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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연 시인은 내게 필사의 기쁨을 알려준 시인이다.
시를 힘들어 하는 나는 시를 읽을 때 너무 힘이 든다.
시를 시로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꾸 뜻을 캐기 때문인것 같다.
이 단어는 어떻게 쓰인건지 어떤 것을 함축하고 있는 것인지. 갑자기 이 단어가 왜 나온건지.
제대로 받아들이고 싶어서 자꾸 캐고 분해한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학창시절 시교육이 그랬음이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한 페이지 넘기기가 힘들고 자꾸 그 단어에만 머물다 시집을 덮곤 했다.
어느 날 큰 맘먹고 어떤 서점에서 하는 시집 필사프로그램을 선택하고 내가 고른 시집이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이다.
물론 시집 한 권 필사를 다 마치지 못했지만 삼분의 일이나 완성했다. 너무 읽고 싶은데 자꾸 집중이 안되는 마음 그것이 시에 대한 나의 마음이다. 안희연 시인의 산문집이 나오자마자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산문을 읽으면 내가 미처 읽지 못한 시인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을것 같은 욕심이 생겼다.
코알라에게는 코알라의 잔이 있고 나무늘보에게는 나무늘보의 잔이 있고 나에게는 나에게 어울리는 잔이 있다는 것. 그것이 운명의 한계로 오인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가 잔의 외형이나 크기로 인해 차별당하거나 파괴당하지 않도록 서로가 서로의 규모를 존중하면서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단어의 집 p.25
나에게 어울리는 나의 잔을 찾는 과정 나는 그게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코알라의 행동을 인정헤주고 나무늘보의 속도를 이해해 주는 그리고 나 또한 어울려 잘 살아가면서 나의 잔을 만들어가는 일.
계속 남이 가진 잔들이 신경쓰이고 부러워지는 요즘인데 이 문장에 오래 머물렀다. 안희연 시인처럼 나도 잠시 책을 덮고 생각해 빠졌다. 이거 생각보다 쉽지 않은데. 나의 잔은 왜 이렇게 작은지. 왜 크리스탈이 아닌지. 왜 단단하지 않은지..왜 내 잔속에 채워지는 것들은 이렇게 허술한 것 투성이인지.
어떻게 나를 끌어올려야 할지 모르는 요즘, 계속 실패경험을 하고 있는 요즘 이 문장이 나에게 잠시 깁스 같은 역할을 한다. 마음의 인대가 다친것 같아 한껏 비틀거리고 있다. 빨리 낫기 만을 바랬지만 결국 중요 한게 바뀌지 않으면 나는 또 인대를 다치겠지. '나에게는 나에게 어울리는 잔이 있다는 것' 이 문장이 결국 나에게 깁스가 된것 같다.
" 하지만 날아오른 풍선은 날아가는 시간만큼 다른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 p.29 "
생활은 구체적인 결정과 책임들로 굴러가는 것이고 그래서 엄중할 수밖에 없으니 적어도 소망만큼은 추상의 자리에 두고 싶은 까닭이다.
p.82
작가의 소망은 살짝 추상적이었다. '다정해지기' 나 '알록달록해지기' 라던지. 다소 혼란스러웠다. 내가 알고 있는 계획은 증거로 증명할 수 있는 것들이었는데 다이어트 해서 몇키로그램 빼기 라던지 평균 몇점 올리기 라던지 영어 자격증 따기 라던지. 매해 말에 또 지키지 못했다며 자조하곤 했는데 그리고 그런 숙제와도 같은 계획들은 가뿐하게 이월되곤 했었는데 나를 한계로 몰아가는 계획들이 그 동안 나를 얼마나 옥죄어 왔는가 알게 됬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것 나의 잔을 만드는것 자체가 알록달록 해지기 위해서 아니였던가. 왜 이렇게 수많은 증거들을 수집하고 그 증거들로 내가 열심히 살았다고 증명하려 했었는지. 또 한번 깨닫는다.
"아는 이야기는 언제든 모르는 이야기가 된다. p.94 "
내가 진실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 이면에는 항상 다른 이야기들이 있다. 내가 얼마나 내가 보고 싶은것만 보고 살았는지 듣고 싶은것만 기억하고 싶은것만 기억하고 살았는지에 대한 사유다.
작가는 어릴적 어머니의 교통사고 기억을 끄집에 내는 과정에거 다른 사실들을 알게 된다. 나의 안온한 기억 속에 다른 사람의 희생이 있었던 걸 아는 순간. 얼마나 미안해졌을까 아마 내가 갈색이 되도록 울고 싶어졌을꺼다.
내가 바라보는 면 뒷편으로는 다른 이들의 노고와 희생이 있을 수도 있다. 내가 무심코 받아먹었던 달콤한 음식들 이면에 어떤 고생들이 있었는지 갑자기 더듬어 생각하게 된다.
결국 내가 살아가면서 보다 성실하게 기록해야할 것은 숱한 실패담 사이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비김의 순간들 이 아닐까.
p.156
나는 실패가 더 많은 삶을 살고 있고 앞으로도 크게 성공할 자신도 없다. 그냥 묻어가는 정도로의 승리정도면 된다. 남을 짓밟아 승리하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연달아 패배하고 싶지도 않은데 이런 '비김' 이라는 입장은 나같은 사람들에게 최적의 진단인 듯 하다. 비김이라니 정말 근사한 말이다. 비겼으니 다음에 이기면 되고 지금 진게 아니니 다음에 또 져도 크게 상처 받을것 같지 않은 판정.
앞으로도 이겼어도 비긴것이라고 졌어도 비긴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들이 많아질 것 같다. 욕심없이 늘 비기고만 살고 싶다. 안희연시인의 산문집 여러곳에서 나는 내게 필요한 깁스를 제공 받았다. 비틀 비틀 했었는데
시인의 여러가지 사유들이 나를 지지해준다. 이런 지지를 받는 책 오랜만이다.
(한겨레출판 하니포터1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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