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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갈라진 길들이 있는 정원
  • 부다페스트 1900년
  • 존 루카스
  • 19,800원 (10%1,100)
  • 2023-06-02
  • : 495

슈테판 츠바이크의 <어제의 세계>와 함께 읽을 것..

당사자인 당대 최고의 문필가가 기억을 통해 재구성해낸 1900년대 빈의 풍경과, 마찬가지로 당사자인 역사학자가 사료를 통해 재구성해낸(과연 자신의 기억은 포함되지 않았을까) 1900년대 부다페스트의 풍경. 여기에 발터 벤야민의 <1900년 경 베를린의 유년시절>을 더하면 세 도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듯. 그 풍경들이 처절하게 아름다운 것은, 그 곳이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일단은 인용..

그 표현의 우아함에 일단 판단정지..


'불행의 씨앗'은 이 장의 제목이다. 그러나 씨앗을 뿌리는 것과 열매를 맺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역사학자는 인과관계에 대한 소급적 귀인 오류를 범할 때가 많다. 즉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어떤 일에 대해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를 바라볼 뿐만 아니라, 이전에 일어난 어떤 일이 필연적으로 나중의 일로 이어진다는 가정에서 일의 진행 상황을 판단함으로써 시간의 전후 관계나 일의 인과관계를 혼동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예수가 말했던 씨앗 뿌리는 사람과 씨앗에 관한 비유를 상기해보자. "그가 씨앗을 뿌렸을 때, 어떤 것은 길가에 떨어져 공중의 새들이 그것을 먹어버렸고, 어떤 것은 돌 위에 떨어져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말라버렸고, 어떤 것은 가시밭에 떨어져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으니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마가복음 4: 2-20)." 죄지은 인간의 본성을 지닌 역사학자는 이것이 모든 씨앗 뿌리는 사람과 모든 씨앗에 해당된다는 점,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약속의 씨앗이든 불행의 씨앗이든 그 모두에 해당된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이런 점은 우리가 다루는 문제에도 적용된다. 그곳에 불행의 씨앗이 있었고, 많은 씨앗이 싹트기 시작했지만, 그 씨앗의 열매가 필연적인 것은 아니었다. 즉 그것들이 필연적으로 이후의 비극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340).  


이 책은 헝가리와 부다페스트의 정치에 관한 역사서는 아니지만, 전쟁이 끝나는 시기에 다가갈수록 정치, 즉 그 영향과 기억이 수십 년 동안 한 세대 이상의 마음을 어둡게 만든 비극적인 전개와 사건들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전쟁 초기에 일시적이나마 거리와 광장 그리고 도시의 정신까지 밝게 비추던 빛줄기가 1917년 후반의 어느 때에 사라져버렸다는 것을, 이 여름 도시의 기후가 어둡고 비에 젖은 무거운 것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이른 오후에서 늦은 밤으로 시간이 흘러가버렸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여기에는 인상적인 역사학자가 보여주는 은유적 이미지 이상의 것이 있다. 우리는 이어지는 격변기에 활동했던 여러 무리의 사람들이 오후와 저녁 늦은 시간에 페스트의 어두운 거리의 어두운 아파트의 어두운 방에 모여 비밀 집회를 열었던 사실을 알고 있다. 급진주의 지식인 단체였던 갈릴레오단(체제 전복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1918년 초 자유주의 정부에 의해 해산을 명령받았던)의 비밀 모임이나, 시인이자 예언자였던 어디 엔드레가 죽어가던 방이나, '국민위원회'가 헝가리 10월 혁명을 선언했던 어두운 간판의 '어스토리어 호텔'을 생각할 때마다 그 장면은 어두움으로 채색되곤 한다. 그 혁명은 후드득 빗방울이 날리고, 구름이 여기저기 흩어져 바람에 휘날리고, 공기는 흙투성이로 더러워진 늦은 10월의 어느 날 일어났다. 남아 있는 사진 속에 시위하던 군인들이 꽂았던 과꽃(이 혁명은 '과꽃 혁명'이라 불린다)이 살짝살짝 보이지만 그 꽃에 광채는 전혀 없었다(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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