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사지원도서
법정 추리물을 좋아하는 내게 『4의 재판』은 첫 문장부터 “이번엔 가슴이 먼저 답답해지겠구나” 예고하는 소설이었다. 결혼을 앞둔 지훈이 20년 지기 친구 양길과 필리핀 여행을 떠났다가 의문의 죽음으로 돌아온다. 급히 화장된 시신, 지훈 명의 사망보험금 19억의 유일한 수익자가 양길이라는 사실, 곳곳의 정황은 한 사람을 가리키는데도 법정은 번번이 멈칫한다. ‘합리적 의심이 조금도 없을’ 만큼의 증명, 그 단단한 문턱 앞에서 약혼녀 선재는 매일 방청석을 지키며 깨닫는다. 재판이 기대만큼 “정의”를 돌려주지 않는다는 것, 법은 때때로 주먹이 아니라 신호등처럼 질서를 정리하는 데 더 익숙하다는 것을.
이 작품의 반복되는 핵심은 분명하다. 직접증거 부재, 완벽한 법리 뒤에 숨는 악인, 피해자에게 쌓이는 무기력과 분노, 그리고 형사판결이 민사(보험금)로까지 이어지는 시스템의 냉정함. 작가는 20여 년 법조 경력으로 법정의 언어와 절차를 촘촘히 재현하면서도, 그 틈을 악이 어떻게 ‘도구’로 바꾸는지 보여준다. 무엇보다 매력적인 건 선재의 변화다. 법 앞에서 작아지던 사람이, 끝내 법의 논리를 거꾸로 쥐고 “다시 재판대에 세우는” 쪽으로 걸어가며 복수극의 온도를 끌어올린다.
읽는 내내 고구마처럼 답답하지만, 그 답답함이야말로 이 소설의 의도다. “법적으로 무죄인 사람은 도덕적으로도 무죄인가?”라는 질문이 마지막 장까지 따라붙는다. 법정물의 쾌감(논리 싸움, 판세 전환, 반전)을 챙기면서도, 책을 덮고 나면 씁쓸하게 남는다. 우리가 기대는 ‘법’은 정의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 얼굴을 움직이는 건 결국 인간이라는 사실을.
#4의재판 #도진기 #황금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