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지의 채석장 시리즈는 생각날 때마다 한 권, 두 권 모아두고 있는 시리즈이긴 한데..
이 시리즈에 하스미의 책이 들어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스미 시게히코의 문장이 갖는 매력을 잘 보여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비평가답게.. 어떤 순간의 움직임을 포착하는데 가히 동물적인 천재성을 느끼게 하는 문체.. 기본적으로 만연체인데.. 이런 생동감을 주는 문체를 갖는다는 건 쉽지 않다.. 그래서 하스미의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차근차근 읽는 독법보다는.. 가끔씩 생각날 때 한 페이지를 펼쳐보는 독법이 더 인상적이라는 생각도..
물론..
1. 18-9세기 프랑스 정치사/혁명사를 잘 알고 있다면 이해하기 훨씬 쉬울 것이다..
2. 맑스의 <루이 보나파르트와 브뤼메르 18일>에 대한 한 편의 오마주적 성격의 텍스트이기도 한 만큼.. 이 책을 이미 읽었다면 훨씬 떠오르는 생각들도 많을 것이다..
3.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 대한 가라타니 고진의 흥미로운 비평인 <역사와 반복>을 미리 읽어두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반복>은 실제로 이 텍스트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니까..
4. 무엇보다 이미 또 하나의 중요한 키워드인 <범용함>에 대한 하스미의 가장 주요한 저작인(박사학위논문은 어쨌거나 한 저자에게 가장 중요한 저작이라는 속설을 그냥 믿어버린다면), <범용한 예술가의 초상>도 이미 번역출간되었다.
5. ...
6. ...
나열하자면 한도 끝도 없는 풋노트들이 가능하겠지만..
그 풋노트들을 쓰는 것이 하스미가 이 글을 출간하면서 염두에 두었던 생각들은 아니었을 것이고..
<깊이에의 강요>는 역시 아카데미에 한발을 걸친 먹물들의 아비투스니까.. 굳이 따를 필요는 없다..
그냥.. 가끔씩 생각날 때 한 페이지를 펼쳐보는 것이 하스미의 격을 훨씬 높이는 독법이 될 것 같다..
"고아로 태어날 때부터 이미 자기 아버지의 입회에서 분리된 에크리튀르"라는 그 "본질적인 표류상태"에서 문자를 정의할 때, 그는 마치 '사생아' 드 모르니의 존재를 기술하는 듯하다. 시뮬라르크가 실제 그러했듯이, 1851년이라는 연호는 '사생아'가 그 '표류성'으로 인해 승리하는 시대의 도래를 알려주고 있지 않은가.
요컨대 <슈플뢰리 씨, 오늘 밤 집에 있습니다>가 1851년 쿠데타를 재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쿠데타 쪽이 그 줄거리를 충실히 모방하는 데 성공했다는 사태의 역전이야말로, 여기서의 '반복'의 실태인 것이다. 이것은 정치적인 것이어야 할 권력 탈취를 비심각화함으로써 실현되는 정치성의 냉소적이고 낙천적인 승리에 다름 아니며, 먼저 '비극'으로서 연기된 것이 나중에 '소극'으로 재연된다는 헤겔적인 역사관으로는 통제할 수 없는 사태의 도래를 마르크스는 놓치고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