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출신의 작가 필립 클로델의 <브로덱의 보고서>를 읽었다. 보통 빠른 호흡으로 책을 읽곤 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며칠 동안 <브로덱의 보고서>를 들고 있으면서 예전과는 다른 느린 호흡의 독서를 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물론, 책에 담긴 내용이 무거우면서도 워낙에 진중한 탓이라고나 할까? 전쟁과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브로덱에게도 세상살이란 역시나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브로덱의 보고서>는 분명히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어쩐 이유에서인지 시간적 배경과 공간적 배경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있다. 그래서 독자는 아마 2차 세계대전 전후의 시대적 배경과 함께 독일의 변방이나 혹은 오스트리아의 시골 마을이 배경이 아닐까 하는 추론 정도를 할 따름이다. 가끔 등장하는 지명으로는 도저히 구체적인 공간을 도출해낼 수가 없었다.
소설은 처음에 주인공 브로덱이 그 일과는 무관하다는 말로 시작한다. 도대체 ‘그 일’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브로덱이 사는 마을 사람들이 어디에서 왔는지도,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는 정체불명의 사나이 ‘안더러’를 살해한 일을 지칭하는 것이라는 것을 소설을 읽으면서 알 수가 있다. 그렇다면, 제목에도 나와 있는 보고서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질문은 끊이지 않고 계속된다.
어느 날 저녁, 마을의 슐로스 여인숙에서 벌어진 모두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 사건을 브로덱은 “에라이그니스”(방금 일어난 일)이라는 요상하기 짝이 없이 말로 에둘러 표현한다. 마을의 지원을 받아 대학 교육을 받은 적이 있는 브로덱은 관청 소속으로 동식물에 대한 상태, 강의 수위, 강수량과 강설량 등 오만가지 것을 기록하는 일로 먹고산다. 에라이그니스가 일어나고 나서, 시장인 오어슈비어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그에게 이제는 존재가 사라진 ‘안더러’에 대한 보고서를 쓰라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그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다, 무조건 그들의 말을 따라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 브로덱은 그들이 원하는 기록이 담긴 보고서뿐만이 아니라 진짜 자신이 보고 들은 ‘안더러’의 이야기를 쓰고자 한다.
<브로덱의 보고서>는 현재 진행 중인 에라이그니스의 정황과 더불어 브로덱 과거의 플래시백으로 뒤섞이면서 독자를 흡입한다. 부모를 잃은 브로덱은 페도린과 함께 오래전에 마을에 흘러 들어와 정착했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브로덱의 입에서 어느 순간순간 튀어나오는 수용소 시절의 끔찍한 기억은 필연적으로 나치가 저지른 홀로코스트를 떠올리게 한다.
수용소 간수들의 비인간적인 폭력과 부당한 대우를 참을 수 없었던 ‘인간’은 모두 죽었다. 사실 그러지 않고서도 마치 러시안 룰렛을 하는 것처럼 삶과 죽음이 종잇조각 같이 나부끼는 순간에도, 브로덱은 고향에 남겨 두고 온 사랑하는 에멜리아를 생각하며 죽음의 공포에서 살아남아 귀향한다. ‘똥개’ 브로덱은 그렇게 인간으로서 참을 수 없는 수모를 견뎌냈다. 서사가 계속되면서 외부인(alien)에 의해 그가 어떻게 해서 수용소에 가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또 다른 공포의 연장선에 서 있다. 죽은 디오뎀의 글을 통해 알게 되는 진실은 고통 그 자체다.
주변인들의 날카롭고 삼엄한 감시를 뚫고, 브로덱은 자신만의 기록을 계속한다. 브로덱보다도 더 철저하게 이방인이었던 ‘안더러’는 놀랍게도 마을 사람들이 감추고 싶어 하는 치부와 비밀을 그린 초상화와 풍경화 전시회를 기도한다. 마을의 모든 남자가 모인 가운데서 베일에 가려져 있던 그림들이 제 모습을 드러내고, 전시회에 초대된 이들은 경악해 마지않는다. 정말 누구나 다 잊고 싶어 하던 추악한 과거의 진실이 이방인 ‘안더러’의 손끝을 통해 재현된 것이다. 그들이 ‘불편한 진실’을 대면하는 순간, ‘안더러’의 운명은 바로 결정지어졌다.
필립 클로델은 인간 이하의 생활을 하면서 연명을 해야 했던 수용소 생활의 비참했던 과거를 고향으로 돌아온 브로덱의 삶과 동일 선상에 올려놓는다. 더 이상 죽음이라는 공포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지만, 진실을 감추려고 하는 마을 사람들의 협잡은 혐오스럽기 그지없다. 전쟁 당시 마을에 주둔했던 침략군 분대장 불러가 들려준 나비 ‘렉스 플라메’ 이야기는 나치가 주장하던 인종주의 이론의 변종이다. 마을 사람들은 ‘정화’하라는 침략군의 요구에 브로덱과 프리프만을 ‘프렘더’로 몰아 그들에게 넘겨준다. 이런 인간적 배신은, 훗날 ‘안더러’에게 근원을 알 수 없는 증오와 분노를 폭발시킨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이 소설에서 소개된 “정화의 밤”(크리스탈나흐트)은 실제로 있었던 사건으로 시대적 배경을 유추해 볼 수 있게 해준다. 필립 클로델은 마치 독자가 직접 그 끔찍했던 밤의 사건을 목격하는 것처럼 생생하게 들려준다. 나치에 의해 선동된 보통 사람들의 ‘프렘더’에 대한 증오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그리고 더 나아가서 훗날 상상을 초월하는 대량학살의 단초가 되었는지 작가는 예리하게 짚어낸다.
필립 클로델의 <브로덱의 보고서>를 통해 한나 아렌트가 일찍이 자신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역설했던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 어떻게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을 통해 구현될 수 있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