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eview MCMXXIV / 이음 2번째 리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과학'이 주는 편리함은 이루 다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다. 그래서 우리는 '과학만능주의'에 기대어서 우리가 마주한 모든 문제를 '과학'이 해결해줄 것이라 믿을 정도로, 어쩌면 그 '믿음'이라는 것을 넘어 '종교적 맹신'이나 '광신도'처럼 굴면서, 과학에 기대어 산다. 그렇다보니 때로는 '과학'이 가져온 새로운 문제마저도 '과학'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보통은 문제점이 발견된 '주체'에 대한 믿음을 져버리고 새로운 '대안'을 내세워 문제를 해결하려 들기 마련이데, 현대의 과학을 대체할 새로운 것이 마땅하지 않기에 문제를 발생시킨 과학을 '비과학'으로 내몰고, 대안으로 내세우고 문제점을 해결한 과학을 진정한 '과학'으로 새롭게 세우는 일이 당연시 된다. 그만큼 오늘날의 우리는 과학에 대한 믿음(?)이 견고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과학'의 위치는 견고하다고 놓고, '과학자'의 위치도 견고한지 되물어보자. 우리는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에 대해서는 절대적인 신뢰를 보인다. 물론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해서 '기존의 과학'이 허물어지고 '새로운 과학'으로 대체되는 과정은 차치하고서 말이다. 그렇게 절대적인 신뢰를 보이는 '과학'과는 달리 '과학자'들에게 보내는 신뢰도는 완벽한 신뢰와는 사뭇 다르다. 왜냐면 '과학자'들은 과학을 행하는 사람이기에 꽤나 신뢰도가 높은 편이긴 하지만, 그들 자체가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종종 '미친 과학자'를 공상과학소설 속에 등장시켜 지구멸망, 인류멸종을 부추기는 '지구정복'이란 허황된 꿈을 꾸는 과학자를 등장시키기도 한다. 때론 인간이 아닌 '과학의 결실'로 만든 '인공지능 로봇'이 사람을 대신해서 허황된 꿈, 아니 로봇에게 어울리는 '엉뚱한 알고리즘의 결과'로 지구환경을 깨끗하게 되돌리기 위해서나, 하나 뿐인 지구를 멸망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해서 인류멸종 프로그램을 시작하는 '미친 로봇'이 등장을 예고하기도 한다. 이때에도 우리는 '과학'을 맹신한다고 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해, 과학이 완전무결하게 인간에게 이롭다고만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믿어 의심치 않는 과학은 과연 '윤리적'으로도 아무런 문제가 없느냐고 말이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과학에게 '최선입니까?'라고 되묻고 있다.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과학자의 판단'이 항상 옳다고 믿지 않는다. 또 '과학적 수행'이라면 무조건 옳은 절차이기에 묻지도 따지지도 말아야 한다고 믿지도 않는다. 이렇게 과학적 판단과 수행의 결과물이 늘 '윤리적 문제'를 아무런 문제도 없이 통과하지 않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논란이 있었을 때에도 일본정부는 '과학적 검증'을 강조하며 완벽하게 걸러진 방사능 오염수는 깨끗하기 때문에 방류해도 안전하다고 발표를 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를 비롯해서 수많은 나라에서 '의문'을 내비췄고, '우려'를 표명했다. 왜냐면 현재의 '과학기술'로 아무리 완벽하게 '방사능 오염수'를 걸렸다고 하더라도 방사성원소인 '삼중수소'는 거를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본정부도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그런데도 자신들이 방류하는 오염수는 안전하다면서, 이는 '과학적 검증'을 거쳤기에 오염수가 아니라 '처리수'라고 표현해야 맞다면서 끝끝내 방류를 해버렸다. 그렇다면 언제까지 방류를 할 계획인가? 일본정부의 발표대로라면 2035년까지란다. 그때에는 '삼중수소'마저 완벽하게 걸러낼 수 있는 '과학적 기술'이 개발될 것이기 때문에, 지금도 안전하지만 그때에는 더 안전할 것이며, 더 나아가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핵연료봉을 해체할 수 있는 과학기술도 개발완료가 되었을 것이기 때문에, 현재의 문제점을 완전하게 해소할 것으로 기대한단다.
