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eview MCMXXVIII / 이봄 1번째 리뷰] 만화(웹툰)라는 장르는 참 묘하다. '만드는 과정'은 결코 녹록치 않으면서, 그걸 '읽는 과정'은 휘리릭 뚝딱이니 말이다. 이야기를 '구상'하고, '칸'을 나누고, '연필'로 콘티를 짠 다음, '먹물'로 원화를 그리고, '지우개'로 연필자국을 지운 다음, '스크린톤'을 잘라 붙이고, '채색'을 하면, '원고 1쪽'이 완성 된다. 그렇게 120쪽(한 권 분량)을 반복하면 '단행본' 1권이 완성된다. 지금은 이 모든 것을 '컴퓨터' 같은 전문장비로 대체했으니 조금은 수월(?)할지 몰라도 이 모든 과정을 '매 화'마다 반복하고, 또 반복해야 하는 지난한 과정의 결과물이 만화책(웹툰)이다. 그런데 독자들은 이런 만화가들의 '수고로움'을 심심풀이로 읽곤 한다. 그렇게 휘뚜루마뚜루 읽고 난 다음에 아무 곳에나 던져두거나 함부로 다뤄지기 일쑤다.
보통 사람들의 '한 권의 만화책 완독 평균 시간'은 10~15분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한때 유행했던 '만화방'에서 1시간에 독파할 수 있는 만화책의 권수는 적어도 4권, 많게는 8권 정도가 된다. 그리고 굉장히 빨리 속독을 하는 친구들은 앉은 자리에서 20권 정도를 가장 편안한 자세로 읽어재끼는 경우도 봤다. 하지만 나는 '만화방'을 가지 않았다. 가면 늘 손해를 봤기 때문이다. 나는 만화책 평균 독파 시간이 무려 1시간이기 때문이다. 남들 10권 읽을 시간에 나는 꼴랑 한 권만 읽을 정도다. 아무리 빨리 읽어도 30분 안쪽으로 읽은 적이 없다. 굉장히 느리게 읽는 편이다. 기본적으로 '정독'을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만화책이라도 '행간'을 함께 읽는 습관이 있다고나 할까? 암튼 그런 식으로 꼼꼼하게 읽다보니 늘 그렇다. 이렇게 느리게 읽으면 좋은 점이라면 딱 하나가 있다. 남들보다 '오래 기억'한다. 그리고 기억을 떠올리며 '음미'하고 또 '분석'하는 경향도 있다. 뭐, 남다른 '눈썰미'쯤이라고 해두어도 좋을 것 같다.
각설하고, '마스다 미리'의 만화책을 처음 읽는다. 언젠가 들은 기억이 나긴 하지만 2014년 즈음의 난 '연봉 1억 만들기'에 도전하고 있을 때였기 때문에 하루하루를 눈코 뜰 새도 없이 바쁘게 보내던 시절이었다. 쉽게 말해, '업무' 이외에 눈 돌릴 여유가 없던 시절이었단 말이다. 논술쌤으로 '제2의 인생'을 살고자 바쁘게 살던 시절이라 이처럼 유명한 작가의 책도 읽을 새가 없었다. 그러다 지난 주에야 도서관 한 귀퉁이에서 이 책을 우연히 집어 들었다.
이 책을 한마디로 평가하자면, '평범한 남성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여자의 속마음'이라고나 할까? 꽤나 진부한 한줄평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것은 '이해불가'인 여성심리일 것이다. 심지어 여성들조차도 '절대공감'하지만, '완벽하게 날 이해하지는 못해'라면서 뾰루퉁해지는 것이 여자의 마음이라고 한다. 남성들이 '절대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남성들도 '속마음'이 있고, 그것이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지만, 남성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그런 '속마음'은 툴툴 털어버리지 않으면 곤란하다는 것이 공론이다. 그렇기에 혼자서 꽁하고 있는 남자는 결코 출세할 수 없다. 그래서 남성들은 서로의 속마음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설령 '속마음'을 다치게 했더라도 그걸 표현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된 남자들은 모두가 비슷비슷한 남자가 되고 만다. 그 비슷한 남자들은 꽤나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길들여져서 '효율적'인 생활을 하지 않으면 사회생활에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되고 마는 것이 남성들의 전부이다.
