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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있는 구석방
  • 중국정통 만화 삼국지 5
  • 나관중 원작
  • 5,400원 (10%300)
  • 2016-08-08
  • : 42

[My Review MCMXXXI / 위즈덤(Wisdom) 5번째 리뷰] '삼고초려' 끝에 유비는 제갈량을 얻는다. 복룡과 봉추 가운데 '복룡'을 취한 것이다. 그럼 <삼국지연의> 최고의 책사 제갈공명은 어찌하여 조조도 아니고, 손권도 아닌, 빈털털이와 다를 바가 없는 유비를 택하게 되었을까? 이에 대해 이문열은 '제갈량의 출세욕'을 근거로 들었다. 제갈량이 유비와 함께 할 때의 나이가 이제 갓 스무살 남짓이었다. 불혹의 나이가 훌쩍 넘은 유비와 무려 20년 이상의 나이차이가 난 셈이다. 조조가 유비보다 살짝 나이가 많고 손권이 그나마 가장 어리다고 보았을 때도 제갈량은 이들 셋과 나이 차이가 한참 난 젊은 세대다. 이렇게 어리디 어린 책사를 중히 여길 군주는 누구였을까? 이렇게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는 말이다. 조조는 이미 책사들이 차고 넘친다. 손권도 주유, 노숙, 장소, 제갈근 등등 손으로 꼽을 정도로 훌륭한 책사가 이미 배치되어 있다. 이런 곳에 젊다 못해 어린 책사가 반짝 등장했을 때 중하게 쓰일 것인가? 아무래도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옳은 판단일 것이다. 그렇기에 제갈량은 조조로도, 손권으로도 가지 않고 '은거'하고서 때를 기다렸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봉추 방통'도 마찬가지다. 그도 손권과 조조를 나란히 놓고 저울질을 했을 것이고, 실제로 그쪽 진영에 발을 들여놓기까지 했다. 양쪽 모두 중히 쓰지 않을 것으로 판단이 서니 끝내 '유비'와 손을 잡는 것으로 결론을 내린 것일테다. 이렇게 유비는 '복룡과 봉추'를 둘 다 얻게 된다. 결론적으로 말이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었을 것이다. 당장 출세할 수 있는 '가능성'만으로 주군을 선택할 정도의 인물이라면 '복룡과 봉추의 전설'이 만들어질 까닭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들은 유비의 매력에 충분히 공감했을 것이 분명하다. 조조는 천자를 위압하고 '충직한 신하'가 아닌 '패왕'으로 자리잡았다. 손권도 아버지 손견이 '강동의 호랑이', 형 손책이 '소패왕'으로 불렸을 정도로 동오지역에서 거의 왕과 다를 바 없는 지위를 누렸다. 허나 '한나라의 황실'을 수호하고 충직한 신하가 되려는 마음은 일찌감치 버린 셈이었다. 단지 조조에 대항하기 위해 충직한 신하처럼 굴었을 뿐, 유비처럼 '황제의 밀서'에 답하지도 않고, 황제를 구하려는 의도도 전혀 내비치지 않았다. 이런 야심만 가득한 제후들의 신하로는 만족할 수 없었기에 '복룡과 봉추'는 자신들의 능력을 그들에게 내어주지 않으려 했을 것이다. 그리고 유비의 매력 가운데 분명한 한 가지가 바로 '황제의 숙부(황숙)'라는 공식호칭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유비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이 이미 황제답지 못한 '헌제'를 대신해서 '한나라'를 부흥시키는데, 그 '정당성'을 이미 확보한 셈이 되니, 유비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이 곧 '충신'이 될 수 있는 올바른 길이라 여겼다는 것도 단단히 한 몫 했을 것이 분명하다.

