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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채사장의 지대넓얕 10 : 거인의 어깨
  • 채사장.마케마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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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6-18
  • : 9,048

<채사장의 지대넓얕 10 : 거인의 어깨>  채사장, 마케마케 / 돌핀북 (2024)

[My Review MMLXV / 돌핀북 10번째 리뷰] 인간은 미약한 존재다. 광활한 우주 속에 있는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우리 은하'의 날개 한 쪽 끄트머리에 있는 그리 밝지 않는 주황색 별 태양계의 세 번째 행성에 살고 있는 그리 강하지 않은 생명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딴에는 '만물의 영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높은 지능을 뽐내며 '지구의 주인' 행세를 하기도 했었지만, '아는 것'이 점점 더 많아진 오늘날에는 지구 상에 살고 있는 수많은 생명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고, 한껏 겸손을 떨고 있는 상황이다. 그도 그럴 것이 태풍이나 홍수, 화산과 지진, 그리고 가뭄과 기근, 하다 못해 병충해와 바이러스의 공격(?)에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절실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게나 인간은 허약하고 보잘 것이 없다.

그런데 말이다. 그렇게 미약한 존재에 불과한 인간이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는 순간에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된다. 인간은 직립보행을 하며 '두 손'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지능을 발달시켰고, 그렇게 발달된 지능으로 '지식'을 축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인류는 그렇게 하나둘 쌓은 '지식'을 허투루 버리지 않고 차곡차곡 쌓아나갔다. 물론 하릴없이 쓸모 없는 지식 나부랭이에 불과한 것들도 상당했다. 하지만 인간은 옥석을 가려가며 끝없이 지식을 축적해나갔고, 그렇게 쌓인 지식은 어느새 '거인'이라 부를 만큼 거대해지게 되었다. 아니 애초에 인간이 쌓아올렸다고 생각한 지식도 원래부터 있던 지식에 불과하다. 인간은 오랜 세월동안 그 지식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을 뿐이고 '과학적인 관찰(경험론)'과 '논리적 유추(합리론)'를 거듭하면서 그 '거인(지식)의 존재' 알아챈 것이다. 천재 과학자 뉴턴은 말했다. 자신이 이룬 과학적 업적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선 덕분이라고 말이다. 뭐, 뉴턴의 경우에는 겸손한 척하기 위해서 한 말이 아니라 그런 '거인의 존재'를 알아보고 그 '거인의 어깨'에 올라선 것은 '나나 되니까 가능했던 거야'라는 뜻으로 말했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인간은 '거인 버프'를 받고 난 다음의 위상이 전혀 다른 존재가 되곤 한다. 그런 버프를 맘껏 누린 '과학적 인물들'을 만나 보자.

첫 번째 인물은 '천동설'을 주장한 프톨레마이오스다. 천동설은 우주의 중심이 '지구'이고, 지구 주위를 '다른 천체'들이 완벽한 원 운동으로 돌고 있다고 주장한다. 사실 '천동설'은 프톨레마이오스가 처음 주장한 것은 아니고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때부터 이미 주장 되었던 학설이었다. 그걸 프톨레마이오스가 체계적으로 정립을 하였고, 제대로 된 관측 시설도 없었던 시절에 '천체의 움직임'을 이론적으로 설명했다는 것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사실 '천동설'은 오늘날에도 들으면 믿을 수 있을 만큼 체계적이다. 맨눈으로 관측한 결과만으로는 '천동설'로도 충분히 설명 가능하기 때문이다. 단지 그 시절에는 '지구가 돌고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너무 부족했기 때문에 천동설이 더욱 빛이 날 수 있었던 셈이다. 그래서 '천동설' 자체만 놓고 본다면 과학계에서 엄청난 성과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고, 2세기 때의 천문학 지식을 모아서 <알마게스트>라는 책을 써낸 것은 정말 위대한 업적이었다. 그런데 옥에 티라고나 할까? 천동설은 당시의 '종교의 가르침'에 너무 잘 맞아 떨어진 것이 문제였다. 신이 세계를 창조하고 인간을 만들었다고 믿었던 종교관과 '인간'을 우주의 중심으로 붙박이로 고정해 놓은 '천동설'은 너무 찰떡 같이 들어맞았기에 무려 1400년 간이나 유럽인들에게 '당연한 진리'로 받아들여진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두 번째 인물은 '지동설'의 근간을 마련한 코페르니쿠스다. 그는 신학자로 평생을 살았지만 자신이 '직접 관찰한 천체의 움직임'과 <천동설>의 내용이 너무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고심하게 된다. 신앙심이 투철했던 코페르니쿠스는 '신 중심의 세계관(중세시대)'을 온전히 벗어날 수 없었는데, 자신이 직접 '경험'한 내용은 그 세계관과 너무 달라서 고심에 빠진 것이다. 여기서 영국의 신학자 '윌리엄 오컴'이 말한 '오컴의 면도날'을 적용해볼 수 있다. 오컴의 면도날이란 '단순한 것이 진리에 가깝다'이라는 뜻으로 '객관적인 이론'을 탐구하는 방법을 여는 계기를 마련했기에 자주 거론되곤 한다. 이를 테면, '천체의 움직임'을 설명할 때,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처럼 태양을 중심에 놓으면 나머지 천체의 움직임이 간결하게 설명되는데 반해서,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처럼 지구를 중심에 놓고 천체의 움직임을 설명하려면 더 많은 부연설명을 해야 겨우 맞아 떨어지게 되기 때문에 '오컴의 면도날'을 적용하면 천동설보다 지동설이 더 효율적으로 설명 가능하므로 '진실'에 가깝다는 사고 방식을 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기존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집는 경우에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라고 부르곤 하지만, 사실 코페르니쿠스가 망설이다가 내놓은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는 그가 죽고 난 뒤에도 크게 논란이 되지는 않았다. 훗날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그의 책을 빌어서 '지동설'에 대한 확고한 증거를 내놓게 되자, 교황청은 부랴부랴 갈릴레이를 '종교재판'에 회부하고 코페르니쿠스의 책까지도 '금서 목록'에 올려놓게 된 것이다. 왜 그랬을까? 코페르니쿠스는 기본적으로 신학자였기 때문에 좀 더 간결하게 '천체의 움직임'을 설명할 수 있는 지동설을 주장하긴 했지만, 지동설을 뒷받침할 만한 '명백한 증거'를 함께 내놓지는 못했다. 그저 직접 관찰을 해보니 그렇더라는 정도로 저술한 덕분이다. 그렇지만 갈릴레이는 달랐다. 그는 명석했기 때문에 '완벽한 수학적 계산'을 해냈고, 그 근거를 바탕으로 천체의 움직임을 조목조목 설명하며, 천동설이 틀렸고 지동설이 맞다는 것을 널리 알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가 직접 쓴 <두 개 체계에 대한 대화>에서 천동설을 믿는 교황을 우스개로 조롱하고 지동설을 주장하는 자신이 이를 가르치는 대화 형식으로 적나라하게 써놓았기 때문에 '교황청'은 갈릴레이를 화형시킬 목적으로 종교재판에 회부했던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당시 교회는 '마녀재판'을 일삼으며 교회의 지위를 악용해서 '근대의 계몽'을 막아보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하마터면 갈릴레이도 그 희생양이 될 뻔 했고 말이다. 이렇게 '과학적 관찰(경험론)'과 '수학적 근거(합리론)'까지 모두 마련해서 체계적으로 과학의 발전을 앞당긴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세 번째 인물로 삼았다.

