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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거리두기가 아닌 사회적 고립.

사람이 온다는 건 한 사람의 일생이 오는 것이라는 시구를좋아한다. 이주노동자는 단순히 ‘인력‘이 되어 우리 사회의 노동력 빈칸을 메우러 오는 것이 아니다. 이주노동자들은 자신의이야기를 한 보따리 짊어지고 오는 사람들이다. 그 보따리 안에는 삶도 있고, 꿈도 있고, 울음도 있고, 웃음도 있다. 특히 이주노동자의 인권이 있다. 이주노동자의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밥상도 건강하다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P15
어떤 사람들은 고용허가제가 한국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주장한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고용허가제는 인력이 부족한 한국의 사업장에 이주노동자가 단기로 와서빈자리를 채우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그래서 이 제도는 내국인 구인 노력을 의무화한다. 제조업, 건설업, 서비스업은 14일 동안, 농·축산업과 어업은 7일 동안 일자리가 필요하다는 공고를낸 뒤에도 일손을 구하지 못하면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다. 내국인(선주민)이 일하러 오지 않는 곳에 외국인(이주민)이일을 하도록 돕는 제도인 것이다. 따라서 고용허가제는 한국이필요로 해서 만든 제도이지 저개발국 사람들에게 시혜를 베풀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아니다.- P116
고용허가제 업무 편람에 따르면 이주노동자가 성폭행 피해를이유로 사업장 변경을 신청할 경우, 고용 센터에서 조사 후 피해사례가 인정되면 ‘긴급 사업장 변경‘이 허용된다. 피해자의진술 외에 증거가 없을 경우 상담 기관에서 상담을 받도록 안내하고 그 상담 결과를 토대로 삼아 사업장 변경 여부를 판단한다. 이 모든 사업장 변경 절차는 신속하게 진행하기 위해 3일이내에 마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만일 수사 결과 허위나 거짓(혐의 없음)으로 판정이 날 경우, (긴급하게 사업장을 변경한 경우에도) 악용 사례 방지를 위해 해당 이주노동자에게 ‘불이익‘을 부과한다. 새로운 사업장 알선을 중단하거나 고용 관계 해지후 출국 조치를 단행하는 것이다.
‘이주인권사례연구모임‘에서 2020년에 펴낸 《고용허가제 업무편람 다시쓰기》에서 지적한 대로 "성폭력 피해자의 신고가- P191
접수되면 원칙적으로 피해자와 가해자의 분리를 위하여 필요한 조치로 긴급 사업장 변경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고용 센터는 "수사나 법률의 해석 및 판단을 하는 기관이 아니고, 이에대한 권한도 없다." 또한 "성폭력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지원하고 사례를 다룰 수 있는 전문성을 가진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고용 센터의 공무원에게 성폭력 여부를 판단하게 하는 것은 적절하다고 볼 수 없다. 추가 피해나 보복 행위를 막기 위해서라도 빠른 분리가 필요하다.
게다가 ‘혐의 없음‘이란 판정만으로 이주노동자에게 불이익조치를 하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하다. ‘혐의 없음‘이란 피의 사실이 범죄로 인정되지 않거나 피의 사실을 인정할 만한 충분한증거가 없는 경우를 의미하며(검찰사건사무규칙 제69조), "검찰도 혐의 없음의 결과만 가지고 거짓 고소로 유추하지 않는다. 성폭력 사건의 경우, 둘만 있는 공간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피해자의 진술 이외에 물적 증거가 확실치 않아서 법적인 입증이어렵다. 상황이 이러한데 한국말이 서툴고 한국 문화도 낯선이주노동자가 자신의 피해를 증명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따라서 ‘혐의 없음‘을 근거로 출국 조치를 한다면, 사실상 성폭행 피해신고 자체를 막는 효과를 가져올 뿐이다.- P192
"원래부터 이주노동자들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 왔어요. 한달에 두 번 쉬는데 그 쉬는 동안 사람을 만나면 몇 명이나 만나겠어요. 농촌 사회에서는 아주 보이지 않는 존재예요. 사회적거리두기가 아니라 완전히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으니, 역설적이게도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한 상황인 거지요."
사회적 거리두기가 아닌 사회적 고립. 농업 이주노동자들이처한 상황을 설명하는 적절한 문구였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이들은 사회적으로 보이지 않는 존재였다. 동네나 마을이 아닌, 비닐하우스 근처 기숙사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데다, 정- P195
말 가끔 시내에 장을 보러 가기 때문에 마주칠 환경 자체가 안되었다. 분명 사회 어딘가에는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였던 것이다.
경기도, 충청도, 경상도에서 만난 농업 이주노동자들에게 혹시 한국 사람들에게 차별당한 경험이 있는지 조사할 겸 물어본 적이 있다. 그들의 답은 내 예상과 달랐다. 사업주 말고는 다른 한국 사람들을 거의 만나지 못하기에 차별당한 경험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어쩌다 시내에 가더라도 한국인들이 가는 카페나 식당이 아닌 자기네 사람들이 하는 식당에 주로 간다고 했다. 사회적 고립 상태에서 선주민과 접촉할 기회가 적기때문에 내 질문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것이었다.- P196
그러나 오래전부터 유엔, 국제노동기구, 국제이주기구, 유럽연합 등 국제 사회에서는 초과 체류한 이주민을 ‘불법 체류자‘라부르는 것은, 그들을 ‘불법‘적인 존재로 낙인찍어 혐오를 조장하기에 ‘미등록‘ ‘비정규‘ 같은 중립적인 용어로 써야 한다는 논의가 제기되어 왔다. 초과 체류의 문제는 행정 절차 위반이지 형사상 범죄가 아니기 때문에, 체류 문제가 적발되면 정부가 정한 절차에 따라 조치를 취하면 된다. 교통 법규를 위반한 운전자에게 ‘불법 운전자‘라고 하지 않듯이, 초과 체류한 이주민에게 ‘불법 체류자‘라고 할 필요가 없다. 국내 인권·이주단체에서도 사람의 존재 자체가 ‘불법‘일 수 없기 때문에 ‘불법 체류자‘
대신 ‘미등록 이주민‘ ‘미등록 노동자‘라는 표현을 사용해 왔다.
국가인권위원회 ‘미등록 체류자‘ ‘미등록 노동자‘라는 표현을권고했다. 그러나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이런 단어를 사용하지않았다. 그러다 코로나19가 많은 것을 바꾸어놓았다. 전염병은성별, 국적, 인종, 체류 자격을 가리지 않았다.- P222
이주민, 특히 미등록 이주민과 관련한 기사에 가장 많이 달리는 댓글이 있다. "너희 나라로 가." 심지어 인권과 차별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사람들은 말한다. "힘들면 너희 나라로 가."
그러나 우리는 이주민(외국인)이 선주민(내국인)이 일하고 싶어 하지 않는 자리를 메우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마트에서 사는 식품들, 음식점에서 사 먹는 반찬들은 밭에서, 공장에서 일하는 이주민들의 손을 거쳐 온다. 한국인의 얼이 담긴 ‘김치‘는 베트남, 태국, 캄보디아 이주노동자의 손을 거쳐 만- P236
들어진 지 이미 오래다. 그들 중에는 미등록 노동자도 당연히포함되어 있다.-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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