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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er than day before
  • 나는 다시는 세상을 보지 못할 것이다
  • 아흐메트 알탄
  • 13,500원 (10%750)
  • 2021-09-06
  • : 256


 

모든 책에는 진입장벽이 있다. 터키 출신 작가 아흐메트 알탄의 <나는 다시는 세상을 보지 못할 것이다>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2016년 7월 15일에 발생한 쿠데타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 책은 실패한 쿠데타 이후 두 달 뒤에 체포된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아흐메트 알탄이 교도소에서 쓴 옥중수기다.

 

2016년 7월 15일, 일단의 터키 장성들은 이슬람주의로 회귀를 도모하는 미래의 독재자 에르도안의 통치에 반발해서 쿠데타를 일으켰다. 하지만, 6시간 만에 에르도안의 신속한 대응으로 쿠데타가 제압되면서, 피의 숙청이 시작됐다. 그리고 그 후유증이 우리의 주인공 아흐메트 알탄에게까지 몰아 닥쳤다.

 

경찰이 어느 날 자신을 찾아올 것을 대비해서 모종의 준비(?)를 하는 작가의 모습에서 소설 <시대의 소음>에 등장하는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의 예상은 벗어나지 않았고 사십오 년 전 작가와 형제 메흐메트의 아버지가 그랬듯이 알탄 형제 역시 경찰에 체포되어 유치장에 갇히는 영어의 몸이 되었다.

 

그 뒤에 벌어지는 투옥과 심문 그리고 재판 과정에서 사법당국이 내세운 죄목과 그에 대한 증거는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아흐메트 알탄이 쓴 몇 개의 칼럼과 방송 출연을 증거로 68세의 노작가에게 국가노반역죄라는 무시무시한 죄목과 함께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했으니 말이다. 시간적으로 나중에 언급되는 사건들을 미리 말해 버렸네.

 

솔직히 인신구속이 되어 보지 않아서, 전적으로 작가의 심리 상태에 공감할 수 없을 것 같다. 현대판 술탄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에르도안은 실패한 쿠데타를 자신의 권력 강화를 위한 수단으로 삼았다. 현대판 술탄은 자신에게 불리한 일체의 비판을 허용하지 않았다. 독재자들의 특징이 바로 그런 비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이라는 걸 굳이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 동시에 저널리스트이자 작가 출신 지식인의 비판이 그만큼 무섭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작가는 자신이 불안할 때 담배를 피운다고 말한다. 투옥되고 나서도 그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그동안 자신이 접하고 익힌 문학의 힘으로 그는 어쩌면 정신줄을 놓고 미쳐 버릴 수도 있는 그런 상태를 이겨낸다. 아니, 지난 주말 독서모임에서 토론했던 문학이 결국 육신을 구원할 수 있다는 그런 결론과 이렇게 맞닿게 된다는 설정인가. 좁은 공간에 갇혀, 생전 처음부터 보는 이들과 강제로 지내야 하는 공포와 두려움을 작가는 문학적 상상력의 도움을 받아 이겨낸다. 대단한 정신력의 발현이 아닐 수 없다.

 

문득 나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아흐메트 알탄의 경우처럼 그렇게 문학적 상상력과 사유의 힘으로 현실에 닥친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을까. 분주한 일상 가운데 시간에 쫓겨 살지만, 막상 작가처럼 막대한 시간의 자유(?)가 주어졌을 때 할 일이 없다는 게 심각한 문제로 다가올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도대체 지금이 몇 시인지도 모를 때 작가는 자신만의 고유한 방법으로 시간을 발견해내지 않았던가.

 

한 때 변호사 사무실에서 사무장을 했던 친구가 법정에서 판사는 가히 신에 버금가는 존재라는 말을 한 기억이 이 책을 읽는 도중에 떠올랐다. 아흐메트 알탄의 종신형 선고와 가석방 그리고 재투옥의 지난한 과정을 거치면서 희망과 절망의 교차로를 수없이 넘나든다. 그 와중에서도 그를 끝까지 저버리지 않는 건, 유년 시절 이래 그와 함께 한 문학의 힘이었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그리고 나의 예상대로 책의 후반에 가서는 19세기의 위대한 작가들에 대한 작가의 옥중 분석과 조우하게 된다. 그가 어렵게 교도소 도서관에서 소원 수리의 방식으로 처음 얻게 된 책이 바로 레프 톨스토이의 <카자크 사람들>이었다. 이 위대한 작가는 사람들의 삶을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재구성해서 인간 본성의 비밀을 파악하는데 주력했다. 하지만 그 다음 세기 작가들은 더 쉬운 방식의 관념에 집중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그 이유는 인간 본성의 비밀을 파헤치는 것보다 그게 더 쉽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도대체 교도소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의 사유와 고뇌가 이런 분석을 가능하게 했는지 모르겠다.

 

많은 양식 있는 터키의 지식인들이 금세기 첫 제노사이드로 알려진 터키의 1915년 아르메니아 학살에 대해 침묵하지만, 아흐메트 알탄은 조국 터키에서 금기시되는 이 주제에 대해서도 과감하게 국가적 차원에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 아흐메트 알탄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불과 얼마 전 우리도 비슷한 사태를 경험할 뻔한 위기를 겪어서 그런지, 아흐메트 알탄의 체포와 투옥 그리고 수감생활에 대한 기록이 남다르게 다가왔다. 어쩌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더 몰입해서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꽤나 많은 작품들을 발표했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국내에 소개된 책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터키의 밀란 쿤데라라는 별명으로, 연애 소설 전문가라고 하는데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다는 <위험한 동화>를 한 번 읽어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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