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란_추도_해설
해주의 엄마가 백부의 말에 맞장구를 치는 모습은, 비록 의례적인 동조일지언정 사회적 비극에서 기인한 타인의 고통을 개인의 과실로 치부함으로써 특권적 이익을 보전하려는 자세를 나타낸다. 우리가이로부터 느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살려면 어쩔 수 없지‘라는 무력감과 ‘정말 지긋지긋해‘라는 염오감은 어째서 익숙하다못해자연화되어버린 것일까. 여기에서 마지막으로 검토해볼 문제, 바로 진보의 문제가 등장한다. 빨갱이라는 조롱에도 불구하고 해주가 백부 앞에서 입을 꾹 닫아버린 이유는, 아주 간단히 말하자면, 입을 열어봤자 그녀에게 현실적으로 좋은 일이 없기 때문이다.- P83
이미상_일일야성
남편이 마음을 먹기 전까지는 희망이 있었다. 문제의 다짐은이른바 남성성 상실과 관련된 것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남편의자발적인 존재 축소가 아내에게 미치는 영향에 관한 건.
동갑내기 부부인 운주와 경수는 마흔세 살이었고 그 나이는 이십칠 세가 그러하듯 의미심장했다. 늙음을 일찍 뒤집어쓰고 싶어지는 나이 스물일곱 살 때 운주는 서른 살이라고 말하고 다녔고, 오늘날 경수는 병원에서 전립선 질환을 앓는 오륙십대들 사이에 끼어 자신도 ‘내일모레면 오십‘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늙는 것이두려운 나머지 미리 늙어버려 노화의 공포를 잊으려는 것이다. 제일 먼저 매를 맞으려는 겁에 질린 아이처럼.- P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