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도 그렇지만 신대륙이 발견되었던 16세기에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공포 그리고 미지의 대륙이 가져다 줄 물질적 축복에 대해 모두가 엄청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아르헨티나 출신의 후안 호세 사에르 작가의 책 <목격자>에서도 그런 시선들을 읽을 수가 있었다.
사에르 작가는 주인공 소년에게 익명을 부여했다. 하지만 동방의 이 엉뚱한 독자는 마음대로 그를 아노니마토(무명씨)라고 부르기로 마음먹었다. <목격자>가 내 손에 들어온 이상, 독서는 내 마음대로니 말이다. 이름이 있다면 다른 이름을 붙이는 게 안되겠지만, 주인공 소년은 이름이 없었으니까.
13세 고아 소년 아노니마토는 브라질 내륙으로 탐험에 나선 배의 사환으로 취업해서 대양에 나선다. 그리고 배 위에서 자신을 스스로 지킬 수 없었던 소년은 양성적 인간 취급을 당한다. 당시에는 그런 게 일상이었는지 좀 의심스럽다. 그의 여정은 내륙에 상륙한 뒤, 현지 인디언들을 만나면서 180도로 바뀌게 된다. 선장을 필두로 한 다른 동료들이 모두 인디언들에게 살해당한 것이다. 아노니마토 홀로 구사일생으로 생존하는데 성공했지만, 끔찍한 일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을 “데프-기”라 부르는 인디언들이 살해당한 아노니마토의 동료들을 잡아먹은 것이었다. 아니 이럴 수가 있나 그래. 그리고 왜 그들은 또 디에고는 살려 두었단 말인가. 아노니마토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인디언들은 석쇠를 준비해서 거대한 말 그대로 카니발을 벌였다. 그리고 술도 마시고 교접도 하며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일상으로 복귀했다.
인디언들과 그렇게 10년의 세월을 보내고 난 뒤, 인디언들은 아노니마토를 해치지 않고 카누에 태워 자신이 있던 사회로 보내졌다. 아노니마토는 스페인에 돌아가 자신이 목격한 것들을 정부 관리와 사제들에게 보고한다. 그리고 케사다 신부를 만나,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나는 <목격자>를 읽으면서 아노니마토가 스페인으로 복귀하면서부터가 이 소설의 핵심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도원에서 아노니마토는 7년의 세월을 보내면서, 아버지 같은 케사다 신부에게 글쓰기와 읽기 라틴어 히브리어 같은 전문적인 영역의 학업적 성취를 이룰 수가 있었다. 이런 배움이 훗날 아노니마토가 자신이 경험한 일들을 상당히 전문적 관점에서 기록으로 남기게 되는 기반이 되었다.
그 다음에는 아노니마토는 유랑극단을 만나 희곡배우이자 전속배우로 변신을 거듭한다. 브라질에서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꾼이자 배우가 된 것이다. 누구보다 자신이 직접 목격하고 체험한 이야기들을 아노니마토보다 더 잘하고 연기할 수 있는 자가 누구란 말인가. 그리고 어느 순간, 아노니마토는 그 일을 그만둘 결심을 하게 된다. 동료 배우들의 아이들을 거둬 유사가정을 이루게 되는 아노니마토. 참으로 파란만장한 삶이 아닐 수 없다.
도서관에서 희망도서로 처음에 빌려서 읽다가 어느 순간 멈췄다. 그리고 지난 주말에 반납하러 가서 연장한 다음, 앉은 자리에서 마지막까지 다 읽을 수가 있었다. 16세기 초,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모티브로 삼아 사에르 작가는 기억과 구전에 기반한 신화 같은 이야기들을 재창조해냈다. 남들이 하지 못하는 경험들을 했던 아노니마토는 반세기 전의 사건들을 기억의 저장소에서 소환하고 분석한다. 뛰어난 지식인들에 버금가는 해석과 상상력 넘치는 주인공의 서사 전개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미지의 신세계와 조우했던 소년의 기억들은 그렇게 새로운 세기에 재탄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