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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 올리브 키터리지
  •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 13,320원 (10%740)
  • 2010-05-06
  • : 6,658

가끔 모든 걸 끝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하고 싶지 않는 일을 내키지 않는 방식으로 처리 해야만 할 때, 얽히고 싶지 않은 인간관계에서 끊임없이 복닥 여야만 할 때, 어떻게 살아도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가족과 동료, 친구들과 함께 있어도 문득 외롭다는 생각이 턱까지 차올라 가슴이 터질 것만 같은 그때... 그럴 때면 그만 이쯤에서 모든 것을 끝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마도 그런 생각은 아무일 없이 일상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누구라도 한 번쯤은 해 보는 생각일 텐데(아니, 그런 생각은 단 한 번도 해 본 일이 없는 사람도 분명 있을 터이지만!), 어쨌든 그것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그렇다고 해서 정말로 삶을 끝내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말하는 사람이 내 아이라면 어떤 기분이 될까, 삶을 그만 끝내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에게 엄마는 뭐라고 위로해야 할까. 크리스토퍼 키터리지는 엄마인 올리브에게 바로 그렇게 말한 때가 있었다.

“가끔 모든 걸 끝내버리는 생각을 해요...”(128쪽)

 

엄마는 행동이 거의 편집증적이에요

크리스토퍼는 중년에 들어서 늦결혼을 했다. 수잔은 남편 크리스토퍼에 대해 다 안다는 듯한 태도를 보였는데, 올리브는 수잔의 그런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수잔이 제아무리 의학박사에 철학박사라 하더라도 엄마인 자신보다 크리스토퍼에 대해 더 잘 알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천사 같던 아기 크리스토퍼가 자라서 모든 걸 끝내버리는 생각을 한다고 고백하던 시절도 있었음을 수잔은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수잔에 대한 못마땅함이 그녀가 아들과 잘 지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지면서 그것은 엄마로서의 느낌이 아니라 바람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크리스토퍼가 고향을 등지고 아내를 따라 대륙을 가로질러 반대편으로 간 것도, 그렇게 멀리가고도 일년 만에 이혼을 당한 것도, 그리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으려하는 것도 모두 매사에 명령하기를 좋아하고 뭐든 다 안다는 태도를 보인 수잔 탓이라고 여긴다.

세월이 흘러 크리스토퍼는 재혼을 하고, 오랫만에 아들을 만나러 뉴욕으로 날아간 올리브는 말이 많아진 아들의 모습에 놀란다. 올리브가 알고 있는 크리스토퍼는 엄마인 자신을 닮아 뭐든 말로 다 표현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으며, 그 자신도 과묵한 타입이였다. 그러나 다시 만난 크리스토퍼는 말을 아끼지 않았으며, 때때로 거친 말을 쓰기도 했다. 급기야 크리스토퍼는 다정한 아들부부의 모습에 소외감을 느껴 불현듯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하는 올리브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행동이 거의 편집증적이에요. 엄만 언제나 그랬어요. 적어도 많이 그랬어요. 그리고 전 엄마가 그에 대해서 책임지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일 분은 이랬다가, 일 분 후에는 또 마구 화를 내고. 아주 피곤해요. 주변 사람들을 너무 지치게 해요.”(411쪽)

 

