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eview MCMXXXIII / 위즈덤(Wisdom) 6번째 리뷰] 드디어 '적벽대전'이다. <정사 삼국지>에서는 적벽대전을 그리 자세히 다루진 않는다. 제갈량과 주유의 피말리는 견제도 없었고, 책략도 없이 그저 '황개'의 고육지책과 화공작전이 성공을 이루었다는 대목이 나올 뿐이다. 거기다 '적벽대전'으로 조조군이 대패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화용도에서 구사일생을 살아돌아왔다는 대목도 없다. 그저 퇴로길이 험난했다는 정도로만 서술되어 있다. 실로 밋밋하기 이를 데 없을 정도다. 그런데 <삼국지연의>에서는 그 화려함과 장엄함이 극치에 다다른다. 바야흐로 유비가 제갈량을 얻고서 '화려한 비상'을 하는 대목인 까닭이다. 그렇기에 나관중은 '적벽대전'에 공을 많이 들였다. 황개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화공작전'을 주유의 이간계와 제갈량의 동남풍, 그리고 방통의 연환계까지 끌어들여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대작으로 승화시켰다. 그러니 '적벽대전'을 제대로 즐기려면 실제 역사적 사실에 심취해 '팩트체크'를 하면서 읽으면 겁나 재미가 없다. 사실 '제갈량의 등장'서부터 팩트체크는 오히려 <삼국지>를 읽는 재미를 반감시킬 것이다. 그러니 <삼국지연의>에 충실하게 읽으며 '나관중의 의도'가 무엇인지 곰곰이 사색해보는 것이 훨씬 더 값어치 있는 독서가 될 것이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연의적 사고'로 서술하려 한다.
실상 '적벽대전'의 승패는 이미 결정난 것이나 진배 없다. 그럴 까닭은 조조군이 100만 대군을 이끌고 강남으로 진출하려 했으나 대부분 '수전 경험'이 전무한 기마병과 보병 중심의 편대였다. 물론 이 100만 대군이 장강(양쯔강)을 무사히 건너기만 한다면 강 건너 '강동땅'은 조조의 수중에 고스란히 넘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강동의 손권 휘하에는 '수전'에 능한 장수가 차고 넘쳤다. 심지어 '해적질'을 일삼던 무장들도 넘쳐났다. 그러니 조조가 강 위에 배를 띄우기만 하면 손권의 수군은 이들을 차례차례 격파하는 방식으로 강동땅에 상륙조차 하지 못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흔들 것이니 어찌 쉬이 승리할 수 있었겠는가. 이를 고심한 조조는 항복한 형주의 무장들을 수군제독으로 삼아 '수군 훈련'을 독려했지만, 그게 어디 하루이틀만에 숙련될 성질의 것일까? 조금만 연상을 떠올려도 쉽게 이해가 된다. 배를 타본 적이 없는 사람은 배가 조금만 흔들려도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갑옷을 입고 완전무장을 한 채 '흔들리는 갑판 위'나 '물속으로 떨어지기'라도 하면 그대로 죽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단지 조조가 믿을 구석은 100만이라는 어마어마한 병력이다. 도강을 하기도 전에 그 가운데 반이 수몰된다 하더라도 50만의 대군이 강동땅으로 밀고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손권군의 전체 병력보다 4~5배나 더 많은 수다.
그럼에도 조조군이 쉽사리 강동을 공략하지 못한 까닭은 조조군에 '풍토병'이 돌았기 때문이다. 낯선 환경에 놓이니 전투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기온'과 '습도', 그리고 '음식과 물' 사뭇 달라지니 메마른 화북지역에서 말달리던 병사들이 축축하고 무더운 더위에 쉬이 지쳐버리고 음식도 입에 맞지 않으니 하나둘 질병에 걸려 쓰러졌던 것이다. 더구나 이렇게 '전염병'이 창궐하면 삽시간에 전군에 퍼져나갔을테니 조조군의 사기는 날로 떨어졌을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손권군에 비하면 대군이다.
