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숙
부모를 돌보는 시간만큼 노화와 삶의 종말에 대하여 배우고 통찰할 수 있는 시간이 또있을까. ‘마처세대‘(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 자녀로부터 부양을 받지못할 첫 세대)라 불리는 한국의 베이비부머 세대, 이미 60대로 진입한 사람들에게 부모 돌봄은 숙제이자 난제이다. 노화로 삐걱거리기 시작한몸으로 ‘노노(老老)돌봄‘의 주체가 된 그들 사이에서 부모를 누가 돌보고 그 비용은 어떻게 분담하는지는 단골 대화 주제이다. ‘다음은 우리차례‘이기 때문이다. 좋은 삶과 더 나은 사회를 추구하며 치열하게 살았던 청년들이 좋은 나이듦과 죽음을 생각해야 하는 노년층의 다수를구성하고 있다. 초유의 초고령사회를 맞아서 은퇴 이후에도 30여 년은살아야 하는 지금 우리 사회에는 좋은 노년과 새로운 돌봄양식에 대한왕성한 토론과 실험이 절실하다.
엄마는 "오늘 며칠이니?", "나 약 먹었니?" 같은 질문을 수없이 한다.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 속을 유영하는 엄마에게, 매번 처음 받은 질문인 듯 친절히 대답하는 것이 돌봄의 기초임을 나는 한참 후에 알았다. 더 많이 곁에 있는 것, 더 자주 일상을 함께하는 것이 인지력이 퇴화 중인 사람에게는 무엇보다 좋은 처방이다. "사는 게 지루해, 오래 살아 미안해"라고 말하는 부모로 인해 펑펑 울었던 것은 나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 않다, 절대로 팔팔한 노년은 없다. 엄마의 오늘은 나의 내일이다. 앙상한 다리와 마른 가지처럼 굽은 손가락, 말과 걸음이 흐릿해진 엄마를 보며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어떻게 늙어가고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어떻게 돌봄을 의탁할까.- P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