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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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er than day before
  • 시체 한 구가 더 있다
  • 엘리스 피터스
  • 15,120원 (10%840)
  • 2024-08-05
  • : 2,948

 


 

갑진년 크리스마스에 읽기 시작한 TCBC(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2탄을 순식간에 읽어 버렸다. 역시 시리즈에 입문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적응기간이 필요한 모양이다. 지금까지 1편과 10편을 만났는데, 도서관에서 빌리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근 20년 만에 복간된 TCBC 시리즈가 대중에게 인기인 모양이다. 이번주에 빌렸는데 예약일 걸려서 빨리 읽어야지 싶었는데, 책을 잡으니 그냥 술술 넘어 가더라.

 

때는 1138년, 노르만 잉글랜드의 왕위 계승권을 두고 모드 황후와 스티븐 왕을 지지하는 편으로 나라가 나뉘어 내전이 한창이었다. 웨일즈 국경의 슈롭셔 지방의 슈루즈베리 역시 내전의 불길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슈루즈베리 수비대는 모드 황후를 지지하는 편이었지만, 스티븐 왕의 압도적인 군세 앞에 결국 성을 내주게 된다. 수비군의 핵심이었던 윌리엄 피챌런과 애더니 그리고 헤스딘의 아눌프 가운데 피챌런과 애더니는 도주에 성공했지만, 농성 중에 스티븐 왕을 모욕했던 아눌프는 포로로 잡히게 된다. 관대하기로 소문난 스티븐 왕이었지만, 이번에는 아눌프 일당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결국 아눌프를 필두로 한 수비대 94명이 모두 플라망 용병대에 의해 처형되어 성에 걸리게 된다.

 

이런 아수라장 속에서 캐드펠 수사는 17세 고스릭이라는 소년을 맡게 된다. 하지만 알고 이 소년 고스릭의 정체는 도주한 애더니의 영애 고디스가 아니던가. 애더니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된 스티븐 왕의 군대의 눈을 피해 캐드펠 수사가 실력을 발휘해야 할 순간이 도래했다.

 

한편, 부친 시워드와 계승권자 오라비 자일스의 행방이 묘연한 가운데, 얼라인 시워드는 자신의 소유의 군대와 영지를 스티븐 왕에게 넘겨준다. 고디스 애더니의 정혼자 휴 베링거 역시 실제 권력자 스티븐 왕에게 백기투항하지만, 스티븐 왕의 참모들은 베링어의 진의를 의심한다. 결국 스티븐 왕은 애더니의 딸이자 베링어의 정혼자인 고디스를 체포하고, 피챌런과 애더니가 빼돌린 군자금의 행방을 찾으라는 밀명을 내린다.

 

스티븐 왕의 가신 프레스코트가 처형한 슈루즈베리 수비대원들의 시신을 수습하는 가운데, 캐드펠 수사는 기이한 점을 하나 발견한다. 원래 처형당한 사람들은 모두 94명이었는데 시신이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는 처형당한 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교살당했다. 잉글랜드 내전이라는 역사적 사실 위에, 엘리스 피터스는 교묘하게 살해된 피해자의 케이스를 삽입하는 빌드업으로 소설의 긴장감을 더한다.

 

다른 축에는 캐드펠 수사와 젊은 귀족 휴 베링어의 치밀한 두뇌 싸움도 배치했다. 베링어는 캐드펠 수사를 돕는 고스릭의 정체(고디스 애더니)를 파악하고, 캐드펠의 주변을 맴돈다. 사실 이번 편은 노련한 캐드펠과 젊은 패기의 베링어 간의 싸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캐드펠 수사는 고디스의 도움으로 억울하게 죽은 니컬러스 페인트리의 신원을 밝히는데 성공하고, 그의 조력자였던 부상당한 토럴드 블런드도 구조한다. 그리고 이 와중에 94명의 처형당한 수비대원 중에 얼라인 시워드의 오라비인 자일스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이런 학살이라는 비극 가운데서도 엘리스 피터스는 두 쌍의 남녀 간에 피어나는 로맨스도 곁들이고, 페인트리를 살해하고 오두막에서 토럴드를 공격한 진범을 밝히는 과정에 개입한 캐드펠 수사의 고뇌하는 존재의 면모를 탁월하게 부각시킨다.

 

이번 편에서 어쩌면 진짜 빌런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던 휴 베링어는 캐드펠 수사의 교묘한 심리전에 말려 크게 한 방 먹는다. 서로 진심을 감추고, 덫을 놓은 걸 뻔히 알면서도 한 수 앞을 내다보는 기발한 방식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는 캐드펠 수사의 능력에 감탄했다. 역시 젊은 패기가 전직 십자군 전사로 동방을 전전하며 세상을 경험한 캐드펠 수사의 노련함에 밀렸다고 헤야 할까.

 

아무래도 12세기라는 시대적 한계 때문에 진범을 특정하는데 성공했지만, 결정적 증거 부족으로 결국 결투라는 방식의 신명재판이 진행된다. 예전에 읽은 에릭 재거의 <라스트 듀얼>이 떠올랐다. 오래 전에 영국에서 텔레비전 드라마로 만들어졌다고 하던데, 새로 만들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이 구축한 질서와 섭리가 우선하던 중세 시대에 진실을 가리기 위해 기사들이 목숨을 건 결투를 벌이는 장면은 정말 스펙터클했다.

 

전직 십자군 전사로 이교도를 상대로 한 성지탈환에 누구보다 앞섰던 캐드펠 수사는 속세를 떠나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에 정착해서, 평화의 사도로 변신했다. 하지만 결투 장면에서는 어쩔 수 없이 피가 끓어오르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캐드펠 수사가 다양한 허브를 비롯해서 약초에 정통한 것도 흥미로운 설정이다. 그는 다양한 이유로 다치고 부상당한 이들을 치료하는 '힐러'의 역할도 무난하게 수행한다. 약자를 돕는 데 있어 힐러만큼 파급력 있는 캐릭터가 또 있을까.

 

10편에서 뜬금없이 잉글랜드 내전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해서 좀 낯설었는데, 얼마 전에 주경철 선생의 <중세 유럽 이야기>에 나오는 노르만족의 잉글랜드 정복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모드 황후(마틸다)와 스티븐 왕의 권력 투쟁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나니,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역사적 배경이 좀 더 와 닿았다. 역시 이래서 사람은 읽고 배워야 하나 보다.

 

계속될 캐드펠 수사 세계관의 확장이 기대가 된다. 슈롭셔의 새로운 부 행정장관이 된 휴 베링어의 활약에 더불어, 이러저러한 사유로 등장한 다채로운 캐릭터들과의 콜라보도 주목할 만하다. 1편과 10편도 성녀의 유골 에피소드는 서로 이어지지 않는가. 이번 편에서 웨일즈를 거쳐 노르망디(?)로 도주한 모드 황후 편의 고디스 애더니와 연인 토럴드 블런드도 한 번만 쓰기에는 아까운 캐릭터들이 아닌가 말이다. 그들의 컴백을 기대해 본다.

 

아쉽게도 내가 사는 동네 관내 도서관에는 재개정판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1권과 2권 밖에 없다. 지난 가을에, 캐드펠 수사 시리즈 3권과 4권을 희망도서로 도서관에 신청했는데 도서관 예산 조기 소진으로 희망도서 선정에 실패했다. 그렇다면 내년에 다시 도전해야 하나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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