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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 오늘처럼 고요히
  • 김이설
  • 11,700원 (10%650)
  • 2016-04-04
  • : 594

암담한 이야기를 읽고 싶었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하고 놀랄만큼 기가차고 어이없는, 답답한 일상쯤은 아무것도 아니게 만들 그런 처참한 이야기가 읽고 싶었다. 소설은 미처 현실의 비루함을 따라갈 수 없다 했다. 그러나 현실의 비참함이 소설처럼 극적이진 않더라는 것을 그간의 경험으로 아는 바, 외면하고 싶은 일상 속의 암담함을 지극히 소설다운 이야기로 내리 누르고 싶었다. 그런데 왜 하필 김이설의 소설이었느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이리 불행할 수 있느냐’는 리뷰를 읽었기 때문이다.

 

첫 단편 <미끼>를 읽으며 느낀 공포가 채 가시기도 전에, 엄마(친모)의 죽음을 엄마(계모)의 입으로 듣는 <부고>는 가슴 가득 허망함이, 대형트럭을 몰던 남편이 사고로 죽자 그 업을 이어받아 트럭을 몰며 외동딸을 키워낸 여자의 이야기인 <폭염>을 읽으면서는 기도 안차는 어이없음이, 돈이 사람을 죽이는 <흉몽>에서는 다시 공포가, 남자 또는 아버지로 대표되는 폭력을 다룬 <한파 특보>를 읽는 동안에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를 뽀드득 갈게 되는 분노가, 회사로부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당한 해고노동자 아내의 독백인 <아름다운 것들>을 읽을 즈음에는 헐떡이는 울음이 등골을 타고 내렸다. 어떻게 이리 불행할 수가 있을까. 어떻게...

 

각각의 다른 이야기, 다른 감정이 내 안을 들락날락 거리는 동안 좋았던 것은 차마 비교할 수도 없는 일상적인 내 현실은 잊을 수 있더라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실제로 소설 속의 이들보다 더한 일을 겪으며 사는 사람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덕분에 내 삶에 안도하기도 한다. 이토록 비참한 일을 나는 한 번도 겪어보지 않았다는 것, 겪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어 다행이라는 소극적이고도 회피적인 감사를 드리는 순간이었다고 해야 할까. 막장 드라마는 보는 사람의 대리 만족을 위해 여전히 만들어지고, 이토록 불행한 이야기는 진정한 불행을 겪어보지 못한, 그러면서도 늘 삶이 버겁다고 여기는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쓰여져야만 한다는 생각이 든다

 

행복은 부족한 것을 채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무사태평한 나른함 속에 부족한 듯 차오르는 적당한 긴장감, 그래도 이만하면 살만 한 것 아니냐고 느낄만한 비교 우위의 위치에서 오는 것은 아닐까 하는 다소 천박한 생각으로 김이설의 다른 소설들을 고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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