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eview MCMXXVII / 위즈덤(Wisdom) 4번째 리뷰] 관우가 조조의 품을 떠났다. 애초에 관우가 조조의 신하가 된 것이 아니니 '품'이라기보다는 '그늘'이라 표현하는 것이 더 어울릴 것이다. 조조가 그렇게나 관우에게 후대를 했는데도 관우는 유비의 품으로 떠났다. 그런데 이게 참 미스테리하다. 유비가 뭐라고 관우가 이렇게나 애먼글먼 함께 있고 싶어 안달이란 말인가? 원소처럼 '사대삼공의 지위'를 대를 이어 받은 명문가도 아니고, 조조처럼 '구름같은 인재들'이 모여들어 천자를 품에 끼고 천하를 호령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또한 손견, 손책, 손권으로 이어지는 오나라처럼 일찌감치 '강동'이란 터를 굳건히 잡고서 세력을 넓혀가던 유력가도 아니고, 그저 한황실의 종친이라는 명함 하나 꼴랑 있는 '유비의 곁'에 관우를 비롯해 장비, 조운, 손건, 간옹, 미축 등등의 인물들은 송곳 하나 꽂을 땅뙤기 하나 없는 유비를 졸졸 따라 다닌다. 유비의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따르게 만들었단 말인가?
유비가 탁현에서 '황건적 토벌'이란 기치를 내걸고 전쟁에 나선 공이 있어 조그마한 현의 수령이 된 것을 제외하고, 제대로 된 관직조차 얻은 것이 없다. 그런데도 공손찬에게 빌붙고, 도겸에게 빌붙고, 여포에게 의지하다가, 조조에게 기대고, 원소에게 빌붙었다가 '삼형제'가 다시 모여 '여남(황건적 잔당 유벽과 공도의 도움으로)'에서 재기를 노렸으나, 조조에게 박살이 나면서 유표에게 빌붙으며 겨우 목숨만 건지는 신세가 된다. 그럴 때가 '신야'를 영지로 삼아 재재기(?)를 노렸다. 무려 7년이나 말이다. 그러나 '신야'는 너무 좁은 영지다. 힘을 기르기에 턱없이 '인재'와 '물자' 모두 빈약한 곳이었고, 형주자사 유표의 처남 '채모'에 의해 암살 위협까지 받고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이런데도 명장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관우, 장비, 조운'은 유비와 함께 생의 끝까지 했으며, '손건, 간옹, 미축' 또한 훌륭한 책사라 할 수는 없으나 명재상의 반열에 올려도 무방할 정도로 뛰어난 문관이었는데도 유비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어디 이뿐인가? 유비는 가는 곳마다 '호의'를 받기 일쑤다. 가진 것 하나 없는 거렁뱅이 신세와 다를 바도 없는데 말이다. 가진 거라고는 '황실의 종친, 유황숙'이라 불리는 타이틀 뿐이지 않은가? 더구나 조조가 헌제를 볼모로 잡고 천하를 호령하는 것을 다 아는 처지에 각지의 제후들은 저마다 '한황실의 땅'을 저들의 것인냥 노나먹고 있을 지경인데, 그 누가 '한황실의 충신'을 자처하며 충성을 바치고 있느냔 말이다. 현실이 그러할진데, 이름 뿐인 '황제'도 아닌 '황실의 종친'이란 명함으로 어찌 그리 수많은 인재들의 호의를 받을 정도로 매력을 뿜어냈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유현덕이 지닌 매력의 미스테리'다. 이러한 미스테리는 유비에게 없던 '책사들'이 찾아들면서 더욱더 그 신비감을 뿜어낸다. 바로 '서서'다.
하지만 서서는 유비의 품에 오래 있지 못했다. '정사'에서도 서서는 조조의 신하가 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유비와 함께 했을 때 아주 빛나는 업적을 남겼다는 사실만은 확실한 모양이다. '연의'에서는 조조군을 섬멸하는 공을 세웠다고 하지만, 실은 유비의 계략이었다고 한다. '정사'에서는 서서와 제갈량이 책사의 능력을 화려하게 보여주면서 등장하지만, '정사'에서는 유비가 조조군을 대파하는 것으로 나오고, 유비가 활약을 할 시점에 '서서'는 이미 조조쪽으로 떠났고, '제갈량'은 아직 유비쪽으로 합류하기 전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나관중은 '연의'에서 유비에게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책사'라며 서서와 제갈량의 활약을 극대화시키며 소설의 재미를 더하는 요소로 삼았다. 암튼, 이런 소설의 재미를 더하는 부분이 바로 '유비의 매력'이란 말이다.
