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의 시를 읽어보았다. 아큐정전 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루쉰의 작품을 읽어보는것은 처음이다.
간혹 시간이 많이 지난 고전을 읽다가 시대감이 느껴지지 않는 기분이 들때가 있는데 루쉰이 시가 그랬다. 오래 전 쓰여진 시라고 믿겨지지 않을만큼 표현들이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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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시간' 이라는 시에는 이런 부분이 있다.
과거가 좋다는 자, 혼자 돌아가라
미래가 좋다는 자, 나와 앞으로 가자.
무슨 소리냐는 자,
너와는 아무 말도 않겠다.
무려 1918년에 쓰인 시다. 백년 넘게 지난 시가 오늘 내 마음을 흔든다. 지금이 힘들어서 과거에 갇혀 지냈는데 이 시가 흔든다. 과거로 돌아갈수 없는데 왜 자꾸 과거로만 회귀하는지. 왕년에 를 외치는 사람들을 꼰대라고 불렀는데 내 스스로가 꼰대가 되어간다. 과거보다 미래에 기대해야 하는데. 이 시가 쓰인 그때나 지금이나 용기 없는 자들의 두려움은 같았나 보다. 또 한 루쉰의 시는 말한다. 과거와 미래에 대한 고민조차 없는 자와는 아무말도 않겠다고. 현재 내가 서 있는 자리를 점검해 보게 해주는 시였다.
루쉰의 시는 이렇게 나를 끊임없이 성찰하게 한다. 그의 시 세계는 다양해서 보이듯이 쓴 아름다운 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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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밤' 이라는 시의 이 표현들이 좋았다.
우리집 뒷마당에서 담장 밖을 보면 나무 두 그루가 보인다. 한 그루는 대추나무이고 다른 또 한 그루도 대추나무다.
그 위의 밤하늘은 기괴하고 높다. 평생 그렇게 기괴하고 높은 하늘은 본 적이 없다.
시선이 마당에서 출발해서 대추나무로 옮겨간다. 한 그루 또 한 그루. 그리고 하늘로 별로 뜰의 화초로. 이 시를 읽다가 눈을 감고 시인의 시선대로 상상해 본다. 마당에 서서 루쉰처럼 나도 나의 시선을 옮겨 본다.
때마침 지금이 가을이다. 나의 집 베란다 밖에도 대추나무가 있다. 그 대추나무에서 하늘로. 얼마나 높았으면 기괴하다 표현했을까 궁금해하면서. 끝이 보이지 않는 자연에 대한 동경인지 공포인지 알 수 없는 막연함 같은 것인지. 루쉰의 정서를 따라가 본다.
루쉰의 시들은 읽기 어렵지 않았다. 너무 어려워 읽는 동안 무슨 소린지 헷갈리는 시들이 많다. 각자 느끼는 대로 라지만 이해할 수 없는 표현들이 더 읽을 수 없게 의욕을 꺾는다. 하지만 루쉰의 산문시는 읽기 어렵지 않다. 그래서 더 다가오고 쉽게 느껴진다. 꼭 어려운 말로 채워야 수준 높은 시가 아니다. 루쉰이 시를 쓸때의 마음은, 의도는 알지 못할지언정 나는 나 나름대로 오늘 루쉰의 시를 읽는다.
밤을 헤매는 영혼에 대한 시를 읽는다. 그래서 오늘은 상상의 나래를 펴고 따라가본다.
더 풍성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