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 전부터 읽겠노라고 별러 오던 숙제를 이제야 다한 느낌이다. <금테 안경>으로 처음 만났던 조르조 바사니의 <핀치콘티니가의 정원>을 드디어 다 읽었다.
소설 <핀치콘티니가의 정원>의 화자는 첼레스티노. 물론 소설에 그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첼레스티노(동명의 영화에서는 조르조)가 사랑해 마지 않던 소녀 미콜 핀치콘티니가 그를 부르던 애칭이다. 이탈리아 파시즘 시절, 전쟁과 홀로코스트를 모두 겪은 페라라 유대인 공동체 출신 첼레스티노의 회상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에트루리아인의 묘지에서였던가. 과거의 죽음은 너무 멀기에 와 닿지 않지만, 최근의 죽음에 대해서는 애닲을 수 밖에 없다는 고백.
유럽 대륙에 두 번째 세계대전의 전운이 퍼지기 직전의 모습은 오래 전 벨에포크를 연상시킨다. 주인공 첼레스티노를 비롯한 일단의 유대인 청년들이 테니스클럽에서 축출되자, 페라라에 무려 3만평에 달하는 대영지(정원 포함)를 가진 핀치콘티니 가문이 기꺼이 그들에게 테니스장을 공개해준다.
파시스트들의 혐오와 배제가 넘실거렸지만, 아직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있던 일단의 청년들은 핀치콘니키 가문이 제공하는 음식과 공간을 만끽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유대인 공동체에서 미콜과 그의 오빠 알베르토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던 첼레스티노는 자연스럽게 핀치콘티니가의 정원의 일부분이 되기 시작한다.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주류 사회에서 억울하게 배제된 유대인 청년들에게 핀치콘티니가의 정원은 일종의 해방구 역할을 수행했다. 그곳에서 그들은 부족함 없이 먹고 마시고 수다를 즐기며, 테니스를 마음껏 칠 수가 있었다. 혈기방장한 이십대 청년 첼레스티노가 자기 집보다 핀치콘티니네 집을 더 가까워한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1938년 이탈리아에서 그 악명 높은 인종법이 공포되면서, 페라라에서 눈부시게 빛나던 시절도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한 때 의사이자 1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였던 첼레스티노의 아버지는 상인연합에서 퇴출되었고, 첼레스티노는 도서관 출입마저 금지당하게 된다. 당장 졸업논문 준비를 해야 하는 첼레스티노에게 그야말러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바사니의 페라라에 대한 당시의 기록들을 접하면서 놀라웠던 점 중의 하나는, 당시 이탈리아 유대인들 중에서 상당수가 파시즘에 동조하고 지지했고 심지어 파시스트당에 가입해서 당원증을 받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 정도로, 자신들의 인종적 배경을 지울 수는 없었다. 전쟁이 한참이던 1943년 대대적인 유대인 검거가 시행되면서 페라라에 살던 유대인 공동체도 독일 강제수용소 화장장의 비극을 피할 수가 없었다.
한편, 미콜의 아버지 에르만노 교수는 첼레스티노의 딱한 사정을 듣고 언제라도 자신의 서재를 이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 정말 대단한 특전이 아닐 수 없다. 동시에 첼레스티노는 아름답고 베네치아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는 미콜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통제할 수가 없게 된다.
조르조 바사니는 페라라라는 유대인 공동체 속에서도 시기와 질투가 존재했으며, 상호간에 배제가 있었다는 점들을 솔직담백하게 묘사한다. 그리고 그 위에 자신이 경험한 것으로 추정되는 청춘남녀들의 엇갈리는 사랑과 우정 이야기를 덧입힌다. 파시즘이라는 광기가 휘몰아치던 광기의 시대에도, 어디선가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감정의 소용돌이가 피어났다는 점을 작가는 놓치지 말라고 주문한다.
개인적으로 페라라라는 오래된 르네상스 도시를 방문했다면 또 모르겠지만, 오롯이 바사니의 묘사에만 의존해서는 작가가 의도하는 페라라 구석구석의 이모저모를 떠올리기란 정말 쉽지 않은 것 같다. 사실 안젤리 성벽 같이 소설에서 계속해서 언급되는 청춘들이 밀회를 즐기던 곳들에 대한 형상화는 난망했다. 아마 페라라 사람들이라면 바로 인사이트를 얻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나같은 이방인에게는 불가능한 미션이 아니었을까.
결국 첼레스티노는 미콜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했고, 아버지의 충고를 따라 핀치콘티니 집안에 발길을 끊게 된다. 1942년 악성 림프육아종으로 미콜의 오빠 알베르토가 죽고, 나머지 가족들은 1943년 9월에 검거되어 독일의 강제수용소로 끌려갔다. 연적이라고 생각한 잠피에로 말나테는 러시아 전선에서 전사했다. 이런 비극의 연대기는 어쩌면 프롤로그에서부터 예고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핀치콘티니가의 정원>은 파시즘의 광기가 모든 것을 집어 삼키던 암울한 시절을 직접 체험한 첼레스티노, 조르조 바사니 작가의 증언이 담긴 보고서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미래가 허용되지 않는 그런 암담한 절망 속에서도 핀치콘티니 가문의 정원을 해방구로 삼아 잠시나마 정신적 탈출을 청춘들의 서사에 스며들어 본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감정, 연적에 대한 공상과 시기, 밀고 당기는 미묘한 감정을 짚어낸 바사니 작가의 실력은 대단했다.
다시 100년이란 시간이 흘러,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모를 배제와 혐오의 선동들이 난무하는 시절이 도래했다. 대화와 타협을 통해 나와 생각이 다른 타자에 대한 관용과 공감 형성은 과연 불가능한 미션인지 자문해본다. 아울러 순결하고 강인하게 아름다운 그 시절을 살아낸 바사니와 그의 동지들에게 경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