그런데 여성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내가 남자다보니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겠으나, 여성들은 아무리 사회생활을 하더라도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이며, 심지어 '비효율적'인 방식의 사고를 하고, 그걸 '속마음'으로 감추고 산다. 남자들은 이런 여성의 속마음을 '개성'으로 이해하기도 하지만, 글쎄 여성들은 그걸 '개성'이라고 표현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것을 넘어선 '절대공감'의 영역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성들은 서로의 '속마음'을 철저히 감추면서도 저마다의 '속마음'을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독특한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고, 그 세계관을 '코드화'해서, 서로에게 딱 맞는 '코드'를 지닌 여성들끼리는 속마음을 터놓고 지내도 별다른 위화감이 없을 정도로 잘 지내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이걸 남성들 사이에서의 '우정'이라고 이해하면 곤란하다. 남성들은 '우정'이나 '의리'를 위해서 목숨도 걸 수 있지만, 여성들 사이에서 '코드'가 맞는 사람이라고 '개인적인 손해'까지 감수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런 느낌적인 느낌을 담은 만화가 마스다 미리의 <내 누나>라는 만화다. 등장인물은 단출하다. 삼십대 직장여성인 '지하루 누나'와 이제 갓 사회생활에 발을 들여놓은 이십대 청춘남자 '준페이 남동생'이 한 집에 거주하며 서로의 '속마음'을 이야기하는 일상적인 모습을 펼쳐놓았다. 그런데 그런 일상속에서 남자와 여자가 느끼는 감정과 떠올리는 생각이 사뭇 달라서 생기는 '의외성'이 이 만화책이 주는 유머일 것이다. 거기에 '삼십대 여성'이 보여주는 속마음은 십대나 이십대 여성의 '풋풋함'과는 달리 꽤나 '농 익고, 때론 관능적'이기까지 한 속이야기를 펼쳐보여준다. 이런 이야기에 여성들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테지만, 남성들은 "으에~~~~정말 이런 거였어?"라며 여성의 속마음을 처음 본 놀라움을 표할 것이 분명하다. 마스다 미리는 이런 '의외성'을 아주 잘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이게 '삼십대 여성의 속마음'을 전부 보여준 것이라고 한다면, 절대 아닐 것이다. 왜냐면 여성의 '진짜 속마음'은 절대로 절대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여성이 '속옷'을 공들여 사는 것이 '남성'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만은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맘에 쏙 드는 사랑하는 남성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인생 속옷'을 비싼 돈을 주고 구매하기도 하지만, 그냥 빨래감이 밀려 입을 속옷이 없을 때에도 그 비싸고 예쁜 속옷을 '그냥' 입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냥' 입어버린 속옷은 더는 '인생 속옷'이 될 수 없어 아무 때나 입지만, 정작 남자들은 그 둘의 차이점을 절대 알아챌 수 없다. 이는 오직 '여자들만 공감할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속옷'이 아닌 속옷 안에 있는 '두 글자'의 크기, 기능성, 숙련도(?)..이런 것에 관심이 있지. '인생 속옷'이란 관념 자체가 아예 없기 때문에 여성들의 심리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도 이해가 되지 않는 남성들을 위해 조금만 설명을 덧붙이자면, 남성은 사랑하는 애인과 '그날'을 잘 보내기 위해서 옷을 무엇을 입고, 헤어스타일은 어때야 하고, 저녁 데이트 코스를 완벽하게 준비하고, 침대에 오르기까지 매너로 깔끔하게 준비하면, 그 다음부터는 그냥 '본능'에 맡겨버리고 머릿속에서 싹 지워버리기 일쑤다. 하지만 여성은 더 디테일하다. 그날 입는 '의상'부터, '메이크업', '향수', '에티튜드', '손톱', '발톱', '속눈썹'..기타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것에 완벽을 준비한다. 그 가운데 한 가지라도 미흡하다면 '그날의 일정'은 올스톱이 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되었다하더라도 여성은 침실에 들어가서 하는 행동, 말투 하나하나를 철저히 준비할 뿐 아니라 '옷이 벗겨지는 과정'까지 완벽하게 셋팅에 들어간다. 여기서 돌발변수로 '설레임'이 작동하게 되면 더 훌륭해질테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그것을 드러내지 않으려 무진 애를 쓴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이 모든 과정이 다 '아름답고 예뻐야' 한다. 그리고 그걸 남자의 입으로 표현되길 원한다. 매 순간마다 예쁘고, 예쁘다고 해야 한단 말이다. 진심을 담아서 말이다. 여성들은 그 '진심'을 기가 막히게 잘 파악하고, 그 '순간'을 잘 잡아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한다. 여성들은 그런 모든 것을 '기억'에 담아두고서, 두고두고 '추억'으로 곱씹으니 말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사실은 여성들은 이렇게나 '복잡한 존재'인데 반해서, 남성은 정말 조잡할 정도로 '단순한 존재'라는 현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는 남성과 여성의 '생식세포의 차이'만큼이나 차이가 크다. 남성들은 미토콘드리아(꼬리부분)에 탑재된 대가리(수정체)가 오직 '전진'만을 생각하고, 효율을 위해서 수억마리의 방대한 수로 '승부'를 거는데 비해서, 여성들은 오직 하나의 '난자'만을 내보내서 수억마리의 정자와 상대를 하지 않느냔 말이다. 그 하나의 난자를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우아하게 보이려고 수많은 공을 들이는지, 정자는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여성의 '비효율'을 단순한 남성은 영원히 이해할 수 없다.
그럼에도 남성은 끊임없이 그 '비이성', '비논리', '비합리', '비효율'을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 왜냐면 여성들에겐 이 모든 것들이 절대로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며, '합리적'이고,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성을 이것을 효과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공식'을 절대로 남자들에게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을 가르쳐주는 순간, 여성은 절대 신비롭지도 않고, 아름답지도 않으며, 예뻐보이지도 않는 '평범'해져 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마주한 남성들은 비명을 지르고 싶어질 것이다. 뭘, 어쩌란 말이냐고 말이다. 뭘 어쩌겠는가? '답정너'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고, 넌 그냥 대답만 잘하면 그뿐이다. 여성이 듣고 싶은 말을 잘 해주는 남성이 사랑받는다는 '대원칙'은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일 것이다. 단지 여성이 듣고 싶은 말이 '그때 그때 달라'지는 것이 또 다른 문제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