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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선의 서재
  • 나의 아름다움과 너의 아름다움이 다를지언정
  • 최현우
  • 13,500원 (10%750)
  • 2021-11-05
  • : 416



진한 회색표지에 콕콕 박힌 발자국같은 보라색 글자들을 만져봤다. 예쁘다. 책이 예쁘다. 소장하고 싶은 책 표지다.

진한 어둠속에 누군가 보라색 글자들을 쿵쿵 찍고 간것 같다.

식물의 엑스레이 사진같다. 다 들여다보이는. 사람의 속을 투명하게 비춰주는. 누구나 겉모습은 다르지만 엑스레이 사진만은 대동소이 할 듯하다. 재물이나 명예가 엑스레이에 비치지는 않으니까. 그러고 보면 다 비슷한데 왜 우리는 이렇게 아둥바둥하나 라는 도돌이표같은 질문에 봉착한다.

색깔을 뺀 이 표지를 바라보며 이 계절에 눈이 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나무 근처에 날리는 흰 움직임은 생명체일까 눈일까 아니면 붓터치일까. 아니면 누구의 숨일까.



'나의 아름다움과 너의 아름다움이 다를지언정' 뒤에는 어떤 문장이 올까.

서로를 인정하자? 둘다 아름답다? 시인의 단어가 와야 할텐데 정서에 시가 없는 나는 알맞은 문장을 못찾겠다.

시인의 산문은 예쁘다. 한마디 한마디가 곱고 단아하고 예쁘다. 같은 현상을 봐라봐도 시인의 시선은

날뛰지 않고 '자자 진정하고..' 로 마음을 한번 가다듬고 쓰는것 같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아싸 기뻐 를 외치며 모든 문장에 감정을 고스란히 거울처럼 쏟아 놓는 나로서는 시인의 산문앞에서는 조금 주저한다.

시인의 산문을 테이블 위에 놓고 또 말했다. 자자 진정하고 침착하고 흥분 가라 앉히고 화도 들뜸도 좀 누르고 시인의 산문을 읽어보자고. 여긴 나같은 분위기 아니니까는.

고작 여섯 평이었지만, 어떤 우주는 여섯 평으로도 충분했다.

p.18

시인의 우주는 여섯평이었다. 독립을 해서 살았던 여섯 평의 우주에서 시인은 많은 일을 겪는다. 독립은 쉽지 않다. 그냥 몸만 떨어져 나가면 될 거라고 막연히 생각하지만 경제적으로도 매우 힘들어지고 노동도 겹겹이 다가온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 미처 대처하지 못했던 상황들이 매일매일 한건씩 찾아온다. 사춘기를 벗어나 성인이 됬다고 다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던 치기는 생활 앞에서 무너진다. 세상은 친절하지 않았다는걸 느끼게 된다. 하지만 돌파구를 찾으며 내 세계도 강해진다. 나의 진지를 구축하는일 적이 쳐들어와도 비가 새도 바람이 불어도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내어줄것은 내어주는일, 내어준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일, 그리고 기회를 봐서 내것을 취하는일. 그렇게 내 성을 쌓아가며 영토를 넓히는것. 그런 독립은 여섯평이어도 충분하다.

게다가 시인의 곁에는 불광천이 있었다,

물을 따라 걷는 일은 무한히 지루할 수 있는 동행자와 걷는 일이니까. 물의 방향으로 걸었다.

p.19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에는 관점이 가장 중요하다. 나에게 생긴 일을 어떤 식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날 있었던 나의 비극은 배움이 될 수 있고 나의 희극은 겸손이 될 수 있다. 내가 더 성장하는일, 나에게 다가온 일들을 소화시키는일 그런 일들을 이 글들을 통해 배웠다.

큰 사거리의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차들이 나를 향해 빵빵거리기 시작했다. 놀라서 차를 보니 어떤 운전자가 내 뒤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목줄을 어떻게 끊고 왔으며 언제부터 따라왔는지 모를 커피색 흰 양말 강아지가 아주 해맑게 나를 보며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오다가 어디 개나리 화단에서 구르고 왔는지 들줄기에 노란 꽃잎을 잔뜩 묻히고서는.

p.101

정 없게 버려진 강아지를 우연히 발견하고 작가는 고민한다.

키울 수 있는 형편이 됬으면 고민하지 않았겠지. 가족이 한명 더 생기는 일이니 신중하고 애써 안고 싶은 마음을 누르는 거겠지. 아쉽게 돌아서는 발걸음이 어떻게 떨어졌을까. 봄은 찬란한데 걸음은 초라했을것이다. 하지만 세상의 만남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강아지는 자기와 같이 살 사람의 마음을 알아봤는지 묶어 놓은 줄을 끊고 작가를 따라왔다. 줄을 끊고 따라가는 길은 쉽지 않았을거다. 아직 2개월된 강아지 였으니 다리들이 짧았을거고 느렸을거고 사람을 따라가는 길에 구르고 헛디딜만한 비탈들이 있엇을테니. 필사적인 추격을 작가는 알아봤을것이다.

