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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퇴마록 국내편 1
  • 이우혁
  • 8,550원 (10%470)
  • 1994-01-01
  • : 933

<퇴마록 국내편 1 : 눈뜨라고 부르는 소리 있도다>  이우혁 / 들녘 (1994)

[My Review MMXXIX / 들녘 5번째 리뷰] 정말이지 2025년은 '퇴마록의 부활'을 알리는 새로운 기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애니메이션이 제작되어 개봉하고, 또 <퇴마록 말세편>의 후속편이 조만간(6월 예정) 출간된다고 하니 말이다. 작년에 우연히 꺼내든 <퇴마록>으로 리뷰를 하고 있던 것이 참으로 마침맞게 딱 떨어져 더욱 생생하게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더구나 이번에는 '오디오북'까지 오픈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오디오북'으로 감상을 시작하다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장'하고 있던 <퇴마록>을 꺼내서 펼쳐놓았다. 그리고 눈으로 듣는 듯 생생하게 펼쳐지는 감동을 만끽했다. 더구나 애니메이션을 극장에서 관람하고 왔기에 내 눈앞에는 '이미지 영상'까지 화려하게 펼쳐지는 듯 했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읽고 또 읽으며 상상만 했던 일이 무려 30년 만에 실제로 내 눈앞에서 펼쳐지게 된 것이다. 정말 감동이다.

이번에 '오디오북'에 참여한 성우진들은 내게는 꽤 낯선 분들이었다. 하긴 내게 익숙한 성우 분들은 빨간머리 앤의 '고 정경애'분, 달려라 하니 홍두깨 선생님의 '고 장정진', 그리고 맥가이버의 '배한성' 성우이니 말이다. 암튼 박신부 역에 '곽윤상 성우', 이현암 역에 '민승우 성우', 장준후 역에 '김율 성우', 현승희 역에 '이주은 성우', 그리고 나레이션에 '장민혁 성우'가 참여했단다. 지금은 낯선 분들이지만 앞으로는 기억할 것이다. 내게 <퇴마록>은 영원할테니 말이다. 지금도 '내 기억'속에는 어릴 적 성우 분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리곤 한다. 그것처럼 <퇴마록>도 그러할 것이다.

그럼 도대체 왜 <퇴마록>에 열광할 수밖에 없을까? 94년도에 군생활을 하고 있을 때,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만해도 그저 '세기말 현상'으로 여겼을 뿐이다. 새천년을 맞이하기 전에 '세기말 분위기'가 정말 판을 쳤기 때문이다. 나라꼴도 엉망이어서 '삼풍백화점'이 폭삭 무너지더니 뒤이어 '성수대교'까지 아침 출근시간이 막 끝나갈 무렵에 들려온 소식에 정말이지 흉흉하기 짝이 없었다. 더구나 군을 제대하고 복학을 하니 IMF시대가 똭하고 차려졌다. 거리마다 노숙자들이 넘쳐났고 취업을 알아보고 있던 시절인데 기업들마다 '부도'할지도 모른다는 뒤숭숭한 이야기만 들려오던 우울한 나날이었다. 95년도만 해도 'OECD 가입'이라면서 선진국 운운하던 분위기는 어는 순간부터 싹 사라지고 '국가부도'라는 비상사태가 펼쳐지던 우울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젊은 청춘이었던 내 또래들은 넘쳐나는 에너지를 쏟아낼 곳이 필요했다. 가뜩이나 오렌지족이니 낑깡족이니 하면서 고급(?)지게 놀고 자빠졌어야 할 나이였으니 뭐라도 해볼 탈출구가 필요했었다. 그 당시의 나는 '가난'이란 짐을 짊어지고 있었기에 누군가처럼 흥청망청 노닐 수는 없었다. 그래서 빠져든 것이 '판타지 세계'였다. 무일푼이던 내가 빠져들 수 있는 '최적의 코스'였다. 그렇게 나는 당시 한국사회에서 찾아보기 힘들던 '새로운 세계'로 탈출 아닌 도피를 한 셈이다.

