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제본지원도서
핵으로 뒤덮인 대지 위에서, 인간의 오만은 마침내 한계에 다다른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 『키메라의 땅』은 그 폐허 위에 새로이 피어나는 생명 ― 인간과 동물의 혼종, 키메라 ― 의 운명을 따라가는 장대한 이야기다.
소설은 진화생물학자 알리스 카메러가 주도하는 ‘변신 프로젝트’에서 출발한다. 인간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해, 그는 하늘을 나는 에어리얼, 땅을 파고드는 디거, 바다를 유영하는 노틱을 설계한다. 그러나 인간 사회는 언제나 그렇듯, 변화와 다름을 환영하기보다 배척한다. 결국 핵전쟁으로 인류는 스스로를 몰락시키고, 아이러니하게도 알리스의 실험적 창조물들만이 폐허 위에서 새로운 주인이 될 자격을 얻게 된다. 이 아이러니야말로 베르베르가 던지는 냉정한 메시지 아닐까.
베르베르는 늘 거대한 스케일의 서사를 통해 인간의 본질을 되묻는다. 『개미』에서 미시적 세계를 통해 인간의 오만을 비추었다면, 이번에는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신인류의 시선에서, ‘인간이란 종이 과연 특별한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흥미로운 점은, 키메라들의 존재가 괴물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다양성의 가능성으로 제시된다는 것이다. 하늘, 땅, 바다 ― 지구를 이루는 세 요소에 각각 적응한 그들은 자연과의 관계를 다시 묻는, 하나의 새로운 답안지처럼 보인다.
읽는 내내 서늘한 공포와 동시에 묘한 희망이 교차했다. 인간의 파괴적 본성이 결국 제 종을 무너뜨릴 것이라는 전망은 더 이상 소설적 과장이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종의 경계가 무너지고 뒤섞이는 과정 속에서 태어나는 또 다른 생명들은, 우리를 대신해 새로운 지구의 주인이 될지도 모른다. 그것은 인류의 종말일까, 아니면 지구 생명사의 또 다른 진화일까?
『키메라의 땅』을 덮으며 남는 것은 경이와 두려움이 뒤섞인 침묵이다. 우리가 ‘끝’이라고 부르는 자리에, 어쩌면 또 다른 시작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것은 인간의 시작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지구라는 오래된 행성은, 여전히 생명의 이야기를 이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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