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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type님의 서재
  • 우리가 꿈꾸는 나라
  • 노회찬
  • 10,800원 (10%600)
  • 2018-09-17
  • : 1,004

우리가 꿈꾸는 나라

 

  

노회찬 의원이 생전에 창비에서 주최한 1~2시간 짜리 강연회에 참석하여 했던 강연을 녹취하여 책으로 묶어낸 『우리가 꿈꾸는 나라』가 그의 서거 후에 출판되었다.

‘꽃이 진 뒤에야 봄이었음을 알았다.’고 그가 얼마나 소중한 우리의 정치적 자산이었으며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이었는지를 너무나 늦게 알아버렸다고 고백한다. 그의 부재 이후에 이런 고백이 얼마나 소용있나 하는 것은 별개로 치더라도 말이다.

 

대한민국에서 좌파 운동을 한다는 것은 특히나 더 고통스러운 일이다.

내부적으론 우편향 및 나와 정파와 노선이 다른 운동 단체들과 노선 투쟁을 벌여 헤게모니를 장악해야 하는 일이 있으며,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조직우선주의에 따른 인간의 도구화, 민주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투쟁하는 운동 단체 내에서 벌어지는 비민주적인 행태들을 보고 견디며 운동에 대한 회의를 이겨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외부적으론 사법 당국에 걸리면 구속, 해고에 지금은 없어졌지만 간첩으로 엮기 위해 상시적으로 지속되었던 죽음보다 더 했던 고문에, 그렇게 만신창이가 되어 나오면 빨갱이로 경멸당하는 일을 견뎌내는 것이 좌파 운동이기 때문이다. 그런 싸움 속에서 자신의 첫 마음을 잃지 않고 지켜낸다는 건 정말로 아득한 일이다.

노회찬은 노동조합의 ‘노’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키는 대한민국을 근본부터 변혁시키기 위해 용접공으로 노동현장에 위장취업을 했고 이후, 자신의 생을 스스로 다 할 때까지 자신이 지닌 원칙을 지켜낸 것을 긍지로 삼고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알던 몰랐던 그 원칙이 유일하게 깨져버렸다고 판단한 순간, 그는 자신의 몸을 던져 버린 것을 보더라도...

노회찬이 어느 정치인과 다른 점이 있다면 자신의 조그만 티끌도 못 견뎌하는 순결한 양심의 소유자였다는 점과 자신이 삼았던 원칙을 지키기 위해 어떠한 불의와도 타협하지 않았던 불굴의 원칙주의자라는 점 아닐까... 그러면서도 따뜻한 마음과 가슴으로 온갖 불의의 현장을 늘 지켰으며 어떠한 위기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았던 대범함 등이 노무현 대통령을 떠올리게도 하지만 정치적 입장과 노선은 분명히 달랐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이라는 자리가 가지는 책임의 무게에 따른 차이인지도 모르겠지만...

 

우리 사회가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가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노회찬이 꿈꿨던 사회는 무엇이며 그의 죽음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2016년 촛불집회가 만들어 낸, 그야말로 세계사적으로 기록될 만한 민주적인 정권 교체 이후 우리 사회에 던져진 과제는 세 가지라고 한다.

불평등에서 평등으로, 불공정에서 공정으로, 전쟁에서 평화로.

이 중에 불평등의 문제는 주로 사정기관에 관련한 문제로 이른바 ‘조국 사태’라고 불리는 검찰 및 사법부의 편향성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우여곡절 속에 공수처법이 통과되고 정세균 총리 및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그의 역할들을 다 하여 검찰의 무소불위 권력을 조정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으니 여기서는 넘어가기로 하자. 그리고 평화의 문제 역시 문재인 대통령이 유일하게 잘 하고 있는 분야 중에 하나이니 역시 넘어가기로 하자. 물론 개인적으론 미국의 눈치 좀 덜 보고 더 과감하게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이 정도만 하더라도 어디인가 싶다.

 

남은 건 불공정의 문제이다. 앞의 두 문제도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불공정은 사람들의 먹고사는 문제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성격을 달리한다. 책에도 나오지만 우리나라는 1년간 전체 생산된 부(재화) 중에서 28%만 나눠쓰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사람들의 삶의 질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의료, 교육, 주거, 실업 구제 등의 공공성을 이 28%라는 부로 유지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누가 왜 언제부터 28%만을 공공성 유지에 써야한다고 말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단다. 법에도 나와 있지 않단다. 근데 왜 우리는 이 28% 내에서만 아웅다웅하며 티격태격거려야 하는 걸까? 유권자인 우리는 그렇게 하라고 얘기한 적이 없는데, 누가 이렇게 결정하고 시작하라고 하는 걸까? 28%라는 덩어리를 더 크게 늘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책은 이런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정답은 간단하다. 상위 2%로 몰리는 부의 규모를 줄이고 그렇게 획득된 재원을 하위 90%의 사람들을 위해 쓰면 된다. 이걸 정책으로 하려니까 안 되는 거다.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본인들의 월급을 본인들이 결정하는 셀프결재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집단에게 뭘 기대할 수 있을지는 별개로 치더라도, 국회의원 대부분이 상위 2%에 근접한 사람들 아니던가? 노동문제에서 만큼은 1%의 차이도 없는 민주당과 자유당 아니던가?

