로 아름답고 화려하게 꾸밀 수 있게 된다. 이게 정말 멋지지 않은가? 그렇기에 어릴 적에 비문학책을 즐겨 읽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럼 초등시절에는 어떤 비문학책을 많이 읽으면 좋을까? 단연 '수학'과 '과학', 그리고 '예술' 분야의 책들이다. 물론 '역사'나 '정치사회' 같은 책도 읽어두면 좋지만, 가까운 미래에 '인공지능'이 발달하게 되면 이런 사회탐구적인 과목의 책들은 얼마간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으면 해결될 수도 있다. 허나 '과학탐구' 과목의 책들은 '인공지능'조차 탐구대상으로 삼을 수 있기에 좀 더 발빠르게 섭렵해나가면 가장 좋을 것으로 본다. 전세계적으로도 '이공계 계열의 인재'를 많이 선호하는 편이고, 그 가운데서도 컴퓨터, 반도체, 에너지 관련 이슈는 가장 핫한 축에 속한다. 그럼 이 책 <최재천의 동물대탐험>은 동물학, 생태학 등과 관련이 깊은 책이니 후순위로 밀리는 걸까? 그렇지는 않다. 평소 최재천 교수님이 '통섭'을 강조하면서 학문간의 경계를 허물고 '모든 지식을 섭렵'해서 통합적 사고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얘기하곤 한다. 왜냐면 요즘 학문의 트랜드가 여러 분야를 융합할 수 있는 인재를 만드는데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융합적 인재를 요즘 기업들이 선호하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한마디로 '만능 스포츠맨'처럼 과학계에서도 '만능 과학인재'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도 동물과 생태에 관한 지식만이 아니라 온갖 '첨단기기'들을 선보이며 멀지 않은 미래에 일상생활에서 쓰이고 있을 신문물을 다채롭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동물과 생태'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에게도 호기심을 자극할 테지만, 이 책에서 활약하는 탐사대원들이 쓰고 있는 물건 하나하나에 관심을 쏟으며 두 눈을 번뜩일 '엔지니어(기술자)'와 '공학자' 들이 정말 많을 것이다.
한편, 남극이라는 혹독한 자연환경에서도 살아 숨쉬는 생태계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신비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겨울을 맞은 남극대륙의 한가운데의 기온은 영하 30도 이하까지 내려가는 극한의 추위를 맛볼 수 있다. 거기다 '블리자드' 같은 눈폭풍을 만나게 되면 '체감온도'는 더 떨어져 영하 50도 이하의 강추위를 느끼게 된다고 한다. 이런 혹한의 환경에서도 생명은 꿈틀거리고 있다. 바로 '황제펭귄 무리'다. 이들은 혹한의 환경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는데, 떼를 지어 빙글빙글 도는 '허들링(최재천 이름짓기 '옹송그림')' 덕분이라고 한다. 황제펭귄의 덩치는 1미터가 훌쩍 넘어서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 정도의 몸집을 하고 있다고 한다. 거기다 피부는 두터운 지방층을 형성해서 내부의 온도를 밖으로 쉽게 빼앗기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덩치 큰 황제펭귄이 '블리자드'를 만나면 서로의 피부를 맞댈 정도로 모여들어 체온을 더 높이기 위해 '피부접촉'을 늘려 빙글빙글 무리지어 돈다고 한다. 이때 '옹송그림' 한복판의 온도는 무려 37도를 유지한다고 한다. 체감온도 영하 50도에 육박하는 맹추위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지혜를 모은 것이다. 그래도 '옹송그림'을 하는 무리 가운데 가장 바깥에 있는 황제펭귄들은 강추위에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에 체온을 빼앗길 위험에 놓이게 되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안쪽에 있는 황제펭귄과 바깥에 있는 황제펭귄이 주기적으로 위치를 바꾸며 계속 돈다고 한다. 이때 어린 새끼가 있거나 덩치가 작아 체온유지에 불리한 황제펭귄이 있다면 '옹송그림'의 안쪽에 위치시켜서 생명유지에 어려움이 없도록 도와준다고 한다.