그러나 그렇게 도피처럼 마주한 '판타지 세계'는 아주 놀라운 세상이었다. 더구나 '한국형 판타지'가 이제 막 시작되는 <퇴마록>의 기세는 날마다 기록을 갱신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만해도 '온라인 서점'이 없었기에 대형서점부터 동네서점까지 <퇴마록>은 들여오기 무섭게 팔려나갔다. 조금만 늦어도 '재고'가 부족해서 몇 주를 더 기다려야 할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아예 '신간출간' 소식이 들리고 한참 뒤에 서점에서 느긋하게 사모으기 시작했다. 당시엔 정가 5500원이었고, 동네서점에선 단골손님에게 500~1000원 정도 깎아주었기 때문에 나는 4500원 정도에 샀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그 정도도 내겐 부담스런 가격이었다. 라면 하나가 200원 하던 시절이었으니 그 돈이면 라면 20개를 사먹을 돈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퇴마록>을 사모으는 것에는 아깝지가 않았다. 분명 읽고 또 읽을테니 말이다. 그때 정말 이 책을 얼마나 즐겨 읽었는지 셀 수 없을 정도다. 그만큼 좋았다. 현실세계의 비극을 다 잊고 살 정도로 말이다.

그럼 나는 이 책에서 무엇을 읽었나? 어릴 적부터 '오컬트 장르'를 무척이나 좋아했기 때문에 종교의 신비주의, 초능력과 고대주술, 그리고 무협의 세계는 '내 전공분야'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너무너무 심취했었다. 그래서 박신부의 기도력, 이현암의 초월한 무공, 장준후의 화려한 주술력, 그리고 현승희의 아바타라와 마음을 읽어내는 초능력이 내 눈을 완전 사로잡았다. 하지만 좀 더 읽어나가다보면 그것만이 <퇴마록>의 전부가 아님을 깨닫기 시작했다. 바로 지옥불에 타죽어도 시원치 않을 악당들조차 불쌍히 여기고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퇴마사'들의 행보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서양의 퇴마사들은 악당이라면 그저 처치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고 절대로 용서하는 법도 없지 않은가 말이다. 근데 '퇴마사'들은 그렇지 않았다. 천인공노할 끔찍한 죄를 저질렀는데도 그들의 죄를 '심판'하지 않고, 인간이기에 도리어 '죽을 위기'에서 목숨을 건져내곤 한다. 그로 인해 자신들의 '안위'는 걱정도 하지 않고서 말이다. 이게 도대체 말이나 되는 소린가 싶었다. 처음엔 말이다.

퇴마사들이 가진 능력은 슈퍼맨이나 배트맨이 지닌 초능력을 능가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에 못지 않은, 아니 슈퍼맨이나 배트맨은 할 수 없는 '원혼들의 저주'로부터 죄 없는 사람들을 구원해주는, 아니 '죄 많은 사람들'마저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희생하면서 구원해주려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세상 모든 '원죄'를 한 몸에 지고서 수많은 사람들이 지은 죄를 '대신' 속죄하고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신 거룩한 예수 그리스도의 현생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말이다. 그래서 <퇴마록>을 거듭해서 읽으면서 이런 '퇴마사들의 행보'를 이해하려 했으나 젊은 시절의 나로서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더욱 퇴마사들의 손발놀림 하나하나가 숭고해보였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들이 하는 일이 매우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일이라는 것에 눈을 떴던 것이다.

