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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er than day before
  • 파쇄
  • 구병모
  • 11,700원 (10%650)
  • 2023-03-08
  • : 14,298


 

12년 만에 구병모 작가의 <파과> 리뷰를 찾아서 읽어봤다. 이유는? 이제 곧 이혜영 배우가 조각으로 분한 영화 <파과>가 개봉할 거라고 해서. 그런데 파과가 무슨 뜻일까. 무려 12년 전에 읽은 책의 기억은 존재하지 않았다. 으깨진 과일 정도로 해석하면 될까. 영화 트레일러는 소설보다 더 흥미진진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12년 전의 내 예언도 맞았다. 영화화될 거라는.

 

그리고 <파과>의 스핀오프에 해당하는 <파쇄>의 존재를 알게 됐고, 한 걸음에 도서관에 가서 빌려서 읽었다. 채 100쪽이 되지 않는 단편이었다. 오래 전에, 집이 영화관과 도서관 근처에 있으면 참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한 시절이지만, 살던 집 근처에 영화관이 들어와서 저녁 시간에 어슬렁거리며 영화를 보러 가던 생각이 난다. 지금은 두 번째 소원인 집 근처 도서관이 있어서 참 좋다.

 

전작 소설 <파과>에서 65세 무려 45년 동안 방역업자(킬러)로 복무해온 조각의 마지막 서사에 방점을 맞추고 있다면, <파쇄>에서는 조각의 빡센 도제 시절을 그리고 있다. 문득 구병모 작가는 어떻게 해서 이렇게 자신이 살면서 한 번도 만나 보지 못했을 무시무시한 킬러에 대한 단상들을 짧지만 강렬한 서사에 녹여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이것 또한 작가의 역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숲 속으로 일종의 전지훈련을 떠난 조각과 그의 사부 류(?)는 거의 인간의 극한에서 단련을 시작한다. 언제라도 사부의 등짝을 바닥에 눕히게 한다면 하산해도 좋다라는 단서와 함께 사선에 가까운 그런 수업이 시작된다. 사부의 실전을 방불케 하는 습격은 기본이다. 방심한 틈을 노리고 뒤통수로 날아드는 목봉을 피하지 못하면 즉사할 지도 모른다. 심지어 손발을 결박해서 숲 속에 그대로 방치하기도 한다. 탈출하지 못하면, 언제든 나타날 수 있는 독사에게 당할 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런 실전을 방불케하는 고된 훈련이 조각의 현역 45년을 담보했는지도 모르겠다. 모름지기 방역업자에게 필요한 건, 주변의 모든 것을 의심하고 방심하면 안된다는 아주 간단한 진리일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구병모 작가가 만들어낸 이 조각이라는 캐릭터는 너무 매력적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말이다. 시작과 끝을 마련해 두고, 중간을 채워가는 작법은 또 어떨까. 그 기간이 무려 45년이나 된다고 한다면, 도대체 조각이 전성기일 때는 어떤 활약을 했단 말인가. 생각만 해도 짜릿해지지 않는가. 시리즈의 탄생을 기대해 볼 수밖에 없다.

 

작가는 마치 자신이 조각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전지적 시점에서 킬러의 심리를 근원까지 도달해서 디테일을 독자에게 전달한다. 넷플릭스 드라마 <길복순>에서 킬러 복순이 보여준 것처럼 확실히 총이 깔끔하고 신속하긴 하지만, 철저하게 기도비닉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총보다 칼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나중에 그녀의 시그니처 도구가 되는 벅나이프를 손에 쥐게 되는 순간, 죽음의 과수원으로의 초대장이 발부된다.

 

그리고 보니 전작 <파과>에서 보여준 것처럼, 으깨진 과일 그러니까 죽음의 과수원의 연료는 희생 제물의 피로 이어지는 무언가가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국어사전에서 <파과>의 뜻을 검색해 보니 "흠집이 난 과실"이라는 뜻과 다른 한자로 여자 나이 16세를 뜻한다고 한다. 엉뚱한 상상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방역업자 조각이 이 업계에 입문한 나이가 16세라는 설정은 또 어떨까.

 

어쨌든 영화 <파과>는 이달말에 개봉 예정이라고 한다. 스크린에서 정말 이혜영 배우를 오랜만에 보게 될 것 같은데, 이 영화는 극장에 가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울러 바퀴벌레 같은 인간들을 제거한다는 방역업계의 대모 조각이 등장하는 또다른 스핀오프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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