한편, 조조는 관우가 활약한 '백마전투' 이후에 '관도대전'이란 운명의 대결을 맞이했다. 상대는 어릴 적 친구였던 '원소'다. 원소군은 무려 70만, 조조군은 겨우 7만 명에 불과한 전투였다. 그런데도 조조군의 멋진 승리로 '화북 일대'를 모두 차지하는 빛나는 업적을 남겼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원소 진영의 '내부결속'이 너무 엉망진창이었던 것이다. 흔히 원소가 리더였으므로, 원소의 '우유부단한 성격' 탓을 많이 하는데, 단순히 성격탓을 하기에는 원소의 가문이 너무 엄청났다. 무려 70만 대군을 이끄는 총대장이기도 하지 않았는가. 그러므로 그의 '성격'탓을 하기보다는 원소의 휘하에 있던 책사들의 분란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애초에 전쟁에 반대한 책사들이 있었다. 바로 '전풍'과 '저수'다. 이들은 원소의 진영이 훨씬 유리한 싸움이니 '지구전'을 펼쳐 조조군의 병량이 다 떨어져 스스로 물러가게 만드는 것이 가장 상책이라고 전략을 내었다. 그러나 심배, 곽도, 봉기, 쉽게 말해 '간신배'들은 70만 대군을 보유하고서 '수비'만 할라치면 원소의 체면에 손상이 가니 '속전속결'로 대군을 움직여 조조군을 짓밟아버리라고 조언한다. 허나 이는 하책이다. 애초에 급히 전쟁을 시작한 조조의 입장에선 '여포'를 치고, '유비'를 친 뒤에 곧바로 '원소'까지 치는 강행군 일변도였다. 즉, '전쟁준비'를 만반에 하지 못했고, 완성의 '장수' 일당도 다 진압하지 못했고, 헌제의 밀서사건도 해결하지 못한 채, 서쪽의 마등, 남쪽의 유표, 동쪽의 손책이란 적들이 산적한 위급한 상황을 빠르게 해결하고자 '하북 일대'를 평정하겠다고 원소의 대군과 맞짱을 뜨러 오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원소가 조금이라도 '정세 파악'을 빠르게 했더라면, 속전속결이 아닌 지구전을 펼쳤을 것이다. 속전속결은 '조조'가 바라고 또 바라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원소는 전풍과 저수를 전쟁에 나서기도 전에 '불길한 소리'를 한다며 감옥에 가둬버리는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고 만다.
또 하나는 '상벌의 명확성과 신속성'이 승패를 가르게 만들었다. 조조는 상을 줄 때는 확실히, 벌을 줄 때는 신속하게 했다. 그래서 조조의 휘하 장수와 책사, 신하들 모두는 '조조의 상'을 받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의견을 제안하기에 망설이지 않는다. 어차피 '난세'에는 '출세'가 목적인 사람들이 구름같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빠른 출세를 원한 인재들은 '황제'인 헌제에게 충성을 다하기보다는 유력한 제후들에게 '눈도장'을 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 마련이다. 그 가운데 조조는 가장 화끈한 군주였다. 상과 벌이 명료했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 '자신의 의견'이 조조에게 채택되길 바라며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그로 인해 벌을 받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상을 받을 생각으로 말이다. 이것이 바로 '조조'가 대승을 거둘 수 있었던 원인이다. 반면에 원소쪽 진영은 상벌이 분명하지 않고 '제멋대로'였다. 한마디로 '원소의 기분에 따라' 달라졌던 것이다. 전풍과 저수가 딱 그렇다. 두 사람의 '지구전' 전략은 아주 유효했다. 명확한 전략가라면 누구도 '전풍과 저수의 지구전'을 반대한 명분조차 없었을 것이다. 애초에 가장 효율적인 전략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법'을 상책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원소가 차지한 '기주 땅'은 곡창지대다. 가만히 지키고만 있어도 저절로 부를 쌓을 수 있는 땅에서 왜 전쟁을 벌이겠느냔 말이다. 그러니 전풍과 저수는 원소에게 '승리'만 안겨주는 것이 아니라 훗날 원소가 천하를 호령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는 책략을 가르쳐주었으니 '상'을 받아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원소의 심기'를 거스르고 말았다.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정사'에 나오지는 않으나, '연의'에서는 원소와 조조의 어릴 시절을 주목시키며 원소에게 '자격지심'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 엿보인다. 한마디로 조조가 뭐가 그리 잘나서 감히 자신에게 대들고 있는 것이냐, 저 따위 조조놈을 단 한 방에 혼꾸녕을 내줄 수 있는 방법이 궁금하던 차에 시간만 질질 끄는 '지구전'을 하라는둥, '수비'에 치중하라는둥 소극적인 전략을 내세웠으니 싫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를 간파한 '간신배들'은 원소의 가려운 부분을 박박 긁어주며 대군을 이끌고 내려가 한껏 위엄을 보이고 '속전속결'로 때려부수라고 부추기고 만다. 심배, 곽도, 그리고 봉기의 주장이다. 원소는 이들에게 상을 주고, 전풍과 저수에게는 벌을 주며 모든 신하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말았다. 그 뒤에는 말할 것도 없다. 그저 '원소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말만 주워 섬길 뿐이니 전쟁에서 이길 턱이 없다.