이런 일본정부의 발표에 당신은 얼마나 신뢰를 보내는가? 과연 '방사능 오염수'는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고 마실 수도 있을 정도로 안전하다는 생각이 드시는가? 또한 이미 '과학적 검증'이 되었다는 일본정부의 발표도 신뢰가 가느냔 말이다. 이처럼 우리는 '과학'을 윤리적 잣대로 판단을 할 때 '무한신뢰'를 보낼 수 없게 되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이 책 <과학, 그게 최선입니까?>에는 이런 불편한 진실을 더 많이 마주할 수 있다.
책의 내용은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과학자들이 항상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과학이 우리는 늘 행복하게 만들지 않는다', 마지막은 '과학이 우리에게 늘 밝은 미래만 가져다 주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각각의 물음에 '상세한 예시'를 보여줌으로써 과학, 또는 과학자에게 '윤리적 물음'에 대한 불편한 답을 조목조목 설명하였다. 그렇다면 이 책은 '과학'을 불신하자는 말을 건내고 있단 말인가? 그건 아니다. 다만, 과학을 맹신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위험요소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알맞은 대비가 필요하다는 것에 역점을 두었다. 그렇기에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지만, 결코 불쾌하지는 않다. 어차피 '과학'도 완벽할 수는 없다. 왜냐면 '과학연구'를 하는 주체가 '불완전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믿어 의심치 않는 과학일지라도 시간이 지나고나면 '틀린 과학'일 수도 있다. 마치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이 옳다고 믿었다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나오자 '틀린 과학'으로 증명된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아무리 믿어 의심치 않을 것 같은 '과학적 진실'이라도 틀릴 수도 있다는 겸손한 자세를 갖춰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과학으로 증명된 것'을 모두 부정하자는 말이 아님을 이해해야 한다. 과학적 증명을 부정하기 위해서 '또 다른 잣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더 정확한 '과학적 검증'을 시도해서 두번, 세번 안전한지, 확실한지 살펴보는 꼼꼼함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물론, 꼼꼼함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많다. 이를 테면, '기후변화' 같은 문제는 아직도 첨예한 대립을 보이고 있다. 한쪽에선 '기후변화'는 축복일 뿐이며 따뜻해진 지구는 더 많은 생명체가 번성하는 시대를 맞이할 것이기에 걱정할 것이 전혀 없는 '자연스런 변화'일뿐이라고 일축하는 반면, 다른 한쪽에선 '기후위기'로 지칭하며 엄청난 자연재앙으로 인해 인류문명은 파괴될 것이고, 생태계는 망가지고, 지구환경은 펄펄 끓거나 빙하기를 맞아 '여섯 번째 대멸종'의 결과를 초래할 뿐이라고 절망적인 전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최악의 경우를 맞이했을 때를 대비한 '대안'을 마련되어 있는가? 그 또한 '없다'고 한다. 왜냐면 이미 늦었기 때문이란다.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온실가스배출'을 지금 당장 막는다고 해도 지구의 기온이 더 오를 수밖에 없고, 설령 그게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천문학적인 비용'이 발생할 것이기 때문에 현재의 인류는 멸종에 이르기까지 시간을 늦추는 정도밖에, 그래봐야 2040년까지라는 절망적인 전망만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온실가스 감축'을 하지 않으면, 그 앞당겨질 수도 있다는 암울한 전망만 내놓고 있다.
이런데도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 할까?'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그렇다'다. 우리 인간은 '하나 뿐인 지구'를 망치는데 주범이고, 확신범이자, 현행범이긴 하지만, 하나 뿐인 지구를 '되살릴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되살릴 수 있는 방법 또한, 역설적이지만 '과학'뿐이다. 물론 이 책에서도 인간의 이러한 '오만'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긴 하다. 과학으로 망친 것을 과학으로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지구환경에 최악이었고, 인류에게 끼친 해악이 차고도 넘친다고 말이다. 그런데도 어쩌랴? 인류에게 남은 방법이 '과학'뿐이지 않느냔 말이다. 그럼에도 '과학'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거라는 맹신만큼은 결코 가져선 안 된다는 지적에 겸허히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과학에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도 아무런 문제도 없고, 의심할 바도 없을 정도로 청렴결백(?)한 과학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라는 당부를 덧붙이고 싶다. 적어도 이 책에서 묻는 '윤리적 질문'에 과학은 명쾌하게 답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당당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