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도끼를 처음 만든 사람은
자신이 한 일에 스스로 놀라워
마음 끌리던 사람에게 먼저 달려가 선물을 주고
처음으로 입을 열어 사랑을 고백했을 것이다
처음 돌도끼는 시였다가
훗날에 가서야 연장이 되었을 것이다"
- 기원에 대하여
사랑의 고백이고,
"나는 그 사내에게 시의 행방을 묻네
쌓아둔 지식도 전답 같은 권력도
남의 노동으로 얻은 낭만도 고래등 같은 자아도
족보 같은 자의식도 비단 같은 기교도 버리고
집을 버리고 나오지 않겠느냐고
맨발로 훌훌 걸어 나오지 않겠느냐고"
- 집을 버리고
지식, 권력, 낭만, 자아, 자의식, 기교 따위는 당연히 버려야 하는 것이고, 집마저 버리고 맨발로 훌훌 걸어 나와야 얻는 것이다. 자본에 예속되어 있으면서, 알량한 문학 권력을 추구하는 자의식과 기교들을 비판한다. 19세기 요절 시인 이언진이 떠오른다.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려거든 밥그릇을 걷어차고 남들이 간 길을 가지 말라던.
"누구였을까 물결 위에 피었다 바람에 지는 꿈들을
처음 바위에 새기려던 자들은
돌아서면 다시 고쳐 써야 하고
자고 나면 박박 지워버리고 싶던 말들 누가 처음 바위에 붙들어놓으려고 했을까
바위를 향해 이건 '나'라고 처음 외친 자는 누구였을까
자아에도 기원이 있다면
풀잎처럼 피어나는 시의 마음이었으리"
- 기원의 역사 반구천 암각화 앞에서
풀잎처럼 피어나는 자연스러운 것이며, 자아의 기원이다. 나를 나라고 외치는 것이 시다.
"내 고향에는 오래된 시 무덤이 하나 있지
임진왜란 때 싸우다 죽은 의병장
적진에 있는 그의 시신을 찾아올 수 없어
그가 쓴 시와 그를 아끼는 사람들이 쓴 시를 묻어
봉분을 만든 것인데
시 아닌 그 무엇도
그 사람을 대신할 수 없었다는 것인데"
- 주인 잃은 저들이 비바람 속에서
사람이라는 한 존재를 대신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백무산은 시인이다.
그의 직업은 "슬픔을 노래할 의무가 있어 사라진 것들을 애도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