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보나 작가의 책을 처음 읽어 보았다. '태도가 작품이 될 때' 를 읽어보려다가 기회를 놓친 기억이 난다.
미술의 문턱은 낮지 않다. 높다라고 하기엔 높지 않고 낮다 라고 하기엔 낮지 않다.
전문가적인 소양을 겸비해야 이해 할 수 있다고 생각도 되고 내가 느끼는 대로 바라본다 라고 생각도 된다.
하지만 미술관이나 작품을 볼 때 가장 걸림돌은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 같다. 뭘 의도한 걸까.
책을 읽을 때도 처음엔 그랬다. 이 작가가 말하려는게 무엇인가. 하지만 읽다 보니 내 스토리를 써나가는게 중요한 걸 알았다. 미술도 그렇지 않을까. 자꾸 작가의 의도대로 이해해야 제대로 이해한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거기서 벗어나도 된다. 내 스토리대로 작품을 이해하자. 그리고 이런 미술 에세이를 참고하는것, 이것 또한 도움이 된다. 나의 스토리를 넓혀가는 활동으로는 미술에세이 만한것이 없다.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쉽고 재미있다.
1994년 작업 오래된 황금 산 에서 류는 중국인의 미국이주 역사를 표현했다.
p.38
홍류는 중국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주한 작가라고 한다. 홍류의 작품 '오래 된 황금 산'은 19세기 중반 미국에서 골드러시 붐이 일었을때 철도건설을 위해 미국으로 온 중국인들의 사고를 표현한 작품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다 수백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를 표현했다. 작가는 두개의 철로를 놓고 철로가 교차되는 지점에 25만개의 포춘쿠키로 산을 쌓아 놓았다. 포춘쿠키 더미는 노동자들의 무덤을 상징한다고 한다. 의미 없이 또각또각 부러뜨리는 포춘쿠키로 작가는 무덤을 표현했다. 포춘쿠키 산을 보고 있노라니 언포춘했던 수많은 노동자들의 절규가 들리는것 같다. 절망스러운 상황을 표현한 홍류의 작품이 후손들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는 것이다.
지미 더럼은 자신을 고정된 하나의 주체와 정체성으로 표현하는 것을 기꺼이 거부한다. 다 같은 인디언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고 입체적인 개인으로 한껏 반짝인다.
p.52
표지의 사진은 지미더럼의 '나의 석상인척하는 자화상' 이다.
지미더럼은 미국원주민 출신 작가로 알려졌지만 출신이 문제가 됬다. 미국원주민이 아니라는 주장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미더럼은 이런 논란을 초월한다.
지미더럼이 2004년에 한 퍼포먼스는 관객이 사물을 가져오면 그것을 부수고 확인문서를 써주는 것이었다.
지미더럼의 형식이나 질서를 깨부수겠다는 의지로 느껴졌다.
박보나 작가는 P.57 에서 지미더럼은 '이 모순적인 폭력에 동의하지 않고 새로운 방향을 짚는다' 라고 말한다.
박보나 작가가 소개하는 작품들을 가만히 보다 보니 하나의 공통점이 느껴졌다.
새로운 것들, 기존 질서에 새로움을 던지는 작품들,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주제들 .
지미더럼의 작품이 특히 그랬다. 원주민도 미국인도 아니라고 부정당하는 외로움속에서 그가 행하는 퍼포먼스나 작품들에는 자유로움이나 쿨함또한 느껴졌다.
조은지의 '개농장 콘서트' 는 아주 강력했다.
뜬장에 갇혀있는 개들 앞에서 노래와 연주를 하는 작가의 퍼포먼스인데 연주하는 사람과 그런 사람을 보는 개들의 모습과 그 뒤로 높이 솟아 있는 아파트가 묘하게 놓여있다.
이 작품을 보며 개들의 삶 , 개들을 사육하는 삶, 그리고 그런 환경을 바라보는 작가의 마음이 어떤것일까 생각해보게 됬다. 컹컹 짖는 개들의 뜬장 앞에 선 작가의 노래는 어떠했을까. 마음이 무거워진다.
전혀 상관없는 사물들로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소리가 자연의 음을 대체하는 광경은, 그동안 우리가 진짜라고 믿어왔던 모든 생생한 영상 이미지들이 가짜일수도 있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p.98
박보나 작가의 '코타키나 블루1' 의 작품 에서는 폴리아티스트 이창호씨가 여러가지 사물을 이용해서 자연의 소리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옆방에서 사람들은 들려오는 소리로 여러 자연경관을 상상한다.
내가 실재라고 믿었던 것들이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소리라는것을 사람들이 깨닫게 되는 순간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할까 궁금해졌다.
아 가짜였네 라고 말할까 아니면 아닌데 내가 들은 소리는 진짜 자연의 소리였는데 라고 말할까 아니면 다 사기 라고 말할까. 자기가 듣고 싶은대로 듣고 자기가 생각하고 싶은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싶은대로 말하는 악질 현대인들 몇몇이 떠오른다. 실재로 들은것이라 본것이라 우겨 가짜뉴스들을 생성해내는 무책임한 인간들도 떠오른다.
무엇이든지 만들어낼수 있는 시대다. 인공이 자연을 대체할 수 도 있는 시대다. 우리가 본것 과 들은 것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무엇이 중요할까. 내가 보고 들은것만이 진짜라고 우기는 아집이 결국은 나를 파괴하는 시대지만 사람들은 잘 모른다. 나의 덫이 나를 잡지 않게 되기를. 제발 인정할 수 있는 용기들을 갖게 되길 바란다.
아 뭐지. 박보나 작가의 에세이를 읽다 보니 생각이 자꾸 확장된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을 직접 다 보고 듣고 싶어진다.
태도가 작품이 될때 도 찾아봐야겠다. 그리고 이 책에서 언급된 다른 작가들의 작품도 찾아봐야 겠다.
좋은 책 한권이 주는 굉장한 영향력이란.
#이름없는것도부른다면
#박보나
#미술에세이
#하니포터1기
#한겨레출판
#독서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