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은목서님의 서재
  • 이 가지에서 저 그늘로
  • 김명인
  • 10,800원 (10%600)
  • 2018-08-30
  • : 227

 조락의 계절이다. 시인의 이번 시집 속에서 나는 유독 하강이미지들에 많이 주목하게 된다. 하강이미지는 조락과 맞닿아 있기 때문일까? “열망의 계절은 지나 갔”고 “닥쳐올 겨울의 예감”에는 미리 젖지 않는다 하더라도 조락이란 이미 쓸쓸하고 적요하고 아뜩한 것을......

    

빈약한 초록이 아니라면 세한도풍의 전나무들도

하오의 적막과 마주하고 있음을 알겠다

숲을 읽었으나 구실이 사라진 지금

나를 밀어 여기까지 오는 것은

다짐의 형식, 그 힘마저 소진해버리면

조락의 끝자리에서 허공이나 어루만질 뿐

나는, 숲을 지키는 텃새의 나중 이웃이 되어

황혼이 잦아질 때까지

이 가지에서 저 그늘로 날아야한다

어느 순간 어둠 천 근이 날개에 매달리겠지

         -「이 가지에서 저 그늘로」, 부분

     

오래오래 걸어와 부은 발등에도

그늘은 얹혀 있다, 저승꽃이라 하지 않고

산책길에 덮어쓴 낙엽 같은 것이라고,

문을 여는 손잡이로 맺히는

저 꽃을 우리는 간반이라 한다

악력이 예전 같지 않아서

끝내 쥐여지지 않는 다짐이라면

붙잡은 것들 놓아 보내야 하리

닫히는 문이여, 손잡이가 눈앞에 있다

                           -「간반」, 부분

    

일생을 잔殘 치자 하더라도 나는 이미 써버린 것을

자고나면 돌아서야할 그 문전에서

봄꿈의 과객이 되어

갚지 못할 생도 거반 삭았다

                          -「파촉」, 부분

 

너머로의 출발은 일생을 바치는 여정,

-<중략>-

시간은 쉬지 않고 흘러가

우리 모두를 바닥에 쏟아버리지만

실상은 너머로 간다는 것,

불현듯 너머가 생생해져

깬 잠이 좀처럼 다시 들지 않는다

                        -「너머」, 부분

 

한 장 기차표밖에 손에 든 것 없어

그대가 일러준 간이역은 지나쳐간다

정시 착, 정시 발, 저만큼 불빛을 떠미는

금속성 출렁임이 쇠의 몸을 휘감는다

어둠 외에는 전망이 없으니

기차표의 약속은 누가 사는가?

                 -「기차는 지나간다」, 부분

 

스르르 풀려나는 물레 언제부터 잡고 있었을까

깊이를 몰라 디딜 수 없는 적요란

맛보기엔 그럴듯해도 건너기엔 너무 아뜩해서

물고기나 동무하려고 파도 소리 솟구치는 밤

 

그 밤바다로 혼자 낚시하러 가야 하는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다

                                         -「밤낚시」, 부분

 

  인용한 시 외에도 많은 시편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하강이미지는 「수심에 물들여지지 않는 장님 물고기」의 '심해'나 「둠벙 속 붕어」의 '먹이 사슬', 「망상어」의  ‘망 望- 상어’에서 보여주는 시인의 인간의 삶에 대한 성찰 혹은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특히‘망 望- 상어’ 즉, ‘상어의 꿈’을 품었다 해도 살아서는 한 번도 ‘난바다’로 나가지 못하는 「망상어」의 “우화”는 비리고도 아리다.

 

상어 꿈을 품었다 해도

한 번도 난바다로 나가지 못했다

테트라포드 그늘에서 파래나 뜯으며

맛도 없는 육질을 키워온 ‘망 望- 상어’

미늘을 물고 요동치는 배가 터질 듯 만삭이다

난생이 아니라면 태생도 아니어서

한 뼘 남짓 신분 없는 어미가 희뿌연

몸통을 휘저어 한 마리씩 새끼를 쏟아낸다

찢어발기는 포말 속으로 풀어놓는 산통이라니!

저것들이 헤매게 될 수심은

우렁이 살모사 가오리가 배를 끄는 바닥일까,

이빨도 없는 새끼들이

가시뿐인 어미를 물어뜯는다

어떤 물고기가 연년세세 이어진다면

그건 사력을 다하는 생식 탓,

고리를 푼 어미 망상어 한 마리

물살에 떠올라 난바다로 나아간다

                  - 「망상어」 전문

 

  ‘망상어’의 일상이 ‘테트라포드 그늘에서 파래나 뜯으며’ ‘생식에 사력을 다’ 하는 일이라면 ‘망상어’의 꿈은 ‘상어’가 되어 ‘난바다’로 나가는 일. ‘망상어’가 ‘테트라포드 그늘’과 ‘생식’을 포기하고 ‘상어’와 ‘난바다’를 좇았다면 ‘연년세세’ 망상어의 종족이 유지되지 못했을 것이니, 이것이 ‘망상어’가 그저 ‘망望- 상어’로밖에 살 수 없는 이유이다. 일상을 살면서는 ‘한 번도 난바다로 나가지 못’했던 ‘망상어’가 삶에서 놓여날 때에야 비로소 ‘난바다’로 나갈 수 있는, 망상어의 비린 일상과 슬픈 꿈.

시인은 “일생이 겨워도 한 입 적시며 종족들은 이어”(「유전자전」)지겠지만 “안장도 바퀴도 없이 헉헉거리며 끌고 온 북내면 고달사지”에서 “이것을 어디다 부릴까” “우두커니 중얼거리는 나”(「우두커니」)처럼 쓸쓸한 인간의 ‘이것’을 ‘망상어’로 대신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