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이 얇은 책을 읽는데 오래 걸렸을까? 앉은 자리에서 바로 다 읽을 줄 알았지만 내 예상과 달리 다 읽는데 무려 일주일이나 걸렸다. 아마 계속해서 읽다 말다 그리고 다시 앞으로 가서 읽기의 반복 때문이 아닐까.
소설은 떠나간 사랑 이타마르에 대한 속절없는 사랑의 절박함을 쓰는 마리아나에 대한 이야기다. 모두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마성의 매력을 지닌 남자 이타마르. 이탈리아 모처의 아카데미를 찾은 마리아나는 그와 만나는 순간, 바로 사랑에 빠졌나 보다. 아니 마리아나의 사랑은 뭐랄까 일종의 강박적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데 여성 마리아나의 관점에서 기술한 이 책의 저자는 노년의 아재가 아니던가. 아무래도 떠나가 버린 사랑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마리아나의 심정을 과연 안드레 애시먼이 제대로 표현해낼 수 있을지 좀 궁금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그런 진 몰라도, 도무지 복잡다단한 마리아나의 마음에 감정이 이입되지 않는 그런 느낌이었다. 아마 그래서 책읽기의 속도가 더디지 않았나 싶다. 이미 바람둥이 이타마르란 녀석은 자신의 욕심만 채우고, 마리아나에 대한 감정을 정리한 지가 오래다. 천연덕스럽게, 자신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그녀에게 다른 여자와 같이 영화를 보러 가자고 제안하기까지 한다. 이건 뭐 정말 사람의 감정을 가지고 노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 도대체 뭘 어떡하잔 말인지. 사실 더 비난하고 싶은 사람은 마리아나였지만.
어쩌면 마리아나는 글쓰기나 편지 같은 방식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명징하게 정리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자신이 무얼 하더라도, 그가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감정에 저편에 도사리고 있는 미련은 계속해서 마리아나의 발목을 잡는다.
결국 녀석은 아무런 말도 한 마디 없이 아카데미를 떠나 버렸다. 마침 크리스마스 시즌이기에 숙소라는 물리적 공간의 빈자리는 곧 채워졌다. 결국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관계는 그런 식이라고 노련한 작가 안드레 애시먼은 우리에게 넌지시 알려주려는 걸까. 세상만사에 시작과 끝이 존재하듯이, 사랑도 마찬가지라고. 문제는 시작은 어렵지 않더라도, 어떤 방식이라도 엔딩은 과히 쉽지 않더라는. 그냥 그런 감정들의 편린들이 처연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의 애틋한 감정을 상대방의 그것에 동조해서, 무언가 새로운 방식과 형태의 사랑이라는 감정에까지 도달하게 만든다는 것은 어쩌면 기적이 아닐까. 또 그런 게 인간의 의지로 된다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 마리아나가 이별 뒤에 이 책에서 보여주는 감정의 소용돌이는 아름답다기 보다 오히려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그런 이유로 <마리아나> 읽기가 무려 일주일이나 걸렸다고 말하고 싶었다. 나의 작은 변명이려나.
작가의 모든 책이 좋을 수 없다는 걸 제임스 설터를 읽으면서 나는 알게 됐다. 어쩌면 그 적용을 이번에는 안드레 애시먼에게 적용하게 될 지도. 결국에 가서, 나는 순순한 애시먼에 대한 팬심으로 <마리아나>를 읽었노라고 고백해야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