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사지원도서
서로 다른 풍경을 살아내는 여자들의 이야기
여성으로 살아오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말 없는 긴장과 설명되지 않는 거리감에 익숙해졌다. 그런데 강보라의 첫 소설집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을 읽는 동안, 오랜만에 그 익숙함을 낯설게 바라보게 되었다.
이 소설집은 다정하지 않다. 대신 정직하고 섬세하며, 무엇보다 용기 있다. 강보라는 말없이 켜켜이 쌓인 감정과 관계의 결을 예리하게 짚어낸다. 그 안에는 젊은 날의 질투, 씁쓸한 동경, 이유 없는 거북함, 겉도는 유대감 같은 것들이 담겨 있다. 우리가 매일같이 마주하면서도, 나이가 들수록 쉽게 말하지 않게 되는 감정들이다.
표제작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은 마치 내 안의 내밀한 방 하나를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누구보다 ‘정제된 감각’으로 살아왔고, 그렇게 사는 것이 옳다고 믿었던 인물이 낯선 공간과 사람들 속에서 흔들리는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다름을 경계하면서도, 그 다름에 끌렸던 시간들이 있었다. 사람 사이의 거리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외롭고도 아름답게 존재하는지를 정직하게 묻는 질문에 공감하게 된다.
「신시어리 유어스」를 읽으며, 나는 한때 가까웠던 어떤 여자를 떠올렸다. 삶의 속도와 방향이 달랐다는 이유로 결국 마음을 닫게 되었던 사람. 작중 인물 단과 시내, 문태 언니 사이의 복잡하게 얽힌 관계는 여성들 사이의 미묘한 ‘엇갈림’과 ‘잊지 못함’을 정직하게 그려낸다. 어떤 관계는 끝내 완전히 이해되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편에 오래 남는다. 때로는 부러움으로, 때로는 원망으로. 하지만 결국에는 다정함으로 돌아가는 감정.
「바우어의 정원」에서는 아이를 잃은 여자가 서로의 상처에 조심스레 다가간다. 나이가 들수록 슬픔을 말하는 일이 서툴러진다. "그 말을 들으니 나는 ~한 기분이야." 그렇게 천천히, 조심스럽게, 우리는 서로에게 닿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이 단편은 지금껏 지나온 시간과 상처들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는 이야기였다. 희망은 바로 그런 방식으로 피어나는 것임을, 이 소설이 조용히 말해준다.
작가는 말한다. 인간관계란 완벽한 이해나 통합이 아니라, 스치듯 일어나는 ‘농도의 변화’일지도 모른다고. 단순하지만, 그래서 더 진실하게 다가오는 말이다. 사람을 사랑하면서도 경계하고, 이해하려 하면서도 종종 포기하며 살아간다.
책을 덮은 후,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졌다. 완벽한 이해는 아니더라도, 진심이 담긴 말 한마디, 눈빛 하나가 서로를 조금씩 바꾸고, 살아가게 만든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책이 전하는 가장 따뜻한 위로가 아닐까. 삶의 중턱에서, 우리는 여전히 사람을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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