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오 이시구로에게 『남아 있는 나날』은 부커 상과 함께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작품이다.
1930년대 영국을 배경으로 평생을 집사로 헌신한 스티븐스가 새 주인을 만나고 생애 처음으로 여행을 떠나면서 과거를 회상하게 된다. 평생을 '위대한 집사'에 대한 자신의 직업관을 뛰어넘어 삶의 신념을 이야기한다. 주인에 대한 절대적 믿음과 복종 그리고 이를 넘어서는 헌신이 있어야 하며 지금까지 영국의 달링턴 홀과 나리에 대한 헌신을 들려준다.
달링턴 귀족 가문의 장원을 자신의 삶의 전부로 여기고 헌신하며 살아온 집사 스티븐스는 '위대한 집사'가 되기 위해서 사랑마저도 떠나보낸다. 그리고 30년 넘게 모신 주인 달링턴 나리와 달링턴 홀을 드나든 수많은 정치가들이 있었지만 사람만 착했던 주인 나리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나치에게 이용만 당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맹목적으로 주인을 섬긴 스티븐스는 허망함과 상실감을 느끼는 건 잠시뿐 새로운 주인을 만나고서는 그를 위해 헌신하겠다고 새로운 각오를 다진다.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지켜 나가는 것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아닌 것을 느꼈음에도 자신이 여태 쌓아 놓은 것들이 무너질까 봐 고집을 피우고 변화를 거부하는 그 모습이 너무너무 안타깝다. 노년에 다시 손짓하며 찾아온 사랑을 또 외면해 버리고 마는 그 고집을 과연 신념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근대와 현대가 교차하면서 대영제국에 부는 변화의 바람에 적응하지 못하고 절대적인 믿음과 헌신의 삶을 산 달링턴 경과 스티븐스가 보여준 삶이 광장에 모이는 우리네 어른들의 모습과 겹쳐지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