거디다 유비는 매번 '인의도덕'을 외쳤다. 한고조 유방이 '유교'를 떠받들었으니, 유교적 교리에 충실한 주군을 섬기는 것도 제갈량과 방통이 유비를 섬기는데 '자긍심'을 갖기에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이 틀림없다. 물론 이런 '도덕군자'로 행세하는 바람에 '실리'를 챙기지 못하는 답답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애초에 뛰어난 실력을 갖췄다고 자부하는 제갈량과 방통인데, 그런 어려움 하나 해결 못할 자신감이 없었다면 유비를 도와 웅비하려는 꿈조차 꾸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공통적인 목표는 바로 '천하삼분지계'다. 조조가 화북땅을 차지하고, 손권이 강동땅을 차지했다면, 유비는 유표가 가졌던 '형주땅'과 유장이 가지고 있는 '촉땅'을 차지해서 서촉땅을 기반으로 삼아 세력을 유지하는 것으로 첫발을 내딛은 것이다. 유표와 유장이 다스릴 때에는 불가능했던 계책이었으나 유비가 등장한다면 얘기가 달라질 거란 것도 '복룡과 봉추'의 계획에는 다 흠뻑 적셔져 있었을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문제는 유비가 거점으로 삼을 만한 땅을 차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제갈량은 그 땅으로 '형주'를 지목했다. 그리고 유표가 죽을 때 유비에게 차지하라고 권한다. 그런데 유비는 마다한다. 친족의 땅을 그저 낼름 먹을 순 없다는 얘기다. 유표에게 자식이 버젓이 있는데 어찌 친족으로서 그런 막돼먹은 짓을 할 수 있겠느냐는 답변이다. 난세에 할만한 이유가 아닌 답답한 소리지만, 그래도 유비가 원래 그런 사람이란 것을 알고 있었기에 굳이 말리지는 않았다. 허나 유표의 자식인 유기와 유종이 형주땅을 다스릴 능력이 없는 것이 문제였다. 장남 유기는 건강이 좋지 못했고, 차남 유종은 너무 어려서 '외족'에게 휘둘리는 형편이었다. 결국 유기는 영지의 변두리인 '강하'로 쫓겨나고, 유종은 양양과 강릉 등 알짜배기 땅을 모두 차지하지만, 때마침 침략한 조조에게 항복하며 형주땅을 홀랑 넘겨버리고 만다. 결국 유종과 엄마인 채씨는 죽임을 당하고, 채모 일족만 살아남아 조조의 휘하에서 수군을 양성하는 중책을 맡지만, 그들도 끝내 조조에게 '쓰다 버릴 카드'였을 뿐이라 결국 모두 죽임을 당하고 만다. 이렇게 허무하게 빼앗길 바에야 '유비'에게 형주땅을 맡겨두었다면 목숨이라도 건졌을 텐데, 어리석은 욕심만 부리다 제 명을 다하지도 못하고 말았다.

한편, 유비도 조조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어쩌면 유비가 형주를 일찌감치 차지하지 않은 까닭도 '홀로' 맞서 싸워서는 형주를 지킬 수 없었을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은 아닌가 싶다. 물론 손권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면 지켜내는 것만이라도 해낼 성 싶지만, 손권으로써는 '형주땅'을 차지한다는 댓가가 없었다면 조조의 대군과 맞서 싸울 의지조차 보이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유비가 유표의 땅을 낼름 받지 않은 것을 두고 '우유부단의 소치'라고 비웃을 것까지는 없는 셈이다. 오히려 영토를 차지하겠다는 야심을 버리고 백성들의 선망을 챙기며, 훗날 '적벽대전'의 승리로 형주땅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러웠을 것이 틀림없다. 애초에 '복룡과 봉추'도 이것을 예감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곱씹어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그로 인해 유비가 차지한 '형주땅'의 소유권이 불확실해지면서 그저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는 능청스러운 면모를 보여준 것이 옥에 티인 것은 아쉽다. 그렇게 해서라도 '유비와 손권'이 동맹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더 유리하게 작용한 것이라 할지라도 천하의 제갈량과 방통이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여 그냥 '유비의 것'으로 못을 박지 못한 점은 의외다. 정녕 그렇게 '빌리는 형식'만 취하여야만 했던가?