여중생을 납치해다가 성폭행을 저지르고 술집 접대부로 팔아넘기거나 외국 성매매업소에 팔아치우던 인신매매범이 처참한 꼴로 하나씩 죽어가는 사건이 벌어졌다. 경찰은 원인을 알 수 없어 수사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었지만, 애초에 죽어 마땅한 죄를 지은 놈들이니 꼴좋다고 남몰래 속시원해 하고 있던 사건이 생겼다. 이를 파헤치는 기자들도 사건의 내막을 파헤치면서 '사필귀정'이라 대대적인 보도는 하지 않고 있지만, 너무도 끔찍하게 살해된 시신들을 보면서 절로 욕지기가 나오는 상황이었다. 이런 사건 소식을 접한 당신이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죽을 죄를 지었으니 당연히 죄값을 치뤄야 하는 것이 맞긴 한데, 사람이 벌을 주면 이런 끔찍한 짓을 저지른 놈일지라도 '저지른 죄'에 비해 '형편 없는 벌'을 받고 풀려났을 거라고 분개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억울하게 당한 '피해자'만 불쌍히 여기고, 자신은 이런 불행한 일이 벌어지지 않기 만을 바라는 것에서 그치고 말 것이다. 그런데 퇴마사들은 그렇게 죽어 마땅한 놈일지라도 일단 그들이 '사람'이 아닌 '귀신'에 의해서 처참하게 죽어나간다면 옳지 못하다면서 자신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원귀'의 행위를 막고 한을 풀어준 뒤에 극락왕생할 수 있도록 귀신을 제자리로 되돌려 놓는다.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목숨이 위태롭고, 자신들의 영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어서 죽을 고비를 수차례 겪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 여기고 묵묵히 제 할 일을 할 뿐이다.

퇴마사들은 왜 그러는 걸까? 그냥 원귀가 나쁜놈들을 죽여버리면 속시원하고 좋을 텐데 말이다. 한마디로 '권선징악의 표본'이 아니겠느냔 말이다. '천벌'도 그러한 원리이고 말이다. 그런데 퇴마사들은 '이세상 일'은 이세상 사람들이 '저세상 일'은 저세상 귀신들이 따로따로 분리하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 아무리 이세상에 문제가 많더라도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저세상의 힘'을 빌려오는 것을 막으려 한다. 그게 '순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의 흐름을 자연 그래도 두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간혹 너무 적거나 너무 많아져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물의 흐름대로 놔두면 자연스레 해결될 일이다. 이때 사람의 개입을 해서 '물의 방향'이나 '물의 길'을 살짝 바꾸는 정도는 할 수 있다. 그게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말이다. 그런데 사람의 욕심이 끝이 없어서 '물의 흐름'을 거슬러서 아예 반대로 흐르게 하거나 꽉 막아버리려 들면, 이는 뜻하지 않는 큰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럴 때 '퇴마사'들이 등장해서 물의 흐름을 원래대로 바꾸어 놓는 것, 이게 '이야기의 핵심'이다.

기본적으로 퇴마사들의 행보는 '자연 그대로'를 추구하려 하고, 그 다음에는 '인간에게 이로운 방향'을 추구한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아무리 사람을 이롭게 한다고 해도 그것이 '천기'를 거스르는 일이라면 막으러 나서고, 아무리 사람을 이롭게 한다고 해도 그것이 이세상이 아닌 저세상의 힘을 빌어서 하는 일이라면 결단코 막아선다. 왜냐면 세상의 기운이라는 것이 '조화'를 기본으로 삼기 때문에 '한쪽'이 이익을 얻으면 '다른쪽'은 손해를 보기 마련이다. 그럼 그 손해 본 쪽에서 손해 본만큼 다시 원상태로 되돌리기 위한 '힘의 작용'이 생겨서 조화를 깨뜨리게 된다. 그리고 그 조화가 깨지는 순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원치 않은 피해를 볼 수도 있기에 퇴마사들은 그런 '조화'를 깨뜨리려는 세력들에 대해 자신들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막아선다. 정작 퇴마사들은 원하는 것도 하나 없이 말이다. 그저 애꿎은 사람들이 희생 당하지 않는 것으로 만족할 따름이다. 자신들은 죽다 살아나는 위험천만한 일을 겪으면서도 말이다.

나는 이 부분에서 눈물이 났다. <퇴마록>을 읽으면서 울었다는 사람은 본 적이 없는데, 난 울었다. 내게는 그냥 재미만 주는 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퇴마록>의 '구판'이지만, '최신판'이 나오기에 앞서 다시 한 번 싹 정리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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