이렇게 '관도대전'에서 승리를 거둔 조조는 일거에 엄청난 하북지역을 평정하여 '천하통일'의 기틀을 닦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서량의 마등, 형주의 유표, 신야의 유비, 그리고 강동의 손책이다. 조조의 다음 목표는 과연 누구일까?
한편, 강동의 손책은 젊은 나이에 강동땅을 접수하며 오나라의 기틀을 다잡는다. 그렇게 안으로 원로대신 '장소'를, 밖으로는 의형제 '주유'를 기반으로 삼아 '형주공략'에 나서게 되는데, 어이 없게도 26세의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된다. 첩자를 잡아 죽이는 사소한 사건이었으나 이것으로 원한을 품은 자들이 급습을 모의했는데 손책이 이를 철저히 대비하지 않고 사냥에 나갔다가 '중상'을 입게 된 것이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으나 부상이 심해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의원의 권고에도 쉽게 흥분하고 화를 내며 참지 못해 끝내 숨을 거두고 만다. 마지막 결정타는 그 유명한 '우길'을 참수한 사건 때문이었다. 손책의 아비 손견도 쉽게 흥분을 참지 못해 요절했는데, 그 아비에 그 자식인 셈이다. 그렇다면 또 다른 자식인 '손권'은 어떠했을까? 의외로 신중한 성격이었던 모양이다. 믿고 의지하던 아버지와 형이 비명횡사했는데도, 그들의 성격을 본받지 않고 신중에 또 신중을 기하며 번듯하게 성장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강동땅은 손권 대에 이르러 크게 부흥하게 된다. 그의 부흥은 잠시 뒤에 살펴 보도록 하겠다.
다시, 신야에 있는 유비다. 유비는 관우, 장비, 조운이란 든든한 무장이 있고, 손건, 간옹, 미축이란 튼실한 문관도 갖춘 훌륭한 진영을 갖추었다. 이런 유비에게 부족한 것이 바로 유비의 실력에 걸맞고 적당히 크기의 '다스릴 수 있는 땅'이 없는 것이고, 이런 훌륭한 진영을 잘 다뤄줄 '뛰어난 책사'가 없다는 점이다. 이를 테면, 조조에겐 '곽가'가, 손권에겐 '주유'가 있었는데, 유비에겐 그에 걸맞는 책사가 있었다가 없게 되었다. 바로 '서서'를 말한다. 유비에게 서서는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 들게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인물이 '효도'를 다하기 위해 자기 곁을 떠난다고 한다. 군주의 처지에서 어찌 슬프지 않겠느냔 말이다. 그런데 그런 '서서'가 떠나면서 추천한 인물이 있다. 바로 '복룡과 봉추'다. 우리가 흔히 표현하기로는 '와룡'이라고 하는데, '중국판'에서는 '복룡'이라 표현하는 모양이다. 어차피 뜻은 같다. '엎드린 용'이나 '누운 용'이나 승천하지 못한 용은 조화를 부리는 능력이 있어도 쓰지 못한다는 뜻이니 말이다. 다시 말해, '제갈량과 방통'이다. 일찍이 양양땅의 은자, 수경선생 사마휘도 두 사람 가운데 한 명만 얻어도 천하를 얻을 것이라 조언했던 인물이다. 과연 유비는 '복룡과 봉추' 가운데 누굴 얻게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