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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목서님의 서재
  • 라온의 아이들
  • 김혜정
  • 10,710원 (10%590)
  • 2020-12-20
  • : 494

 겨울 한파 속에서 따뜻하고 아팠던 저자의 소설 『모나크 나비』의 여운이 채 가시기 전에 『라온의 아이들』을 만났다.  “그러니까 시작은 이별의 말 한 마디 못 한 채 이별한 이들의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작가의 말)는 이야기.

 

  어느 날 영문도 모른 채 ‘라온’이라는 섬에 와서 갇혀버린 아이들. 보라색 피부를 가진 그들은 그 섬으로 오는 도중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대부분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고, 통증을 느끼지 못하고, 무엇보다 기억을 잃어버렸다. 고작 열여덟 안팎인데.

 

  “이름을 가져야 비로소 자신이 되는 거야.”라고 번호로만 불리던 그들에게 기주, 고얼, 무애, 주안, 시형, 마로......라는 이름을 지어주는 시루 선생님이 그들이 믿고 의지하는 유일한 섬 주민일 뿐이다. 선생님 또한 섬 주민들 중 유일하게 보라색 피부를 가졌다.

  이방인의 표식인 보라색.

 

“백과 사전에도 없는 보라색 피부라니. 왜 우리 피부는 보라색일까. 이 섬의 비밀은 뭘까. 이 섦 밖의 세상은 이 섬과 어떻게 다를까. 우리가 살았던 곳은 어떤 곳일까. 우리는 거기서 뭘하며 지냈을까.”(p.26)

 

  라온의 아이, 나(기주)가 품게 된 이러한 의문들에 대한 답은 아이들의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서서히,  회복하는 기억의 양에 정비례하여 그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몸의 통증도 느끼게 된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을 불러내고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여야한다.”(p.35)

  “사라지려고 하는 힘에 맞서는 것 또한 기억이지!”(p.36)

  “기억을 되찾아야만 자기가 누구인지 알게 된다. 자기가 누구인지 알게 되면 뭘 해야 할지 알게 될 테고.”(p.36)

 

  고래배를 만들며 오랜 세월 고독하게 자존을 지켜온 의사 첸은 라온의 아이들이 그들의 기억을 되살려서 그들 스스로 길을 찾고 힘을 갖도록 끊임없이 격려해 준다. 그러나 아이들은 기억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을 통제하고 감시하는 제사장(박쥐)에게 발각이 되면 안 된다. 박쥐가 기억을 되찾은 아이들을  ‘붉은 사막’에 팔아버리기  때문이다.

  “라온은 전부터 평화롭고 살기 좋은 곳이었다. 사람들은 온화하고, 지형 조건이 좋아 농작물이 풍성하며 동식물의 번식이 왕성했다. 밀물과 썰물 때 해수면의 수위 차가물을 거슬러 올라오는 물고기도 많았다. 또 염생식물과 다양한 종의 어채류가 서식했다. 다만, 인접해 있는 붉은 사막이 문제였다. 원래는 섬이었는데 기후변화로 갑작스럽게 사막화되면서 일부 사람들의 몸이 기형적으로 변했다. 그들의 몸을 온전하게 복원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몸이 필요했다. 그것이 멀리서 아이들을 사들이는 까닭이었다."( p.75)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서사 속에서 아이들이 처한 ‘라온’의 현실과 ‘붉은 사막’에 대한 비밀이 드러날 때, 라온의 아이들 못지않게 독자인 나 또한 큰 충격을 받았다.

 

  출구가 없는 라온에서 그들만의 비밀을 공유하며 기억의 퍼즐을 맞춰가는 아이들,

  버려진 아이들끼리 사랑과 우정을 나누며 서로 의지하고 함께 가는 길을 찾아내는 라온의 아이들,

  그 길을 함께하는 친구들을 위해서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마로와 고얼, 주안을 지켜보면서,

  가라앉은 배에 아직도 갇혀 있는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첸이 만들어준 고래배를 타고 힘차게 출발하는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이들을 통해 인간의 존엄과 인간 욕망의 윤리적 문제에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을 아프게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기억할게.

기억이 몸의 통증을 불러온댔지? 몸은 마음과 연결되어 있댔지?

그러니까  기억할게.

그 기억으로 오래 아플게.

 

오늘은 두 개의 해가 뜨고 두 개의 달이 떴어. 어느 것이 진짜인가. 어느 것이 가짜인가. 세상에 너무 많은 가짜들. 가짜들이 판치는 세상...

무에가 노래를 흥얼거렸다.- P48
"할 수 있어. 지금까지도 잘해 왔잖아. 이제 너희들 스스로가 만들어 갖게 된 힘을 과시해 봐. 그 무엇도 너희들의 의지를 꺾을 수 없어.-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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