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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er than day before
  • 세상 끝의 기록
  • 존 버거.장 모르
  • 25,200원 (10%1,400)
  • 2026-01-09
  • : 20,705


6년 전에 읽은 존 버저와 장 모르의 공동작업으로 만들어진 책이 <세상 끝의 기록>이라는 제목으로 재출간됐다. 난 그 시절에 중고서점에서 구한 책으로 읽었지 아마. 그리고 어제 이번에 새로 나왔다는 뉴스를 듣고 다시 한 번 읽게 됐다. 그렇지 클래식은 모름지기 다시 읽는 법이지.

 

물론 6년 전에 읽었던 기억은 모두 휘발해 버리고 새로운 느낌으로 장 모르의 사진과 글들을 만나게 됐다. 솔직하게 말해서 사진이 많아서 금방 읽었다는 건 안 비밀이다. 나도 한 때 사진을 찍어 보겠다고 해서 장 모르가 말하는 사진의 핵심이라는 우연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됐다. 좋은 사진가라면 항상 카메라의 조리개를 열고 언제라도 셔터를 누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원하는 찰나의 순간은 항상 오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또 전문 사진가도 아닌 사람에게 그런 일은 너무 가혹한 게 아닌가 싶다.

 

대선배 장 모르에 의하면 사진에는 모름지기 즉흥적인 놀라움이 담겨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뛰어난 관찰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찰라를 포착하는 것만큼, 그 이상의 관찰력을 가지고 있어야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지. 너무 당연한 이야기가 아닌가. 하지만 이 모든 게 다 필름으로 사진으로 찍을 수밖에 없던 시절의 아주 아련한 이야기들이다. 이제는 누구나 휴대폰에 부착한 카메라로 순간을, 찰나를 포착해낼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이제 어쩌면 기계의 성능보다 사진가의 의지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나는 개인적으로 사진은 기록을 위한 매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존 버저와 장 모르가 협업한 텍스트와 이미지로 구성된 <세상 끝의 기록>은 참 클래식의 반열에 올릴 법한 그런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장 모르가 들고 다니던 카메라의 피사체가 된 사람들의 감정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왜 촬영을 허락했을까라는.

 

좋은 사진을 얻기 위해서는 낯섬이 필요하지 않을까. 너무 익숙한 것들은 작가의 피사체로서 어떤 의미를 감소시키지 않나 싶다. 누구나 매일매일의 일상에서 무엇을 건질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래서 장 모르는 세상의 곳곳을 주유하며 자신의 관찰에 기반한 사진들을 기록했다.

 

그가 방문한 곳 중에서 가장 이색적인 곳은 아마 북한이 아닐까 싶다. 작가의 스위스 국적은 민주진영 뿐 아니라 사회주의 국가들도 방문을 용이하게 만들어 주었다. 북한은 일단 아무나 가고 싶다고 해서 갈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니지 않은가. 더군다나 냉전이 열전이던 시절인 1962년에 방문했다고 한다. 그리고 열심히 찍은 사진들은 북한 정권의 검열 아래 사라져 버렸다고. 체제 경쟁이 한참이던 시절, 자국의 치부를 드러내는 현실을 담은 사진을 서방세계에 내보내고 싶지 않았겠지.

 

비슷한 일은 십년 정도 뒤인 1971년에도 소련에서 발생했다. 열심히 소련의 곳곳을 촬영했지만 서슬퍼런 KGB에게 기껏 찍은 필름들을 뺐겼다고 한다. 그리고 나중에 20년이란 시간이 지나, 개혁개방으로 서방세계로 대문이 열린 소련에 방문해서 당시 뺏긴 필름들을 찾아 보려고 했지만, 장 모르 작가의 노력을 실패했다고 한다. 그 때는 그런 야만의 시절이었다. 하긴 지금도 진실을 알리려는 노력들이 그것을 원하지 이들에 의해 세련된 방식의 검열로 방해받고 있지만 말이다.

 

1980년대 미국의 앞마당이라고 할 수 있는 니카라과에서는 산디니스타 정권이 우익 콘트라 반군과 내전을 벌이고 있었다. 장 모르는 내전으로 파괴된 마나과에도 방문해서 기록을 남겼다. 누군가에게는 그냥 의미 없는 사진들이겠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귀중한 시대정신을 담은 한 장의 사진이 아닐 수 없다.

 

장 모르가 이런 역사의 현장만 카메라에 담은 건 또 아니다. 지구 반대편에서 열린 자기 막내 아들의 결혼식장에 참석해서 보기만 해도 유쾌해지는 그런 사진들도 찍었다. 가족여행으로 이탈리아 사르데냐 섬을 방문해서 댄스파티가 열린 어느 시골 마을의 흥겨운 정경도 기록으로 남겼다. 이런 게 바로 사진의 힘이 아닐까 싶다.

 

이제는 예전처럼 사진에 대한 열정이 사라져 버렸지만, 다시 한 번 장 모르의 사진들을 보다 보니 한컷의 마음에 드는 찰라의 순간을 포착해 보겠다고 무거운 카메라를 메고 전국을 누비던 시절에 대한 추억이 떠올랐다. 그 때는 문화유적에 대한 사진들을 열심히 찍었었지. 지금 다시 게으른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던 그 시절의 동력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아 <세상 끝의 기록>은 병오년 새해 내가 처음으로 다 읽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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