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eview MCMXXV / 이성과힘 1번째 리뷰] 1970년대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가난한 이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그려낸 조세희 소설가의 단편모음집이다. 무려 50년 전의 소설이 지금도 주목받고 있는 까닭은 그 시절의 아픔을 겪게 만든 '구조적인 문제'가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의 '가난한 이들의 삶'을 고스란히 관통하기 때문이다. 전혀 위화감도 없이 말이다. 이는 그 시절의 가난의 원인과 지금의 가난의 원인에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 공통점이란 극심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다. 또 하나는 '부자들의 인색함'이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자본주의 경제체제'속에서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돈이 돈을 벌어오는 구조에서 '더 많은 이익'을 내는 것은 돈을 많이 가진 자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자는 더 부자가 되는 것이고, 빈자는 더 빈자가 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것은 '난장이네 가족'도 인정하는 바다. 경기가 좋으면 좋을수록 부자들은 더 많은 돈을 벌어가니 진짜로 부러운 일이다. 그런데 그렇게나 부를 쌓았으면서 왜 가난한 사람들의 몫까지 탐을 내느냔 말이다. 서울시 낙원구 행복동에 살고 있는 '난장이네'는 조상 때부터 그곳에서 터를 잡고 살았다. 난장이의 조상은 '노비 출신'으로 인심 좋은 양반이 죽으면서 떼어준 땅에서 터전을 마련하고 살아왔는데, 난장이의 대에 와서는 이를 '무허가 건물'이라고 하면서 난장이 손으로 직접 헐지 않으면 '철거비용'까지 물어주어야 한다는 통지서를 받고 말았다. 이렇게나 억울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국가조차 '난장이의 편'을 들지 않고, 부자들에게 더 많은 이익을 주는 '재개발사업'을 벌이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원래 살던 지역주민들을 '불법체류자'로 엮어서 살던 곳에서 무일푼으로 떠나라고 종용하다니 말이다. 그나마 '난장이네'는 입찰딱지라도 받아서 푼돈이나마 '이사비용'을 받아서 떠날 수 있었지만, 난장이의 이웃들은 그 딱지조차 받지 못해 용역깡패들에게 두들겨 맞고 반병신이 되어서 집도 없이 쫓겨날 판이다. 도대체 이 나라에 '정의구현'은 어디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한편, 부자들도 할 말은 있다. 자신들이 쌓은 부는 거저 얻은 것이 아니라 '정당하고 합법적인 노력'에 대한 합당한 대가였을 뿐, 부자들이 탐욕스럽기 때문에 '불법'을 자행하면서 빈자들의 재산을 빼앗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서 자신들은 부를 늘려나갔고, 그로 인해서 '가난한 사람들'이 피해를 보지 않았으면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자신이 돈을 벌 수 있는 합법적인 방법까지 막아서는 것은 엄연한 '불법'이며, 그에 따른 법적 조치를 망설일 까닭은 전혀 없다는 것을 밝힐 뿐이다. 그렇게 부자들은 '난장이네의 입주권'인 딱지를 난장이네가 원하는 가격에서 깎지 않고 사들였다. 난장이네 이웃들의 딱지까지 몽땅 말이다. 그렇게 난장이는 정들었던 집이 허물어지는데도 '마지막 식사'를 오순도순 나눠먹고 철거반이 허물어버린 담벼락으로 빠져나와 집을 비워주었다. 갈 곳도 딱히 마땅히 없으면서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입주권'을 사들인 부자가 그곳에 세워질 아파트에서 살기 위해서 구매한 것은 아니었다. 그럴 거면 애초에 그렇게나 많이 사들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부자는 그렇게 사모은 딱지에 2~3배의 이윤을 붙여 다른 부자에게 되팔아버리는 방법으로 돈을 긁어모았다. 난장이네에게 25만원을 주고 산 딱지를 다른 입주자에게 45만~70만원 선에서 팔아버린 것이다. 부자는 그렇게 해서 돈을 더 많이 모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애초에 '직거래'를 해서 난장이네에게 50만원을 주고 사갔다면, 난장이네도 '이사비용'과 더불어 '전세자금'이라도 마련해서 다른 곳에 새롭게 정착할 수 있는 자본을 챙길 수 있지 않았겠느냔 말이다. 이를 국가가 나서서 조금만 관리했더라면 가난한 이들이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는 일도 발생하지 않았을 텐데, 왜 이런 '감시'를 철저히 하지 않았느냔 말이다. 가난한 사람이 이런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헐값'에 집을 넘겨버리는 일도 미연에 방지하면서 말이다. 왜 국가가 가난한 이들의 편에 서려 하지 않았느냔 말이다.