이렇게 볼 때, 정책으로 입안이 안 되는 이유 역시 간단하다. 국회의원 스스로가 상위 2%에 속하는 사람들이며 (아니면 최소 그런 지향이며) 무엇보다 노동조합의 ‘노’자에 여전히 불필요한 과민반응을 하는 시장주의자 일색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불공정의 문제를 우리 사회의 주요 문제로 제시하고 이를 법안으로 제시하여 정면으로 문제를 돌파하고자 했던 유일한 국회의원이 노회찬이었음을 짚어두고자 한다.

여기서 진보정당 건설을 위해 한 평생을 노력했던 그의 삶을 돌아보자. 그의 죽음이 우리에게 무겁게 이야기하는 것은 대한민국 사회의 변화를 위해선 진보정당은 반드시 필요하고 진보정당이 국민들로부터 진실되게 지지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는 해방 초기 ‘남로당’의 뼈아픈 실책 이후로 합법적인 진보정당 운동을 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1945년 해방 당시 합법 정당으로 출발했던 남로당은 미군정과의 대립, 북로당(이후 조선노동당) 김일성과의 경쟁 등으로 인해 모험주의 및 극단적인 테러 전술 등을 남발하였고 결국 48년 이후 합법 정당의 지위를 잃고 말았다. 그러다 1955년 남로당 전남도당 위원장이었던 김선우가 구례 인근에서 사살된 이후 남로당은 사실상 궤멸되고 말았다. 그리고 다음 해인 1956년, 조봉암을 당수로 하여 등장했던 ‘진보당’이 1958년 그의 사형집행과 더불어 진보당 역시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렇게 진보정당 운동은 꿈도 꾸지 못하고 박정희에서 김영삼까지 이어지는 암울한 시간이 흘러 어렵게 어렵게 출범했던 진보정당이 바로 민주노동당이었던 것이다. 42년 만에 합법 진보정당이 출범한 것이니 그 의미가 어떠하겠는가. 2000년 1월의 일이다.

진보정당은 출범했지만 지하운동 및 운동권 그룹 내의 정치만을 하다가 사실상 대중들을 향해 의회정치를 펼쳐 보는 적이 처음이라 실수투성이에 전략적인 오류도 많았다. 어쨌든 지난한 진보정당 운동의 부침을 거쳐 20년이 지난 지금은 정의당을 비롯한 녹색당, 노동당, 민중당 등 여러 군소 정당들이 설립되어있긴 하다. 여기서 잠시 삼천포로 빠져보자.

버스를 타고 가는데 버스 기사가 길도 잘 몰라서 여기 갔다 저기 갔다 삥삥 돌아간다고 치자. 거기다 운전은 드럽게 못해서 타고 가는 사람들을 몹시 불안하게 한다고 치자. 버스 승객들은 아마도 버스 기사에게 온갖 쌍욕에 당장 끌어내려야 한다고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칠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버스 기사를 끌어내리고 나니, 운전할 사람이 없네? 지금 우리나라 진보정당이 위치하고 있는 현실이 딱 이렇지 않은가 생각해 본다.

이번에 선거법도 군소정당에 조금이나마 유리하게 개정되었다고는 하지만 큰 진전이 있을지에 대해선 여전히 의문이다. 정의당을 예로 들어보자. 사실 정의당만 하더라도 나는 불만이 참 많다. 민주당과는 분명히 다른 자신들만의 색깔을 만들어내는 데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노회찬이 있을 때에는 그래도 노동문제에 대해 정의당이 잘 하겠지란 믿음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믿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또한 페미니즘과 관련한 논쟁으로 정의당은 운동의 명분을 얻었을지는 모르나 그들을 정당으로 존재하게 하는 유권자들의 마음을 잃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정의당이 이번 총선에서 선전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현재 정치적으로 식물인간 상태인 교사가 진보정당에 가입하거나 진보정당 운동에 뛰어든다는 건 언감생심 지금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다가 해고된 사람이 얼마나 많던가... 뜻있는 일이긴 하지만 무모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교사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그래, 다들 예상했듯이 그거 맞다.

내가 만나는 아이들이 최고의 민주시민이 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 그래서 그 아이들이 비판적 사고력과 집단지성의 힘으로 세상의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다는 능력과 믿음이 길러지는 데 돌맹이 하나 만큼의 기여라도 할 수 있는 것, 내가 몸담고 있는 학교가 최대한 민주적으로 운영되기 위해 최선을 노력을 다 하여 학교의 본래 역할을 찾아 나가는 데 마중물이 되는 것...

어서 빨리 교사 및 공무원에게도 정치적 자유가 주어져서 자신이 원하는 정당에 얼마든지 당원으로 가입하고 당비를 낼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그런 날이 온다면 노회찬이 꿈꾸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 꿈꾸는 그 날이 조금이라도 빨리 오지 않을까...

그 누구에게라도 따뜻한 가슴을 열어 보이며 남들이 안 알아주어도 자신의 원칙을 지키며 뚜벅뚜벅 걸어갔던 그이기에, 그렇게 늘 자신을 낮추고 어떤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그였기에,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맺혀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뒤늦게 그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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