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사지원도서
안락사라는 주제를 다루는 소설은 흔히 무겁고 차갑게 느껴지지만, 『안락한 삶』은 오히려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결을 품고 있어 여운이 오래 남았다. 이 작품은 죽음을 금기시하거나 단순히 비극적으로만 그리지 않고, ‘선택할 수 있는 권리’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점에서 특히 인상 깊었다.
무엇보다 강하게 다가온 건 ‘가족이 된다는 것의 의미’였다. 혈연의 낯섦과 함께 찾아온 이복동생 영원은 단순히 보호 대상이 아니라, 미래 자신에게 죽음의 권리를 묻는 존재가 된다. 죽음을 허가받기 위해 AI와 제도 앞에 서야 하는 소녀의 모습은 차갑고도 불합리하지만, 동시에 지극히 현실적인 풍경처럼 다가왔다. 그 속에서 ‘동의’라는 형태는, 누군가의 삶과 죽음을 존중하는 가장 근원적이고 용기 있는 태도임을 알게 된다.
안락사에 대해 이제는 필요하다는 입장인 나에게 이 소설은 일종의 '설득'처럼 읽혔다. 죽음을 택한다는 건 단순히 고통을 피하려는 행위가 아니라, 남은 시간과 자기 존재를 끝까지 존엄하게 지키려는 선택일 수 있다는 것. 영원이 바랐던 것은 죽음 자체가 아니라, 자기 결정을 인정받고 싶다는 소망이었다. 그리고 미래가 마침내 그 바람 앞에 서는 순간, ‘죽음을 허락하는 사랑’이라는 어려운 문장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다.
『안락한 삶』은 결국 안락사를 말하는 동시에, 살아 있는 자들의 윤리와 용서, 그리고 남겨진 자들의 무게를 이야기한다.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하지만, 읽다 보면 지금 우리의 사회와 가족 안에 놓인 문제들이 그대로 비친다. 무엇보다,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유머와 따뜻함을 놓치지 않는 작가의 시선이 끝까지 책을 놓지 못하게 한다.
나에게 이 소설은 "죽음조차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선택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더욱 단단하게 해준 작품이었다. 동시에, 사랑은 증명이 아니라 ‘동의’일 수 있다는 문장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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