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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er than day before
  • 울지 마, 아이야
  • 응구기 와 시옹오
  • 10,350원 (10%570)
  • 2016-05-23
  • : 274


 

한 시대가 가고 있다. 우연히 응구기 와 티옹오(1938.1.5.~2025.5.28.) 작가가 하늘의 별이 되었다는 소식을 인스타를 통해 알게 됐다. 기록을 찾아보니, 응구기 선생의 책은 <한 톨의 밀알> 읽은 게 전부인가 보다. 그래서 그를 추념하는 의미에서 역시 책쟁이는 고인의 책을 읽는 방식을 선택했다. 응구기 선생은 총 8편의 소설을 썼는데, 그의 첫 작품이 바로 <울지 마, 아이야>였다. 어제 퇴근길에 도서관에 들러 이 책을 빌려서 읽기 시작했다. 그 외에도 <피의 꽃잎들>과 <십자가 위의 악마>가 국내에 소개되어 있다. 이달에는 그의 작품들을 좀 읽어봐야지 싶다.

 

소설 <울지 마, 아이야>의 주인공은 학교에 다니길 간절하게 소망하는 십대 소년 은조로게와 그의 가족들이다. 은조로게의 아버지 소작농 출신 응고토는 첫 번째 큰 전쟁(1차 세계대전)에 참가해서 영국 식민주의자들을 위해 짐을 나르고, 길을 닦는 일을 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 오니 땅을 빼앗기고 소작농 신세가 되었다.

 

두 번째 큰 전쟁에는 응고토의 장성한 아들 둘이 참전했다. 흑인들에게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은 백인 히틀러와 싸우다가 므왕기는 전사했고, 보로는 고향으로 돌아와 이전과 전혀 다른 사람이 됐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제대로 교육 받지 못한 이들은 번듯한 일자리를 구할 수가 없었다. 응고토는 아들 은조로게에게 기대를 걸고, 없는 살림에 은조로게를 학교에 보낸다. 배움에 대한 열의가 누구보다 강렬했던 은조로게는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이 행복할 따름이다. 모름지기 배움은 이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오늘날의 현실이 좀 갑갑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응구기 작가는 백인 지주 미스터 하울랜즈 수하에서 일하는 응고토의 고단한 삶을 있는 그대로 독자에게 보여준다. 케냐 땅의 진짜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응고토들은 먹고 살 수 있는 기반이 되는 땅이 없어 고통받는다. 응고토의 아들들은 백인 지주의 하수인 역할을 아버지에게 반발한다. 또 한편에서는 같은 흑인들에게 배신자 취급받는 매판자본가 자코보와의 갈등에도 방점을 찍는다.

 

두 번째 '큰 전쟁'이 끝난 뒤, 1950년대 초반 전세계적으로 민족해방운동이 대세를 이루는 가운데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케냐와 키쿠유족들의 세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검은 모세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조모 케냐타의 등장과 마우마우단의 활동은 응고토의 아들들인 보로와 코리의 뜨거운 가슴에 불을 질렀다. 백인 식민주의자들의 오랜 억압과 착취의 사슬을 끊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판단한 이들은 대대적인 파업을 조직했다가, 자코보를 앞세운 지배계급의 강력한 진압에 무릎을 꿇게 된다. 어쩌면 이런 실패는 뒤에 도래할 더 큰 도약을 위한 준비단계가 아니었을까.

 

1부에서 이런 다양한 위기들이 조성되었다면, 2부에서는 파국으로 치닫는 어둠의 시기에 대한 서사가 이어진다. 검은 모세가 1952년 10월 21일 체포되었고, 재판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 지방관이 된 하울랜즈와 치프이자 시민군의 대장이 된 자코보는 키쿠유랜드의 사람들을 가혹하게 탄압하기 시작한다. 특히 하울랜즈는 이른바 이이제이 전술로 치프를 앞세워 응고토들을 괴롭힌다. 자코보는 같은 흑인들에게도 지지를 받지 못하고, 민족의 배신자라는 굴레를 쓰게 된다.

 

서로 증오하고 분열한 이들을 기다리는 건 파국 뿐이었다. 통금이 선언되고, 응고토 식구들이 잡혀갔다가 벌금을 내고 풀려나는 일이 벌어진다. 가부장으로서 응고토의 권위는 바닥으로 추락한다. 결국 숲을 기반으로 한 마우마우단의 저항과 발호가 시작된다. 파업이나 항의 같은 방식으로는 키쿠유 사람들이 원하는 자유와 잃어버린 유산 그리고 땅을 되찾을 수 없다는 절망에 도달한 것이다. “큰 전쟁”에서 전쟁기술을 배운 보로는 숲 사람들의 두목이 되어 자코보를 없앨 것을 다짐한다. 결국 피를 피로 씻는 복수가 시작된다.

 

서로에 대한 폭력이 난무하는 가운데, 교육을 통해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은조로게의 꿈마저 허망하게 무너져 내린다. 어쩌면 이 과정들은 1963년 12월 12일 케냐의 독립까지 계속될 키쿠유 사람들 투쟁의 역사를 직접 보고 느낀 응구기 선생의 체험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두 번이나 협박을 받던 자코보가 살해되고, 범인으로 지목된 응고토의 아들들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는 기꺼이 자신이 범인이라고 자백한다. 무장 순찰대원을 동원한 지방관 하울랜즈는 응고토를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고문한다. 이런 가운데 은조로게는 집안 원수의 딸인 므위하키와의 사랑을 키워 나간다. 물론 그들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는 없었다. 아버지 응고토는 결국 죽고, 보로는 사형을 앞두고 있고, 카마우는 종신형 그리고 코리는 강제수용소에 갇히게 됐다. 한 마디로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 버렸다. 어찌어찌해서 간신히 살아남은 은조로게의 내일에 과연 태양이 떠오를 것인가.

 

응구기 선생이 이 책을 발표한 1962년 7월은 아직 케냐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전이었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가장 어두운 그런 시기가 아니었을까. 응고토와 그의 아들들은 식민제국주의자들을 위해 “큰 전쟁”에 나가 죽고 다쳤지만, 아무런 보상도 주어지지 않았다. 아니 가지고 있던 땅마저 빼앗기고 고향에 돌아와서는 실업자 신세가 되었다. 그들에게 교육을 통한 성공은 너무나 요원한 기대일 뿐이었다.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각성한 보로와 카마우 그리고 코리들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와 상실한 유산을 되찾기 위해 투쟁에 나선다. 그 누가 이들을 테러리스트라고 비난할 것인가.

 

사랑하는 므위하키마저 잃고 삶의 의미를 상실한 은조로게를 마지막 순간에 구한 것은 이제는 해체된 가족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었을까. 삶의 터전을 구하고 가족들을 위해 싸움을 불사한 응고토는 어쩌면 아들들의 비난을 받을 만큼 겁쟁이는 아니었다. 은조로게 역시 자책하는 것만큼의 겁쟁이는 아니었노라고 위로해 주고 싶다.

 

이제야 응구기 선생의 책을 두 권 읽었다. 기회가 된다면 <피의 꽃잎들>과 <십자가 위의 악마>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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