그이는 힘든 시간을 겪었어

키와 체구가 큰 올리브는 언제나 당당하게 보인다. 그녀는 굳이 말로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표현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런 만큼 자신이 하는 말은 꼭 해야만 하는 말 이라고 여기는 괴팍한 성격이다. 올리브는 초등학교 수학선생이었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거침없는 그녀를 무서워했다. 그녀는 처음 만난 사람의 얼굴에는 많은 것이 드러난다고 믿었는데, 숱한 아이들을 보아온 교사인(였던) 만큼, 자신의 판단은 틀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언제나 자신감에 차 있는 그녀도 불현듯 외로움을 느끼는 때가 있다. 외로움은 불안과 공포의 다른 표현이곤 했는데, 그것은 프로이트가 말했듯 사랑받고 사랑할 것을 갈망하는 인간의 근원적인 불안이었다. 올리브는 크리스토퍼에게 자신의 불안을 투사했다. 아들은 자신을 꼭 닮았으며, 무엇이 아들에게 좋은 것인지, 또는 아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따위를 판단했다. 그런 그녀에게 뒤늦게 나타난 수잔은 적이 될 수 없었다. 수잔은 크리스토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전부 아는 것처럼 뻐기는 얄미운 연적일 뿐이다. 그러니 아들의 변심은 수잔이거나, 혹은 아들이 뒤늦게 알게 된 어떤 사람 때문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아들이 자신을 꼭 닮았다라고 생각한 것부터가 올리브의 잘못이었다. 크리스토퍼는 변심한 것이 아니라, 그제서야 제 모습을 찾은 것일지도 모른다.  첫 번째 결혼식에서 새 신부인 수잔은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인 힘든 시간을 겪었어. 외동아들인 게 그이한테는 정말 죽음이었지.“(127쪽)

 

자기가 뭐든 다 안다고 생각해서는 안되니까

올리브는 뻔한 것에 대해 말이 많은 사람들과 감정의 낭비를 즐기는 사람들의 한심함을 자신이 언제나 참아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언제나 옳은 것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못 알고 있거나, 그들이 표현하는 것은 시시하다고 여기면서도 그에 대해 가타부타하지 않는 것은 자신이 말하는 것을 즐기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변덕스럽고 괴팍하며 자기중심적인 올리브를 참아주고 있는 것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중년의 나이에 늦장가 든 아들이 뭐든 다 안다고 생각하는 박사 출신의 수잔과 결혼을 하자, “자기가 뭐든 다 안다고 생각하는 여자와 살 필요는 없다. 뭐든 다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사람은 자기가 뭐든 다 안다고 생각해서는 안되니까.”(133쪽) 라고 혼자서 되뇌지만, 사실은 올리브 역시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한 사람이 였으며, 아들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엄마와 살아오느라 힘든 시간을 보내왔다고 수잔에게 고백했던 것이다. 

보라, 그녀가 얼마나 살고 싶어하는지

<올리브 키터리지>는 연작 소설 형식을 취한 단편 소설집이다. 각각의 단편은 다른 인물의 다른 이야기이지만, 반드시 올리브 키터리지와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다. 올리브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이던가, 올리브가 주인공의 수학 선생님 이었다던가, 주인공이 피아노를 연주하는 바에 단골손님이라던가, 단순히 그저 이웃이라던가 하는 식으로.

일반적인 단편소설집과 다르게 연작 소설은 앞에 등장했던 인물이 계속해서 등장하거나, 앞의 이야기에 이어서 스토리가 진행되기 때문에, 새로운 이야기와 새로운 등장인물에 대해서도 계속해서 신경을 쓰며 읽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매번 새롭게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해 특별한 설명이 없어 어떤 단편은 이야기가 다 끝나가도록 인물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두 번째 단편 <밀물>같은 경우이겠는데, 첫 번째 이야기인 <약국>의 아련함에 취해,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밀물>을 다시 한 번 되풀이해 읽자, <약국>에서 느낀 아련함은 <밀물>의 애잔함을 따라올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렇게 열세 편의 단편을 천천히 읽었다. 그런 후에야 연작의 형식을 취한 이 이야기들이 결국은 한결로 모인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것은 “점점 더 무서워지는 삶의 바다에서 나는 안전하다(279쪽)”고 느끼길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한는 것이다.

보이는 곳에 두고 가끔 모든 걸 끝내버리고 싶어질 때, 혹은 내가 아직은 사랑 쪽에 속한 사람이라는 걸 믿고 싶을 때, 또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확인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꺼내보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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