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은목서님의 서재
  • 모나크 나비
  • 김혜정
  • 13,320원 (10%740)
  • 2020-11-25
  • : 254

위쪽 큰 도시에는 첫눈이 오고 있다는데 남도 소도시의 하늘은 겨울비를 잔뜩 품고 있다. 시집을 읽다가 말고 다시 『모나크 나비』를 꺼내 드는 12월의 도서관. “수능이 끝난 도서관은 여백이 많은 그림 같다. 그 여백이 지어내는 고요 속에서 사람들은 느릿느릿 움직였다.” 「모나크 나비」의 첫 문장 같다.

 

김혜정 작가의 소설을 읽고 나면 나는 늘 한동안 다른 책을 손에 잡지 못한다. 『모나크 나비』에 수록된 6편의 단편들을 읽고도 그렇다. 왜 그럴까. 평소라면 지나쳤을 사람들의 표정과 뒷모습과 움직임에 눈길을 보내며 생각해 본다.

여섯 편의 작품 한 편 한 편 속에는 펼쳐진 서사의 출발점은 아이들의 죽음과 상처와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살아가는 작가의 “심연에서 끓어오르는 서러움이라고나 할까. 도저한 어떤 것이 배어 있”는, “더는 참을 수 없는 어떤 것이 터져 나온 게 분명” (「모나크 나비」)할 것이다. 세상에는 왜 교통사고, 세월호 사건, 학교 폭력, 성폭력 등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들이 일어나서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또 병들게 하는지. 부모로부터 사회로부터 아이들이 왜 내쳐지고 버려져야 하는지.

그러나 그 서사를 끌고 가는 주된 동력의 키워드는 연민과 사랑, 동행과 일상의 단단한 힘 같은 것이 아닐까. “마음에 걸려 멈춰” 서고, “혼자 남겨 두어서는 안 된다.” “저나 나나 외로운 인생인데 서로 의지하며 살면 얼마나 좋았겠어.” (「모나크 나비」) “동행이란 말 좋지 않냐? 함께 간다는 것 말이다.”(「물이 끓는 시간」) “그렇게 엄청난 일을 겪은 뒤에도 일상을 단단하게 소유할 수 있는 힘”,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방치되어 살아가는 동물 특유의 날카로운 눈빛”의 “고양이들을 순하게 만들 수 있는”(「뱀파이어 울샘」) 힘이 아닐까.

 

아프고 따뜻하다. 어둠이 내리는 겨울 도서관 앞뜰 나무의자에 오래 앉아 있다. 괜찮아. 괜찮아질 거야. 가만가만 『모나크 나비』를 쓰다듬어 본다. “0.55g의 연약한 몸으로 수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멀고도 험한 여정을 떠나는” ‘모나크 나비’들의 고단하고 아름다운 날개짓 소리 들리는 듯하다.

"왜 피안으로 가지 않고 이곳을 선택하셨는지 여쭤 봐도 돼요?"
"과거는 과거에 불과할 뿐이거든. 기억이라는 것도 돌아보면 마음만 아플 뿐이야."

느낄 수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지. 아름다운 숲과 호수, 나무도만질 수 없다면 다 뭐란 말이냐.
- <나를 기억해 줘>- P.15
이제 수애의 고통스런 기억들이 사라질 것 같구나. 누군가가 진정으로 수애를 사랑하면 수애의 고통스런 기억들이 사라지거든. 네가 수애를 사랑하는 마음이 수애의 고통들을 지워 준 거야.
- <나를 기억해 줘>- P.30
노란 리본들이 그를 둘러싸고 바람에 펄럭였다.
"저 리본들 보고 있으면 미안하고 부끄럽고 그래.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도 하게 되고."
.......
공부 말이야. 전에는 무조건 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아니야. 왜 해야 하는지 알게 됐어. 나 글을 쓸까 봐. 네가 무슨 글이야? 증언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 <물이 끓는 시간>- P.45
한 국자 한 국자, 국자마다 간절한 기원을 담아서. 몇 들통의 물로 바닷물을 데울 수야 없겠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
.......
"물이 끓기 시작하면 딸이 당신 곁으로 오는 걸 알 수 있대. 엄마의 직감으로 말이야."
-- <물이 끓는 시간>- P.56
"처음에는 이 물이 끓는 시간이 100년도 더 되는 것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졌단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야. 100년이라고 해도 긴 시간이 아니지. 우리 딸이 돌아오기만 한다면 말이다."
- <물이 끓는 시간>- P.57
지완의 말을 듣고 있는데 내 몸속의 어두운 그림자가 훅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깊고 푸른 달빛이 길게 드리워 지완과 나를 감싸주었다.
- <푸른 달빛, 그림자>- P.85
모마크 나비 말이야, 밀크위드가 없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지아가 물었을 때 나는 독을 만들어서라도 살았겠지, 라고 했다. 독을 만들어? 독기를 품는 거지. 아, 그렇구나. 독기를 품으면 되는 구나. 그렇게 말했던 지아는 독기를 품지 못한 걸까.
-<모나크 나비>- P.137
잘 들어. 중요한 건 네가 처음부터 그 일들로부터 도망치려고 했다는 거야. 네 방에 틀어박혀서 마구 먹어 대더니 고깃덩어리가 됐고. 또 이렇게 숨어버렸잖아. 그 자식들 말이야, 지금이라도 신고 해. 그게 너를 위해서도 그 자식들을 위해서도 좋아. 제3의 피해자가 생기면 안 되잖아.
- <루체>- P.146
탈피를 꿈 꾸지 않는 너와 달리 탈피하고 새로운 쉘을 찾는 우리 꼴이 보기 싫었던 거라고. 우리를 보면 네 자신이 더 미워졌으니까. 그래서 내 친구들을 괴롭히고, 죽인 거야. 비겁하게.
.......
넌 네가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도 조작하고 있어.
- <루체>
- P.160
충격이 크면 잊고 싶고 실제로 잊히기도 하는 법잊. 백 번 이해해.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돌이킬 순 없잖아. 이젠 네 스스로 일어설 기회야. 지금이 그 기회야.
- <루체>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