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부터 한창 책을 정리하고 있는 중이다. 한 번 읽고 나서 다시 읽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책들을 왜 그렇게 쌓아 두었는지 모르겠다. 강력한 외부 압력에 직면하고 나서, 드디어 책탑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이사가 책정리의 강력한 동인이었지만 이사를 다니지 않게 되다 보니 스트레스는 준 대신 잠시 방심했던 모양이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창조자>는 무려 6년 전에 사서 쟁여둔 책이었다. 그리고 읽지 않고 있다가 이번 책정리 주간에 발굴(?)해서 읽게 되었다. 그리고 무려 시집이었다! 내가 시집을 사서 쟁여 두었다고? 이거야말로 놀랄 노자가 아닌가 말이다. 난 시집을 잘 읽지 않거든.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산 시집이니 일단 한 번은 읽어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느낌 같아서는 어제 하루 동안에 바로 다 읽을 줄 알았지만, 어제와 오늘 이틀에 걸쳐 읽게 되었다.
도서관 사서 출신으로 비록 시력을 잃었지만 국립도서관 관장을 할 정도로 책을 사랑했던 우리 책쟁이들의 영원한 우상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책은 이러저러한 경로로 많이 구비해 두었다. 문제는 읽지 않고 있다는 점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렇게 시집으로나마 위대한 선배와 만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시집 <창조자>에는 스페인 원어가 시집의 왼편에 그리고 한글 번역이 오른편에 떡하니 버티고 있다. 스페인어에 문외한이기 때문에 대충 한글 번역과 궁금한 원어를 비교해 보는 맛이 있다. 왠지 "포에티카"라는 아마도 라틴어에서 유래했을 것 같은 스페인어는 멋져 보이지 않는가 말이다.
보르헤스 작가의 마음을 오롯하게 알 수는 없지만 왠지 그가 구사하는 시들은 밤에 집필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해 본다. 사위에 어둠이 깔리고, 조용한 분위기에 달빛이라도 비춘다면 누구라도 가슴에서 피어오른 시상들을 글로 옮기고 싶지 않을까. 물론 나같은 소설이나 산문 그리고 에세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오글거릴 지도 모르겠지만. 데이빗 설로이 같은 외국 작가들 역시 시인을 꿈꾸다가 소설가로 전향했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 걸 보면 시는 어쩌면 작가들의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워낙에 방대한 독서를 통해 우리 같은 범인이 따라갈 수 없는 지혜와 지식을 쌓은 보르헤스 선생이 구사하는 시구들은 주석이나 해설이 없으면 따라가기조차 버겁다고 솔직히 고백해야 할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책 뒤에 실린 주석이 많은 도움이 되었단 말이지. 잘 모르지만 이러저러한 경로를 통해 알게 된 후안 파군토 키로가 같은 인사의 이름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더라. 예전에 사르미엔토의 <파쿤도>를 사서 읽다 만 기억이 났다. 그리고 율리시즈의 고향 이타카를 왜 "이타케"로 굳이 번역했는지 궁금했다. 이타카 정도는 알 수 있지 않나.
예전에 지인이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방문했다고 하는데, 2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열기> 부분을 읽다 보니 과연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공기를 좋을까라는 엉뚱한 상상이 들기도 했다. 우리가 접하는 문학은 이런 엉뚱한 상상을 하게 만들어 주기에 더 흥미롭고 재밌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무려 80년 전에 <카몽이스>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는 15세기 전설적 인물인 포르투갈 시인 루이스 드 카몽이스에 대해서도 이 시집을 통해 알게 됐다. 그는 희망봉을 돌아 인도로 가는 항해로를 발견한 바스코 다 가마의 일대기를 그린 대서사시 <루지아다스>의 저자라고 한다. 그의 일대기를 보니 어쩌면 포르투갈의 돈키호테 같은 모험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은 보이지 않게 타오르는 불"이라는 시가 있는데, 제목 한 번 기가 막히지 않는가.
누가복음 23장에 등장하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형을 받은 도둑에 대한 시도 인상적이었다. 유대인인지 이방인인지 우리는 그의 정체에 대해 알 수가 없다. 절망의 순간에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인정하고 최후 심판의 날에 구원의 안식을 얻게 된 신화적 인물에 대해서도 호르헤스 선생은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회개한 죄인이 가진 천진함을 작가는 예리하게 짚어낸다.
마지막에 배치한 <골렘>은 짧지만 강렬한 시집의 대미를 장식한다. 유대교 신비주의 카르발라를 연상케 하는 이야기라니. 그저 단순하게 게임에 등장하는 돌로 만들어진 강력한 몬스터라고 생각했는데, 호르헤스 시집은 기존에 내가 품고 있던 사고를 단박에 혁파해 주었다. 히브리 신비주의자들은 아담이 최초의 골렘이라고 주장하고, 누군가 모세 5경에 나오는 네 단어를 찾아 발음하면 골렘(인간)을 창조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시집의 제목도 '창조자'일까. 그리고 시인은 몇몇 단서들을 제공한다.

호르헤스 선생의 시들을 읽으면서 리뷰에 도대체 무슨 이야기들을 담을까 많은 고민을 했었다. 그런데 막상 이것저것 쓰다 보니 오히려 빼야할 거리들을 걱정하게 되었다. 시집의 어디선가 읽었는데, 시인들의 업은 우리네 삶을 언어로 바꾸는 거라고 했던가. 지금도 여전히 어딘가에서 자신의 임무를 묵묵하게 수행하고 있는 시인들에게 경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