이런 일은 또 벌어진다. '난장이의 큰 아들, 영수'는 노동조합을 이끌어가는 주동자로 몰려서 '사측'과 협상테이블에 앉아서 협의를 이어나가는데 '불법파업'을 조장했다면서 노조측이 강성하게 대응하도록 선동했다며 사측으로부터 고발을 당하는 처지에 내몰렸다. 다시 말해, 선량한 노동자들은 성실하게 일을 하고 현재의 '임금'을 받는 것으로도 만족을 하고 있는데, 난장이의 큰 아들이 '공산주의 사상'에 물들어서 고의적으로 파업을 조장하고 선량한 노동자들을 선동하여 무리한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등 불법적인 일을 자행했다는 내용의 고발이었다. 이에 난장이의 큰 아들은 '사측의 주장'은 궤변이라고 대응한다. 회사가 엄청난 이익을 봤는데도 노동자의 임금을 고의로 '동결'하고, 근로기준법에도 저촉되는 추가업무를 강요했으며, 규정된 근무시간을 초과했는데도 '추가수당'을 제대로 쳐주지 않아, 회사가 노동자의 정당한 몫을 가로챈 정황이 드러났는데도, 이를 발뺌으로 일관하고, 노조간부를 비롯해서 노조원들을 '불법파업'이라 협박을 하며 정당한 '노동쟁의'와 '노동자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부당한 조치로 일관하고 있음을 낱낱이 밝혔다. 이에 따라 회사의 이미지가 나빠질 것을 우려해서 회사 이름으로 20억원을 '사회에 헌납한다'는 미명으로 기부를 하며 호의적인 여론을 만들려고 했는데, 그 기부금 20억원은 '회삿돈'이 아니라 '노동자의 몫'이 분명하며, 기부를 하더라도 '노동자의 이름'으로 기부를 했어야 맞다고 시시비비를 가렸다.
그럼에도 사측은 노조간부를 일괄적으로 고소했으며 특히 '난장이의 큰 아들'은 부당한 해고를 통지하며, 노조까지 해산시켜버리는 '악덕사장의 행위'를 보여주었다. 이에 참지 못한 난장이의 큰 아들, 영수는 회사의 사장을 '살해'할 목적으로 찔렀는데, 알고 보니, 그 사장이 아니라 사장과 꼭 닮은 '동생'을 찔러 사망에 이르게 만들고 말았다. 난장이의 큰 아들은 졸지에 '살인자'가 된 것이다. 앞서 난장이는 철거반에게 온가족이 쫓겨나가게 만들었다는 죄책감과 막내딸이 '행방불명'이 된 사실에 비관해서 '공장 굴뚝'에서 추락해 자살을 했으니, 난장이네 가족의 비극은 대를 이어 일어나게 된 셈이다. 이런 비극이 어디 그뿐이겠는가? 행방불명이 되었던 막내딸은 사실 '자기네 집'을 되찾기 위해서 처녀의 몸으로 부자에게 성욕구를 처리해주는 역할을 자처하며 부자네 집에 잠입했다가, 부자가 잠든 틈을 타서 '자기네 집 입찰권(딱지)'과 돈을 훔쳐서 달아났다. 그리고 아버지의 명의로 새 아파트 입주권을 되찾는데 성공하지만, 정작 입주해야할 아버지가 자살을 해버렸기 때문에 '아버지의 이름'으로 올린 입주권이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아버지가 좋아하던 그 집을 되찾아주기 위해 막내딸은 '자신의 몸'을 담보 삼아 저당잡혔다가 '자기 몫'을 단단히 챙겨서 달아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사이에 그런 비극이 벌어졌던 것이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이 책이 한때는 '금서목록'에도 올랐다고 한다. 부자들에게 '살인'까지 저지르는 빈자들의 행동강령(?)을 부추기는 불온한 내용이 담겼다는 게, 그 이유라던데...글쎄, 이 책을 제대로 읽었다면 차마 그런 얘기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대충 읽으면 '살인자'가 등장하는 소설이니 불건전한 내용으로 볼 수도 있다. 허나 외국의 소설은 이보다 더한 '살인범'이 등장해도 명작소설이라며 극찬을 하지 않던가. 이것으로 짐작할 수 있는 건, 이 땅의 부자들이 빈자들을 두려워할 만한 '쫄리는 일'을 해왔다는 것을 반증하는 사례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뭔가 켕기는 것이 있으니 부자를 살해하는 장면을 보고 뜨끔하지 않았겠느냔 말이다. 그들이 '합법'을 목놓아 부르짓지만 결코 '합법의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무엇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금서목록'에 올릴 까닭이 없다. 