그래서 주유는 계책이 필요했던 것이다. 조조의 수군책임자를 계략으로 죽여버리고, 방통의 도움을 받아 거짓정보를 그럴듯하게 믿게 만들었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화공으로 조조군을 삽시간에 괴멸시킬 전략을 다 짜놨다. 여기에 딱 하나 모자란 것이 바로 '동남풍'이었다. 당시 계절은 겨울로 접어들어 '북서 계절풍'이 계속 불던 때였다. 이런 바람이 쉬지 않고 불어오면 조조군의 배에 화공 계책을 쓰더라도 몇몇의 배에만 피해를 줄 뿐, 오히려 남동쪽에서 공략을 해가는 손권의 수군이 더 큰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화공을 쓰지 않자니 병력수에서 밀리는 처지에서 맞붙어 싸우는 것으로는 희생이 너무 클 것을 감수해야 한다. 그렇게 한두 번은 막을 수 있다손치더라도 '엄청난 수적 우세'로 밀어붙인다면 아무리 수전에 능한 손권군이라고 하더라도 끝내 중과부적으로 밀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화공은 필수다. 그렇다면 '동남풍'이 불어주어야 하는데, 때마침 제갈량이 기문둔갑술을 배웠다면서 '동남풍'을 사흘간 불게 해주겠다고 약조한다. 주유는 뛸 듯이 기뻐한다.
그런데 기실 주유가 겨울철에 '동남풍'이 잠시나마 분다는 것을 몰랐을 리 없다. 주유 같은 뛰어난 책략가가 당시 '기상변화'는 필히 숙지하고 있을 터인데, 동남풍이 불 것이 틀림없다고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제갈량의 허풍에 주유가 그냥 속아준 것이라고 보아야 할까? 그건 아닌 듯 싶다. 그렇다면 주유가 제갈량을 죽이고 싶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자신도 아는 지식을 가지고 허세를 부리는 제갈량이라면 그저 그런 책사에 불과했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주유의 예상대로 '동남풍'이 불 시기가 되었는데도 불지 않은 기상이변이 있었기에 속이 탔을 것이다. 그래서 초조했고 급기야 병석에 누울 정도로 중압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제갈량은 '그런' 기상이변까지 속속들이 짐작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 시기까지 정확히 알고 있었고 말이다. 그래서 제갈량은 호언장담을 했고, 주유는 자신도 모르는 '날씨의 조화'까지 꿰뚫고 있는 제갈량을 죽여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이쯤 되면 주유는 '2인자의 지위'에 만족했어야 한다. 사실 주유가 손책과 의형제라는 것을 감안하면 제갈량과 방통에 비하면 '연배'가 더 많았을 터다. 그럼 인생선배로서 젊은 새물결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재주를 활용하여 공을 세우는 '지휘감독의 자리'에 만족했어야 마땅했다. 그래야 동오의 관점에서 훨씬 더 이득이었을테니까 말이다. 만약 주유가 '현역'에서 일찍 물러났더라면 제갈량과 방통도 자신들의 재능을 유비가 아닌 손권에게 쓰는 것이 더 이득이었을 수도 있을 터였다. 제갈량이야 '삼고초려'가 필요했을 수도 있겠으나, 방통은 강동땅에 제 발로 찾아왔더랬지 않느냔 말이다. 그랬으면 제갈량은 놓쳤더라도 방통은 오나라를 위해 재능을 발휘하며, 위나라의 사마의, 촉나라의 제갈량, 그리고 오나라의 방통이 지략을 펼치는 삼파전이 아주 볼만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주유는 문무의 모든 면에서 부족한 점이 없는 '완벽한 천재'였던 탓에 제갈량과 방통이 불편했던 것이다. 그들의 재능은 뭐랄 것도 없이 최고였지만, 주유는 아직 최고의 자리에서 내려올 생각이 전혀 없었기에 오나라는 '주유의 오만' 덕분에 제갈량과 방통을 얻지 못했다.
