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사지원도서
도시의 역사는 곧 인간의 역사다. 나는 늘 도시를 거닐며 시간의 결이 느껴지는 장소에 머물기를 좋아한다. 오래된 돌길, 닳은 계단, 때로는 지하철역 벽면에 무심히 걸린 사진 한 장에도 이야기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걸 느끼곤 한다.
이 책은 1만 년의 세월을 40개의 도시로 나누어 보여준다. 고대 여리고의 부장품에서 권력의 흔적을 읽고, 괴베클리 테페에서 종교가 농경에 앞섰다는 통념을 뒤집는 서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문명의 기원’이라는 물음 앞에 서게 된다.
개인적으로 초기 도시들 이야기가 가장 흥미로웠다. 메소포타미아에서 농업이 시작되고, 우루크에서 최초의 문자가 탄생한 이유가 곡물의 회계 처리 때문이었다는 설명은 문명이 얼마나 실용적인 문제 해결에서 출발했는지를 보여준다. 모헨조다로의 상하수도 시설이나 공중목욕탕이 로마보다 앞섰다는 대목에서는 오래된 세계가 지닌 정교함과 우리 인식의 편협함을 동시에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은 정보 나열에 그치지 않고, 도시별로 인구 밀도, 개방성, 재정 안정성이라는 ‘혁신의 공식’을 통해 공통점을 짚어내고, 각 도시가 만들어낸 고유한 문화적·사회적 에너지의 흐름을 섬세하게 추적한다. 피렌체에서는 금융업과 예술 후원이 어떻게 르네상스를 열었는지를 보여주고, 아테네에서는 외부 사상과 기술을 유연하게 받아들인 개방성이 철학과 민주주의의 탄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짚는다. 이러한 서술은 우리가 ‘도시’라는 공간을 바라보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는다.
종교적 중심지였던 괴베클리 테페나 고대 도시들의 권력 구조는 과연 자유로운 개인을 존중했는가? 실제로 많은 문명은 배제와 통제, 때로는 폭력과 결속의 논리 위에 세워져 있었으며, 오늘날조차 ‘문명화된’ 도시 안에서조차 약자의 자유는 보장되지 않는다.
인간이 과거의 자신보다 조금은 나아지려는 움직임을 도시라는 공간 속에서 끊임없이 시도해왔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마치 도시가 끊임없이 갱신되는 장소인 것처럼, 인류도 스스로를 개선해나갈 가능성이 있다는 희망 말이다. 그리고 그런 희망은 피렌체의 공방, 볼로냐의 교실, 아테네의 광장에서뿐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의 골목과 광장에서도 자라고 있을 것이다.
책의 마지막에 실린 15가지 ‘토의를 위한 질문’은 이 여정을 마무리하면서도 다시금 사유의 시작점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도시를 사랑하고, 도시에 깃든 시간과 사람을 아끼는 이들이라면 이 책은 분명 깊은 울림을 줄 것이다. 책장을 덮고 난 지금, 나는 다시 한번 내가 사는 도시를 거닐며, 이곳에서 만들어질 다음 이야기를 상상하게 된다. 그리고 그 상상이, 곧 우리의 미래일지도 모른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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