더구나 황제펭귄의 부성애는 너무 감동적이다. 짝짓기를 한 뒤에 암컷이 하나의 알을 낳게 되면, 알이 빙하 위의 추위에 얼지 않게 곧바로 수컷의 발등 위에 알을 품게 된다고 한다. 그 상태로 수컷은 암컷이 바다에 나가 '먹이사냥'을 하고 돌아오는 2~3달 동안 알이 발등 위에서 굴러떨어지지 않게 생활해야 한다고 한다. 당연히 먹이사냥을 할 수 없는 남극대륙 한복판에 서식하기 때문에 암컷이 교대해주기 전까지 그대로 굶게 된다. 그래서 짝짓기 할 때 수컷은 덩치가 큰 놈이 유리하다고 한다. 암튼 블리자드가 불어서 '옹송그림'을 할 때에도 알을 발등에 올려두고 조심조심 하면서 돌고 잠을 잘 때에도 알이 굴러떨어지지 않도록 조심조심하며 버틴다고 한다. 만에 하나 알이 발등에서 굴러떨어지면 딱 20초가 골든타임이라고 한다. 그 시간이 지나면 알은 그대로 얼어서, 알 속에 있는 새끼의 생명도 그대로 얼어버린단다. 이런 모든 위기를 극복하고 2달을 품고 나면 알껍질을 깨고 새끼가 태어나는데, 이때 새끼가 추위에 얼지 않도록 또 수컷의 발등 위에 품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새끼가 갓 태어났으니 먹이를 줘야 하는데, 이때까지 완벽히 소화되지 않은 위속의 먹이가 있으면 그것을 게워내 새끼에게 줄 수 있지만, 대부분은 수컷의 몸무게가 반쪽이 될 정도로 쏙 빠진 상태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수컷의 위벽을 헐어서 게워내는 '펭귄 밀크(최재천 이름짓기 '펭귄 초유')'를 첫 먹이로 준다고 한다. 정말이지 자신의 생명을 갉아내며 새끼를 살려내는 생명의 신비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게 겨우내 알을 품고 새끼를 길러낸 수컷은 마침맞게 돌아온 암컷과 '바통 터치'를 하고, 수컷은 '먹이 사냥'을 떠나고, 암컷은 자신이 사냥한 먹이를 게워내서 새끼에게 먹이는 일을 3년 동안 계속한다고 한다. 그리고 드디어 솜털을 털어내는 어른 황제펭귄이 된 새끼들은 바닷속으로 첫 사냥을 떠나며 새로운 세대 교체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아름답고 감동적인 생태의 현장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지구온난화로 남극의 기온이 올라가는 바람에 '도둑갈매기' 같은 천적이 극성을 부려 황제펭귄이 남극대륙 더 깊숙한 곳으로 이동하는 바람에 먹이사냥을 하는데 '이동 거리'가 늘어나서 굶어죽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단다. 그리고 이 책에서도 알 수 있는 내용으로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빙벽 붕괴'로 인해 황제팽귄 서식지가 통째로 떨어져 나가 차가운 바닷물 속으로 빠지게 되었고, 아직 솜털도 벗지 못한 새끼들은 '방수 기능'이 없기 때문에 헤엄을 치지 못해 물에 빠져 죽거나 '저체온증'으로 얼어죽고 마는 불상사가 일어났다고 한다. 이대로 기후위기가 더 심해지게 되면 황제펭귄은 결국 멸종할 수밖에 없는 위기에 내몰리고 말 것이라고 한다.
우리 지구엔 수많은 생물이 살고 있기에 '한 종의 멸종'은 별 것 아닌 것으로, 큰일이 날 것도 없는 심각성 없이 받아들이곤 한다. 허나 한 종의 멸종은 생태계의 파괴를 부른다는 점에서 우리는 심각성을 넘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한 종의 멸종은 단순히 '먹이사슬' 한 가닥 끊어지는 것에 불과한 게 아니다. 먹이사슬은 여러 개가 얽히고 설켜 있기에 '먹이 그물'이라 부르고, 그 그물의 일부가 망가지게 되면 '전체적인 붕괴'의 시작으로 보는 것이 옳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지금까지 '다섯 번의 대멸종'을 겪었다. 그리고 대멸종을 겪을 때마다 '기존의 생태계'는 완전히 아주 화끈하게 붕괴되었고,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새로운 생태계'가 구성될 때까지 엄청난 변화를 보여왔다. 그럼 우리 인류가 겪게 될 '여섯 번째 대멸종'을 맞이한 뒤에는 인간의 운명은 어떨까? 간단히 말하자면 '인류'도 당연히 멸종하게 된다. 이것은 분명 최초일 것이다. 지구상의 어떤 생물도 '대멸종'을 스스로 불러오지 않았는데, 오직 인류만이 자신의 멸종을 자신이 불러오게 되는 최초이자 유일한 종일테니 말이다. 멸종은 이미 시작되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되도록 그 멸종의 시각을 최대한 늦추는 방법 뿐이다. 뭔가 황제펭귄에게서 얻은 지식이라면 그 멸종을 최대한 늦출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이 책 속에서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