다음으로 네 번째 인물은 르네 데카르트다. 각설하고, 그가 위대한 과학자로 손꼽히는 까닭은 바로 '좌표평면'을 만들어서 '기하학'과 '대수학'을 하나로 묶은 '해석기하학'을 창시했기 때문이다. 이는 대단한 발견으로 데카르트 이전에는 원이나 삼각형과 같은 '기하학'은 기하학대로, 상수와 변수로 수식을 표현한 '대수학'은 대수학대로 따로 발전했지만, 데카르트 이후에는 '좌표평면'을 이용해서 원, 삼각형, 직선, 곡선 같은 기하학으로만 표현되던 것을 '숫자와 문자'로 표현하며 대수학처럼 계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로써 '수학의 언어'는 더 복잡한 세계까지도 다채롭게 표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기에 데카르트의 업적은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에서 마지막으로 다루고 있는 인물은 아이작 뉴턴이다. 그가 위대하다고 평가받는 까닭은 아무리 어렵고 복잡한 자연현상이라도 그걸 '수학적 언어'로 표현하고, 심지어 정확한 계산까지 해내었기 때문이다. 그가 발견했다고 하는 '만유인력의 법칙'도 모든 물체가 서로 끌어당기는 힘(인력)을 가지고 있다. 그 가운데 엄청나게 큰 천체(중력)는 더 무거운 질량을 갖고 있기 때문에 더 큰 힘으로 끌어당긴다. 하지만 멀리 떨어져 있으면 그 힘도 약해지기 때문에, 인력은 '질량'에 비례하고 '거리'에는 반비례한다는 유명한 공식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뉴턴이 천재라고 칭송 받는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 어떤 자연현상이라도 간단한 수식(수학공식)으로 표현해내는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고대부터 근대까지의 '과학사'를 살펴볼 수 있는 이 책은 '단편적인 지식'을 아무런 이유도 알려주지 않고 그저 중요하니 무조건 암기하라는 식으로 쓰여 있지 않다. 우리가 초중고 12년 동안이나 공부에만 매진했는데도 성인이 되었을 때 '교과서'의 내용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까닭도 바로 이 때문이다. '교과서'가 엉터리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우리가 배운 '지식'을 거의 다 까먹은 것이 아니라, 그 지식이 '왜' 중요한지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무작정 외우기만 한 지식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은 왜 중요한가? 별다른 관측 장비를 갖추지 않고도 '이론적'으로 정립하고 맨눈으로 보이는 '천체의 움직임'을 척척 설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식을 배울 때 '진리 탐구'를 최종 목적으로 하지만, 그 진리에 다가서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바로 '이론 정립'이다. 그러고 난 뒤에 '그 이론'이 맞는지 틀리는지 검증을 하면서 연구를 더욱 깊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천동설'은 지금은 틀린 이론이지만 우리에게 아주 귀중한 영감을 준다. 만약, 학창시절에 이런 식으로 '천동설'에 대해서 배웠다면 성인이 되어서도 결코 잊지 않았을 것이다. 인류 최초로 '과학이론 정립'에 상당 부분 부합하는 설명을 했다는 점에서 위대한 업적임에 틀림없다. 그렇기에 우리가 '틀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꼭 알아두어야 할 '지식'이라고 가르쳤다면 오래오래 기억하는 학생들이 참 많았을 것이다.

이 책은 바로 이런 방식으로 설명해주고 있기에 대단한 책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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