또 하나 의문점이 있다. 유비가 조조의 남하를 피해 달아날 때 '따르는 백성들'과 함께 후퇴하는 장면에서다. 과연 그래야만 했을까? 물론 이것은 백성들이 스스로 '선택'한 일이긴 하다. 신야땅에서 유비가 얼마나 백성들을 잘 다스렸는지 가늠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데 아무리 자기를 좋아하는 백성들이 스스로 따르겠다고 하더라도 '현명한 군주'라면 조조군이 뒤쫓는 상황에서 결코 현명한 결정이 아니라는 점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백성들의 안전을 생각했더라면 그저 막연하게 '유비군의 행렬'을 뒤따르게 할 것이 아니라 유비군이 목적지로 삼은 양양이나 강릉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잡고 '따로따로' 움직였어야 마땅했을 것이다. 그런데 유비는 자신을 따르는 백성을 지키겠다면서 '군대의 행렬'과 함께 후퇴를 했더랬다. 그렇게 느린 행군으로 결국 조조군에게 따라잡혔고, 그 결과는 무참한 학살이었다. 조조의 입장에서 유비를 따르는 백성은 도륙의 대상이었을 뿐이다. 조조의 잔학성은 이미 '서주대학살'에서 확인하지 않았는가. 천하가 조조를 버리게 하지 않고 조조가 천하를 버리겠다고 호언장담을 한 인물인데, 오죽하겠는가. 그로 인해 유비는 아주 큰 깨달음을 얻게 된다. 아무리 선한 영향력을 기대하고 한 행동일지라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결코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좋은 의도로 한 일이라도 참혹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유비는 철저히 깨닫게 된다. 그로 인해 훗날 유비가 '서촉땅'을 차지할 때는 '형주땅'보다는 조금 수월하게 접수(?)하게 된다. 그럼에도 다른 이들에 비해선 꽤나 답답한 모양새를 보여주지만 말이다. 이것 또한 유비의 매력이다.

어찌 되었든 유비는 유기가 머문 강하땅에서 겨우 살길을 마련하고, 손권의 도움을 청하려 한다. 이른바 '적벽대전의 서막'이 열린 셈이다. 조조가 형주땅을 차지하고 태세를 정비하는 와중에 유비는 손권과의 동맹을 맺기 위해 제갈량을 강동땅으로 파견보낸다. 그곳에서 제갈량과 주유는 첫 대면을 한다. 그리고 조조의 100만 대군에 맞서 유비와 손권이 힘을 합쳐 싸운다는 결론을 내기 위해 포석을 깔기 시작한다.

사실, 손권도, 주유도, 노숙도 조조와 맞서 싸울 의지가 충만했다. 허나 이를 반대하고 '조조와 화친'을 하자고 주장하는 신하들이 다수였기에 손권측도 '제갈량'을 나름 환영한 셈이다. 그런데 제갈량이 강동에 방문해서 한 짓이 방약무도한 짓거리였다. 손권의 신하들을 불충스럽고 무능력한 사람으로 낮잡아 보고 저 잘난 척만 잔뜩 늘어놓았으니 말이다. 거기다 조조군에 비해 손권군은 실력이 형편없으니 목숨이 아깝거든 어서 항복하라고 부추기기까지 하니 손권측 신하들은 내심 바라는 바면서도 후끈 달아오르는 부끄러움에 몸둘 바를 두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여기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 '주유'다. 주유는 짐짓 화가 난 것처럼 꾸몄지만, 오히려 이 상황을 즐겼을 것이 분명하다. 왜냐면 주유로서는 조조와 일전을 벌이는 것이 가장 바라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맹을 맺으러 온 제갈량이 자신이 해야 할 수고를 대신해주고 있으니 더 바랄 바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손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다만 제갈량이 그런 의도를 파악하고서 '손권의 신하들'을 말 한마디로 깔아뭉개는 모양새가 심히 불편했을 따름이다. 이에 주유는 제갈량을 죽이기로 결심한다. 자신의 의도대로 도움을 준 것은 고마운 일이나 '오나라' 전체를 모독했으니 죽어 마땅한 것이오, 또 하나는 자신의 속마음까지 꿰뚫어보는 제갈량의 능력이 너무도 뛰어나기 때문에 '내편'이 되지 않을 바에야 '남편'이나 '적'이 될 존재를 일찌감치 제거하는 것은 가장 바람직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유는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제갈량을 죽일 궁리만 하게 된다. 화살 10만 개를 사흘만에 마련하지 못하면 죽여버리겠다. 화공을 성공하기 위해선 동남풍이 필요한데, 그걸 불게 만들고 나면 죽여버리겠다는 둥둥 죽일 이유는 참 많고도 많았다.

이제 삼국지 최고의 명장면 '적벽대전'이 펼쳐지기 직전이다. 앞서 '관도대전'이 그 볼거리를 화려하게 수놓았다면 이제 '적벽대전'은 화룡점정의 수준으로 화려함의 극치를 이룰 것이다. 조조와 손권 가운데 승자는 과연 누가 될 것인가? 혹시 그 둘이 아닌 '제삼자'가 승리의 주역이 되는 것은 아닐까? 거기에 '고육지책', '반간계', '연환계' 등 서로에게 속고 서로를 속이는 책사들의 승부도 아주 훌륭한 볼거리를 제공할 것이다. 과연 '적벽대전'의 진정한 승자는 누구인지 기대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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