이런 오만은 '조조'도 한 몫 단단히 했다. 그에게는 제갈량과 방통과 같은 책사들이 구름처럼 차고 넘쳤기에 굳이 더 얻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지만, 결정적으로 제갈량과 방통에게 호되게 당하고 만다. 일찍 '곽가'를 잃어버리고 난 뒤에 자신의 흉중을 속속들이 알아채 흡족한 계책을 내놓는 인물이 더는 조조의 곁에 없긴 했지만, 그럼에도 제갈량과 방통을 원하지 않았다. 그 까닭도 주유의 경우와 비슷하다. 조조가 바로 '지략의 천재' 중 한 명이었기 때문에 자기만족이 대단했던 탓이다. 더구나 천자를 등에 업고 화북지역을 몽땅 석권한 직후이지 않은가. 더구나 형주땅도 아주 손쉽게 얻어냈다. 비록 '박망파 전투'에서 유비의 기지에 눌려 큰 손실을 보긴 했지만, 대세에 크게 벗어나지도 않았다. 조조는 이런 오만을 적벽대전의 패배를 겪기 전까지 지속시켰다. 과거 '관도대전' 때 겸양한 모습을 보이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그 당시에 조조는 수많은 책사들의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수용했고, 거기에 조조의 과단한 결단력 덕분에 원소를 크게 이기고 대승을 거뒀는데, 적벽대전에선 전혀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오히려 자신의 계책이 가장 훌륭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고, 정욱의 만류와 방통의 계략도 제대로 간파하지 못하고 홀랑 말아먹고서는 대패를 하고 만다.
한편, 적벽대전의 진정한 승자는 유비였다. 조조는 단 한 번의 패배로 100만 대군을 잃어버렸고, 손권은 조조의 대군과 맞서 싸워 대승을 거두고도 얻은 땅이 하나도 없었다. 반면에 유비는 제갈량의 세 치 혀끝으로 조조와 손권이 서로 싸우게 만들었고, 그들의 머리 위에서 노닐다가 유비에게 형주땅을 고스란히 갖다 바쳤기 때문이다. 유비는 비로소 '거점'이라고 할 만한 영지를 얻게 되었고, 이곳 형주땅을 발판으로 삼아 '서촉땅'까지 확장시킬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더구나 마량, 이적, 황충, 위연 등과 같은 훌륭한 신하와 장수까지 얻게 되었으니 유비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성과였다.
이에 단단히 화가 난 것은 바로 손권과 주유였다. 노숙이 아무리 유비와의 대결은 금물이고, 조조만 이롭게 만들 뿐이라고 중재를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손권은 유비를 죽이고 싶어했고, 주유는 제갈량을 죽이고 싶어했다. 그래서 내놓은 계책이 바로 '미인계'였다. 유표의 장자 유기가 사망하고 유비가 형주땅을 빌리는 형식으로 형주를 차지했을 무렵, 유비는 아내를 잃어버리고 만다. 오랜 고생을 했던 감부인이 그만 일찍 죽고 만 것이다. 이 소식을 접한 주유는 손권의 여동생 손상향을 내세워 유비를 강동땅으로 불러들인 뒤에 죽여버리는 '미인계'를 쓰자고 한 것이다. 마침 손권도 형주땅을 고스란히 유비에게 빼앗겨서 배가 아프던 차에 솔깃한 제안이라 여겨 흔쾌히 허락한다. 그런데 제갈량이 이런 '미인계'를 역이용하여 유비를 손권의 매제로 만들어버리고 만다. '미인계'로 유비를 곤경에 빠뜨리려 했는데, 도리어 손권이 여동생을 눈 뜨고 빼앗겨 버리는 곤혹스런 상황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과연 유비는 이대로 화촉을 올려 새장가를 들게 될까? 나이 오십에 꽃다운 미모의 십대 처녀를 아내로 맞이하게 되는..아니 해도 되는 것일까? 딸이라해도 될 나이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