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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트레버의 단편은 조용하고 차분한데 그 조용함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의 바로 그 긴장감 같은 맛이 있다.
태풍의 눈 속의 고요 같기도 하다.
분위기의 차분함과 달리 인물들 사이에선 긴장이 흐르고 왜 이렇게 말할까 왜 이런 상황이 된것인지에 대해 빠르게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겉으로 우아하고 느린 백조지만 물 속 전쟁같은 물장구가 느껴진다고나 할까.
그래서 윌리엄 트레버의 단편은 끝까지 편안하게 느긋하게 읽을 수가 없다. 집중해서 읽는 맛, 신경을 집중해서 읽는 맛, 그것이 윌리엄 트레버의 매력이다.
괜찮아요? 괜찮은 거예요?
말투에 불안한 기색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p.269
여자는 남자에게 괜찮은지를 묻는다. 괜찮아 보이는 사람에게 묻는 질문은 당연히 아니다. 이 질문 하나만으로 비밀스런 만남을 유지하는 이 남녀의 안 좋은 상황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어떤 상황이 벌어졌기에 남자의 불안을 여자가 느끼며 괜찮냐고 거듭 묻는것이며 이 남자는 무어라 대답할까.
그는 그녀의 구겨진 외투 깃을 매만져 주었고 그녀는 그의 넥타이를 고쳐 매주었다. 이런 작은 행동들은, 말로 직접 표현한 적은 없지만 두 사람이 자기들만의 시간에 서로를 소유하는 방식이었다.
p.270
남녀의 만남은 순탄치가 않다. 둘이 함께 산 스페인 구두는 안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둘이 함께 산 의미있는 물건이 몸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은 둘의 선택이, 둘의 만남이 끝나는 시기가 온다는 것을 암시하는것 같기도 하다.
게다가 둘이 함께 한 순간에 지나가는 노파에게 줄 동전을 찾느라 잘 어울린다고 말할 기회도 놓쳤다. 작지만 중요한 순간들을 놓친다는 것 그런 것들이 결별을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
다른 사람들의 눈 때문이라고, 그가 말했다.
p.283
그는 자꾸 그녀가 더 나은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그녀의 인생을 허비하고 있다고 .
그렇게 그는 사람들의 눈을 거슬려 한다. 사람들의 불륜을 바라보는 눈.
스스로가 죄인임을 상기시켜주는 타인의 눈이 그를 자꾸 옥죈다. 그녀의 말대로 사람들 생각은 정말 중요하지 않은 것일까. 여자의 말은 불편하다. 남자가 받는 불편함이나 고통은 타인의 눈으로서 잘 표현되고 있다. 어디가나 나를 주목할것만 같은 눈, 그런 시선들이 남자가 갖는 죄책감이다. 한마디 말로도 표현될 수 있지만 짧은 눈빛으로도 우리는 감정을 표현 할 수 있다. 밀회를 즐기는 남녀의 모습이 행복하지 않고 편안하거나 로맨틱하지도 않다.
불안과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초조를 작가는 주위의 사물이나 말로도 잘 표현한다.
두 사람은 한 번도 함께인 적 없이 함께 늙어갈 것이고 주름이 그녀의 얼굴을 상하게 할 것이며 기대의 장난으로 두 눈이 흐려질 것이다.
p.285
끝을 알고 있지만 나아가는 남녀의 어두운 마음을 잘 표현한 작품이다. 내면의 심리와 좌절 특히 절망적인 심정을 잘 표현하는 작가다. 일상속의 소소한 기쁨이나 작은 슬픔을 잘 포착해 내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작가의 작품을 읽고 나면 인물의 내밀한 마음속을 여행하고 온 기분이다. 스케일이 크고 감정 표현이 확실한 작가가 있는 반면에 트레버 처럼 섬세하고 내밀하게 잘 묘사하는 작가도 있다. 인물의 눈빛이나 말투 주위의 것들까지 다 신경쓰며 집중해서 읽었던 책이다. 섬세한 책을 일고 싶을때 추천한다.
심오함이란 이런것이다 라고 알려주는 섬세문학의 결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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