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말 오랜만에 다시 이언 매큐언의 <암스테르담>을 읽었다. 기억도 할 수 없을 만큼 오래 전에 <암스테르담>으로 이언 매큐언과 처음 만났다. 그리고 9년 전에 두 번째로 만나서 리뷰를 남겼다. 그리고 병오년 3월의 연휴에 지난달에 도서관에서 우연히 빌린 <암스테르담>을 “다시” 읽었다.
때는 1996년, 레스토랑 평론가이자, 사진작가 그리고 정원사였던 46세의 몰리 레인이 죽었다. 그녀의 장례식에 두 명의 남자가 등장한다. 첫 남자는 성공한 작곡가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클라이브 린리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저지>의 편집국장 버넌 핼리데이다. 그 둘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몰리 레인과 연인이자 친구로 오랜 세월을 같이 보내온 사이다.
몰리의 남편 조지 레인은 그녀의 외도를 알면서도 용인해 왔던가. 그의 입장에서 아내의 불륜 상대들이 장례식장에 나타난 것만으로도 불쾌하지 않았을까나. 그 둘이 전부가 아니었다. 제 3의 남자이자 최근까지도 불륜관계를 가져온 영국 내각의 외무부장관 줄리언 가머니도 등장했다. 그전에 16세의 몰리를 만난 비트 제네레이션의 시인 하트 풀먼도 있었던가. 그들 사이에서 왠지 모를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진짜 큰 사건은 조지 레인이 기자 출신 편집국장 버넌에게 전화해서 몰리가 남긴 아주 깜짝 놀랄 만한 사진이 있다고 제보하면서부터 이야기는 힘차게 굴러가기 시작한다. 기자출신 답게 동물적인 감각으로 버넌은 조지 레인이 보여준 세 장의 사진이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는 <저지>의 구세주가 될 거라는 점을 직감한다. 그건 바로 어쩌면 미래 영국 국가의 최고지도자 총리가 될 지도 모를 가머니의 비행을 폭로하는 사진들이었다.
한편, 젊어서 상속받은 유산으로 호시절을 보낸 클라이브는 노년에 대한 걱정으로 안락사를 계획한다. 그리고 버넌에게 자신의 마지막을 부탁할 계획이다. 그리고 교향곡 작곡에 전념하던 클라이브는 자신의 사고틀 속에서 음악적 영감을 포착하기 위해 번잡한 런던을 떠나 등산으로 기분전환을 위해 레이크 디스트릭트로 향한다. 그전에 버넌은 자신이 구한 가머니의 사진에 대해 어려울 때마다 자신을 도와준 클라이브에게 털어 놓는다. 하지만 이 멜로디의 대가는 마치 다가올 버넌의 미래를 예시라도 하듯 그의 시도를 말린다.
언론사에 포진한 고루한 문법주의자들과 치열한 경쟁을 거쳐 마침내 편집국장의 자리에 오른 버넌은 가머니를 끝장내 버릴 복장도착자로서 드레스 입은 그의 사진을 공개하기로 결정한다. 그게 벌써 30년 전, 판매부수 증가와 수익창출에 눈이 먼 언론에 대한 이언 매큐언식 매서운 비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에도 이미 언론은 대중의 알 권리라는 미명 아래, 이런 식으로 자극적인 기사 작성을 치열하게 내부적으로 고민했다는 것이다. 충격적인 사진 공표를 앞두고, 버넌은 파렴치하고 위선적인 숙적의 부고 기사까지 점검하는 치밀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버넌 할리데이의 거의 성공할 뻔 했던 이런 시도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투사에 의해 저지당했다. 의사 출신 가머니의 아내였던 로즈의 정면승부로 단박에 뒤집혀 버렸다. 경매에서 낙찰 받은 가머니의 사진을 신문에 공개하기 전에, 로즈는 언론사를 불러 자신이 먼저 선수를 친 것이다. 로즈의 영민한 대처로, 미스터 가머니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반대로 버넌 핼리데이는 추잡한 스캔들에 매달린 파렴치한 언론인으로 “벼룩”이라는 치욕적인 별명을 얻고 회사에서 권고사직이라는 형태로 해고되고 말았다.
이언 매큐언은 마치 한 편의 심포니를 능수능란하게 지휘하는 마에스트로처럼 숨 막히게 전개되는 서사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몰리-클라이브-버넌이 어떻게 해서 그렇게 막역한 사이가 되었는지에 대한 과거의 조명으로부터 시작해서, 그들의 관계에 이질적인 요소였던 줄리언 가머니를 정상에서 끌어내리기 위한 버넌의 시도 그리고 사고를 소리로 변환시키기 위해 전념하는 클라이브의 창작에 대한 욕망이 어떻게 어그러지는지에 대한 과정들이 그야말로 폭풍처럼 몰아치고, 격랑 끝에 전도되어 추락에 도달해 버리는 저자의 연출이 대단했다. 내가 이런 이언 매큐언의 작법에 반해서 그의 모든 작품들을 읽게 되어 버렸던가.
소설 <암스테르담>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클라이브 린리와 버넌 핼리데이는 결국 자기 파멸해 버리고 만다. 자신의 모든 걸 태워서 창조한 교향곡은 클라이브가 보기에도 표절에 불과했다. 결정적으로 순수한 영감이 떠오를 때마다, 그의 작업은 방해받았다. 심지어 친구 버넌의 고발로 경찰서 조사까지 받지 않았던가. 진작 마감을 넘기고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보우에서 리허설을 앞둔 상황에서 억지로 불후의 명작을 만들어낸다는 건 그야말로 미션 임파서블이었으리라. 그런 그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몰리와의 재회였다.
아내 로즈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난 줄리언 가머니도 마찬가지였다. 대중의 비난으로부터는 벗어났을지 몰라도 사실상 정치가로서 그의 운명은 더 유지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게임의 승리자는 따로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몰리의 남편인 조지 레인이었다. 이언 매큐언이 엔딩에 이런 강력한 한방을 준비해 두었을 줄 누가 알았을까. 차라리 그전에 읽은 것들을 모두 잊어 버려서 다행이었다고 해야 할까.
문득 한 책을 세 번 이상 읽은 게 몇 번이나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소설 <암스테르담>에서 노골적인 플롯의 전개 대신, 마치 이야기가 스스로 굴러가듯 그렇게 무심하게 배치한 이언 매큐언의 기법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걸작은 다시 읽어도 또 그렇게 재밌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