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송의 서재
  • 모데란
  • 데이비드 R. 번치
  • 18,000원 (10%1,000)
  • 2025-02-28
  • : 2,610

“심장! 심장! 심장아!”
마치 이 책이 끝내 묻고 있는 것 같다. 인간이 과연 심장을, 다시 말해 감정과 연민, 후회와 사랑을 남긴 채로도 기계가 될 수 있느냐고.

데이비드 R. 번치의 《모데란》은 단순한 SF 소설이 아니다. 전쟁과 쾌락, 폭력과 권력이 전부인 디스토피아의 세계 안에서, 끝내 '작은 살점 하나'를 남겨둔 존재들을 통해, 인간성과 비인간성의 경계에 대해 고통스럽도록 예리하게 질문을 던지는 철학적 우화다.

총 57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이 책은, 표면적으로는 불멸을 쫓아 몸을 기계로 바꾸고 요새의 주인이 되어 전쟁을 반복하는 ‘신금속 인간’들의 연작이지만, 단편들이 모여 하나의 커다란 서사시처럼 작동한다. “우리는 교체된 자들이오. 우리의 천성은 증오와 전쟁이오.”라고 선언하는 이 세계에서, 주인공은 아이의 투정에 무너지고, 떠난 애인을 그리워하며, 사라진 흙과 풀을 찾아 해바라기를 심겠다는 명령을 내린다. 이미 모든 장기를 금속으로 바꾼 기계적 인간이, 도무지 죽지 않는 삶을 살며 꿈도, 웃음도, 신도 없는 세계 속에서 느끼는 정서적 균열. 바로 그 균열이 ‘모데란’이라는 이름의 이 디스토피아를 비로소 ‘인간적인 이야기’로 만든다. 이 작품이 놀라운 건, 이 모든 서사가 1971년에 쓰였다는 사실이다. 플라스틱으로 덮인 지구, 감정을 제거한 인간, 데이터화된 윤리.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가 마주한 현실과 너무 닮아 있다. 번치가 그린 모데란은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시대를 지나 도착한 예언처럼 보인다.

사실 이 책은 '친절하게' 읽히지는 않는다. 때로는 시적이고, 때로는 난해하며, 설정은 과장되고 낯설다. 그러나 그 문장과 이미지들은 날카로운 칼날처럼 독자의 감각을 찌르고, 잔상처럼 오래 남는다. 철저히 디스토피아적이면서도 그 안에서 인간성의 마지막 불꽃을 놓지 않으려 애쓰는 주인공들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질문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이 과연 먼 미래의 이야기인가? 혹은 이미 시작된 현재의 자화상인가?

이 책은 무섭고, 슬프며, 동시에 아름답다. 무쇠 같은 문장 사이로 흐르는 미세한 체온을 느꼈기 때문이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