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홋카이도의 강물 위로 부유하는 어렴풋한 형체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범죄의 냄새가 풍기는 듯하다가 이내 전혀 다른 길로 인도한다. 마쓰이에 마사시는 의도적으로 기대를 빗나가게 하고, 그 틈으로 삶과 사랑, 그리고 자연의 숨결을 밀려오듯 흘려보낸다.
주인공 게이코는 서른다섯. 도시의 질서를 벗어나 낯선 마을 안치나이에 정착해 우편배달을 시작한다. 누군가의 하루를 담은 편지를 배달하는 일은 단조롭지만, 동시에 삶의 맥박을 가장 가까이서 듣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러던 중 만난 데라토미노 가즈히코는 마치 다른 시간대에 사는 인물 같다. 그는 세상의 소리를 수집하며, 게이코가 잊고 있던 감각의 결을 깨운다. 그와의 만남은 게이코의 삶을 불쑥 불타오르게 하지만, 동시에 더 깊은 수수께끼 속으로 그녀를 밀어 넣는다.
마쓰이에의 문장은 언제나 자연을 배경이 아니라 인물처럼 세운다. 눈이 흩날리고, 바람이 밀밭을 스친다. 청량한 공기와 햇볕의 냄새가 페이지마다 배어 있다. 계절의 변화를 따라가다 보면, 게이코와 가즈히코의 관계 역시 자연의 리듬과 함께 고요히, 그러나 불가피하게 무르익는다. 그들의 사랑은 젊은 날의 격정이 아니라, 이미 삶의 무게를 짊어진 어른들의 사랑이다. 그래서 더 서늘하고, 그래서 더 진실하다.
특히 ‘프랜시스’라는 존재는 기묘하다. 현실과 상상의 경계에 놓인 듯 불분명한 이 이름은, 두 사람의 관계를 지탱하는 비밀스러운 장치이자 동시에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리 없는 등장인물 같다.
마쓰이에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문득, 내가 무심히 지나쳐온 감각이 되살아나는 순간을 맞닥뜨린다. 스치는 바람의 결, 오래 묵은 나무의 촉감, 그리고 사랑하는 이가 내 곁에 있다는 단순한 사실의 온기. 이 모든 것이 언어로 정제되어 내 마음을 부드럽게 두드린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에서 이미 보여주었던 섬세한 필치는 《가라앉는 프랜시스》에서 더욱 농밀해졌다. 도시를 떠난 한 여인의 연애를 따라가며, 인간의 삶과 자연, 그리고 감각의 힘을 다시금 증명한다.
책장을 덮고 나면, 이상하게도 옆에 있는 사람의 숨결이 새삼 귀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아마 그것이 마쓰이에 문학의 마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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