오히려 정정당당한 부자들이라면 '자신'은 절대 그런 일을 당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더구나 이 책에선 '재벌의 아들'이 사회주의 사상에 입각해서 '빈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주는 역할로 나오기도 한다. 아쉽게도 자신의 친족이 변을 당하자 '살인자에게 관용은 없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돌아서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기본적으로 부자들도 '선량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도 부자들은 자신들에게 놓인 환경 때문에 '끝까지 선량할 수는 없'었다. 왜냐면 자신이 가진 부를 '물려주기' 위해선 빈자들의 몫을 빼돌려 '자신의 몫'으로 착복하는 일을 하지 않고선 부자의 자리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부자로 살다보면 '빈자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아넣는 일'도 서슴지 않고 할 수 있는 냉혈한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부자가 빈자들을 궁휼히 여기면 '부를 세습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악착같이 착취하고 '합법'을 가장한 '불법'을 자행해야 겨우 '부자의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대한민국 부자들만 이런 것일까? 아니면 세상의 모든 부자들이 다 이런 축인가? 정녕 부자가 되는 방법이 이런 것이라면 난 부자가 되고 싶지 않다. 정말 나쁜 사람이기 때문이다. 난 어릴적부터 왜 '존경받는 부자'가 없는 것인지 몹시 궁금했더랬다. 최부자의 예도 있지 않던가? 굶주리는 사람이 없게 하고, 곳간을 채우려 들지 말고, 관직을 탐하지 말라는 원칙으로 '부자의 의무'까지 제시하지 않았던가 말이다. 지금도 이런 재벌이 있다면 온 국민들이 '돈쭐'을 내주려 벼를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대한민국 안팎으로 이런 재벌이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정녕 부자들은 다 '착취'를 일삼는 나쁜 사람들이란 말인가. 굉장히 서글픈 일이다.
그렇다면 국가가 나서면 어떨까? 한 나라에 빈자가 많아지면 정치, 경제, 사회가 제대로일 리 없으니 말이다. 가난을 완전히 뿌리 뽑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가난'이 부끄럽지 않도록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국가가 배려 가득한 복지정책을 촘촘히 만들어두면 어떻겠느냔 말이다. 그러라고 국민들이 '세금'을 내는 것 아니겠는가. 오히려 이런 좋은 일에 세금을 투명하게 쓰인다고 국가가 앞장을 서면 국민들도 더 적극적으로 '세금'을 내려하지 않겠는가? 더구나 부자들이 따로 기부금을 내지 않아도 '세금탈루' 할 생각말고 따박따박 내야할 세금 다 내는 것으로 빈자들의 의욕과 삶의 질을 높이는데 일조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겠느냔 말이다. 매번 '선심성 정책'이라면서 발목만 붙잡지 말고 '효과적인 복지정책'을 지속적으로 운영하는 것만으로도 대한민국이 얼마나 살기 좋은 나라가 되겠느냔 말이다. 도대체 얼마나 꿍쳐 먹기에 해마다 '예산부족'으로 추경하는 것도 모자르다고 하면서, 정치인들 월급만 따박따박 올려 받아 처먹냔 말이다. 해야 할 일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말은 번지르르하게 '무노동 무임금 원칙'이 무너지면 안 된다, '공산주의가 젤 싫어요'라고 하면서, 나라 경제가 휘청이게 만드는 '빈자들 양성 프로젝트'는 왜 매번 빠뜨리지 않고 시행하는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