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리뷰] 텍스트의 포도밭
갱지 2024/08/09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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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텍스트의 포도밭
- 이반 일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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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7-25
- : 1,790
이반일리치가 12세기의 수도사로 추정되는 후고의 ‘디다스칼리콘’ 이란 책을 연구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책을 읽는 행위에 대하여 12세기를 기점으로 나누어 분석해 보는 내용이다.
책 내용을 살펴보면,
고대에서 중세의 중반기까지 지금 현 인류가 생각하는 ‘읽는다’ 개념은 거의 없었다고 보는 게 타당한 듯 하다.
구전의 시대.
사람들은 암기를 해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야했고, 지식층은 암기력을 발달시키기 위해 특별한 기술을 개발해야 했을 정도로 비상한 기억력이 요구되는 시절이었다.
라틴어라는 문자 체계는 지식층 정도만이 공유하는 언어였고, 그 특별함이 공고한 지배층으로 만들어주는 역할을 했기에 유지되어 올 수 밖에 없었던 듯하다.
그러나 문명의 발전으로 환경적인 개선이 이루어진 다음엔(종이, 잉크, 인쇄술...) 편하게 쓸 abcd... 를 능가할 글자는 없었고, 종국엔 개나소나 다 글이란 걸 쓰게 되면서 사람들은 신의 생각만 읽는 것이 아니라 인간 개개인의 생각도존중받아(개나 소의 생각도) 책으로 엮어 읽는 체계에 들어서게 되었다는 얘기.
인상적이었던 장면을 꼽자면,
34쪽에 중세시대 양피지에 기록한 책(성경) 대한 묘사가 있다.
얇은 가죽에 손으로 꼭꼭 눌러 쓴 그림같은 글과 섬세한 삽화들이 빛을 통해 아름다운 입체로 반투명하게 드러나는 모습이 마치 눈에 잡힐듯이 선하게 느껴져서 감명을 받았다.
긴 두루마리에 띄어쓰기도 없고 두서도 구분도 없는 그냥 첨가첨가된 기록의 연속일 뿐인 중세 중기 이전의 글 무더기들은 책이라기 보담, 마치 음유시인들이 신의 목소리를 대신하듯 사제들이 음악처럼 줄줄 암송하여 깨쳐야하는 사람들에게 전달되어졌을 것이다.
한마디로 정보를 글로 정리하던 시대가 아니라 정보를 사사받은 개개인이 머릿속에 직접 정리를 하던 시대였던 것이다.
상상해보면 저자의 말처럼 눈 뿐만이 아니라 입, 귀, 감촉, 리듬감등 몸에 있는 온 감각을 동원하여 계속 상기하지 않으면 그 방대한 것들을 계속 외워서 끝까지 유지하기가 어려웠으리라.
작가는 위의 방식등을 적용시키는 수사적 책읽기를 ‘렉티오 디비나’(열성적 책읽기)로 얘기하며 이후의 학자적 책읽기와 구분을 하고있다.
단순하게 생각해서 내가 책에 다가가서 동화되면 수사적읽기, 책을 가져와서 나에게 동화시키면 학자적 책읽기라고 이해를 해버렸는데... 수사적 책읽기에 대한 묘사는 마치 장자의 물아일체같은 것이려나 싶다.
좀 재밌었던 것 중에 하나가, 사제에게 묵언이란 개인적인 말을 못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입이라는 시발점이 되는 감각의 한 부분을 막아서 동시에 다른 것들까지 제어하여 종국엔 정진을 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이었다.
계속 중얼거리는 사람들 중에서 혼자 입을 꼭 다물고 있어야 하다니. 마치 얼음 땡을 하다가 얼음에 걸린 모냥. 그 지고지순함을 상상하니 왠지 짠함이 있다.
이반일리치의 설명대로라면 후고는 두루마리 양피지 시대의 마지막 정리자이다.
백성들을 잘 다스릴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한글은 무시했던 조선 사대부들의 한자처럼, 양피지의 라틴어는 종국에 알파벳과 종이 인쇄술의 영향으로 저물어간다.
더불어 12세기 이후로 서양 현대의 읽기는 더이상 신의 목소리이자 삶에 합일 해야하는 가르침이 아니게 되었다.
이젠 머리속에 궁전을 만들어 암기를 하는 기술은 드라마의 주인공(셜록)정도는 되야 볼 수 있다. (방대한 걸 집어넣을 수 있는 암기 연습은 좀 멋져보이긴 하다. 근데 자폐같이 계속 중얼거려야하는 건 좀.)
현대에 사는 우리는 내가 이 독후감을 쓰듯이 원하는 곳에 원하는 도구로 기록을 하고 날짜나 제목별로 색인을 하면 그만인 것이다.
현 인류는 갈수록 개개인이 기억할 필요가 없는 환경에 처해지고 있다.
고대에서 중세로, 중세에서 근대로, 근대에서 현대로 또 그 이후로...
문자 체계도 이용하는 방식도 어쩌면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계속 변해갈 것이라는 것은 자명해지는 듯하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부지불식간에 후고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의 특별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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