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이 1770년에 태어났다는 점이 믿기지 않아서 다시 확인했지. 베토벤, 나폴레옹하고 동년배라고 하면 어색하잖아. 어쩐지 그 이전이거나 그 이후일거 같아서 말이야. 1770년대는 괴테와 실러의 시대였다며! "문학의 혁신"이 성행하자마자 칸트는 1780년대를 <순수이성비판>과 <실천이성비판>으로 주도했어. 참으로 '계몽의 시대'를 선언하는"거야. 그런 시대에 헤겔의 나이 19세, 맙소사 헤겔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어. 저 유명한 셸링과 같은 방에서 루터파 정통 신학을 공부했다네. 그래 그 해에 프랑스 혁명 소식이 유럽을 들썩이게 했어. 헤겔도 예외가 아니었고. "어느 일요일 아침, 활짝 개인 봄날 아침 몇 명의 친구와 함께 그리 멀지 않은 들판으로 나가 거기에 한 그루의 자유의 나무를 심는" 헤겔에게 낭만주의자라는 말을 건네고 싶어지지. 젊은 세대라는 말에는 낭만의 강도와 방향이 집약되어 있어.
헤겔과 셸링, 이들은 봉건적 특권의 폐지를 요구하는 프랑스 농민들이 영주의 토지에 자유를 심은 거라고 생각했대. 헤겔의 영웅이 루소였고 자유의 나무를 심는 청년 헤겔을 떠올려봐. 전혀 '보수적 국민국가'주의자가 아닌 것처럼 보이지. 국가 숭배를 이끈 사상가라기 보다는 "자유인을 "기계의 톱니바퀴"로서 취급하는 국가의 사멸을 요구하는" 공화주의자였던거야.
의지와 자유의 문제는 고민 없이 연동되지 않지. 자유의지가 의지의 자유인가. 의지를 무엇으로 보느냐는 헤겔과 그의 시대에 중요한 윤리였어. 칸트가 Aufklarung을 통해 강조하던 바는 자신의 지성을 행사하라는 것이지. 자기 계몽은 자유의지일까, 의지의 자유일까. 내 방식대로 해석하려고 해. 자동성과 능동성. <헤겔의 영혼론>을 읽고 싶어 찾다가 곤자 다케시의 <헤겔과 그의 시대>를 몇 쪽 읽어보고 있어. 2024년 2월 11일 11시, 너네는 지금 뭘 하고 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