선물같이 꽃잎을 잔뜩 묻힌 강아지는 그 순간 작가에게로 와서 코코가 된다.

동물을 길에 버리는 마음도 버려진 동물을 외면할 수 없어서 발이 안떨어졌던 마음도 가족이 되고 싶어 구르며 따라갔던 강아지의 마음도 그리고 울컥하며 안았을 작가의 마음도 봄을 지나가는 온 마음이 읽혀진다.





그렇다.

나도 상계동에 살았다. 작가는 지금은 노원 롯데백화점이 된 미도파 백화점을 추억했다.

내가 조금 더 먼저 살았으니 잠시 라떼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내가 처음 상계동에 가서 본것은 노원역이다. 당시 아파트가 들어설 자리에 지어진 모델 하우스를 보러간건지 아파트가 지어질 위치를 보러 간것인지는 기억 나지 않지만 내가 처음 본 기억은 노원역이다. 노원역 뿐이었으니까.

끝도 안보이는 황폐한 땅위에 노원역만 있었다. 그 날은 비가 와서 땅마저 질퍽했다. 그 질퍽한 땅을 걸으며 여기에 아파트가 들어선다고. 라며 믿기지 않는 광경 들을 봤던것.

질퍽하고 아무 것도 없는 넓고 넓은 진흙밭을 봤던 나는 몇년 뒤 아파트만 지어진 상계동에 이사왔고 상가도 거리도 조성되지 않았던 신도시를 정 없게 걸어다녔다. 어느 날 우리동네에 백화점이 지어진다고 아이들이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동네에 백화점이 지어진다니 그것도 미도파 백화점이. 미도파 백화점은 명동에나 가야 볼 수 있었던 고급 백화점 아니었던가. 드디어 백화점이 오픈하는 날, 감히 들아가보지 못하고 그 반짝임 찬란함에 기죽어 한참이나 지나 엄마손을 잡고 들어갔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다렸다는 듯이 노원의 번화가가 만들어졌다.

나와 바슷한 시기의 기억을 공유해주어서 고향친구 만난듯이 반가웠다. 내가 미도파 백화점이 신기해서

상계동의 황폐함을 기억하고 있는 나로서는 이런 새 문물이 신기해서 바라보고 있었을 때 작가는 이 미도파 백화점을 잘 이용하고 즐겼던것 같아 우리가 마치 한 장소에 있었던 건 아닐까 잠시 생각해보았다.


당신에게 첼로는 가고 싶은 곳이었을까요

어쩌면 어딘가에서 아직 첼로를 연주하고 있을까요 나도 언젠가 첼로를 끌어안고 그런 음악을 연주하고 있을까요

첼로를 연주하는 자세는 마치 사람이 사람을 안아주듯이 껴안는 모습이니까요.

P.176

정미경 작가의 '새벽까지 희미하게' 에 나오는 송이 라는 인물은 나무를 안고 충전을 한다. 기운을 받는 행위같은것이다. 커다란 나무를 안는 마음. 나무가 주는 편안함. 그런 순간이 충전이라고 믿는 송이의 마음이 갑자기 떠올랐다.

나무의 향기, 울퉁불퉁한 결, 혹은 냄새 아니면 살아있으되 충고하지 않고 가만히 들어만주는 일방적인 소통에 송이는 위로받았을까 생각했었는데 작가의 시선속에 송이의 마음 또한 생각난다.

앞으로 첼로 연주를 듣고 볼때는 최현우 시인이 떠오를것 같다. 첼로를 사람이 사람을 안는것같다고 표현했던 그 시인은 지금 어디에서 어떤 작품을 쓰고 있을까 라고.

그래서 그렇게 첼로의 소리가 낮았구나. 음 난 괜찮아. 안아줘서 고마워 나도 내소리를 내볼께 하며 낮게 속삭이는 소리같았구나.

첼로 소리마저 다르게 들리게 될것 같다. 또 한번 내 세계가 업그레이드 된다.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안은 작가만의 무게로 이 산문집은 즐겁다. 또 슬프다. 코코를 생각하게 되고 죽은자도 생각하게 되고 이젠 사용할 일 없는 이성에 대한 설렘도 떠올려보게 된다. 부모와 독립과 가난과 추억도 있다. 정의도 있다.

사랑의 자세를 가지고 세상과 모두에게 화평하여지자고 말하는 건 너무나 허무하고 맹랑한 생각이라는 걸 안다. 철없고 우습다. 우리는 각자 하나의 우주고 섞일 수 없는 고유의 세계다. 그러나 언젠가 한 번쯤은 각자의 극장 속에서 상대의 무게를 조금 지탱해주는 저린 어깨가 될 수는 없을까.

P.220

작가가 말한다 나를 잊으면 사랑이 되고 너를 잊으면 이별이 된다고(P.209)

이 문장을 몇번이나 다시 읽는다. 나를 잊고 그리고 너를 잊고 그리고 너를 잊었던 것을 다시 잊고

그렇게 우리는 몇번이나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단단해지는 나는 이제 사랑이 두렵지 않다. 너와 내가 다르고 너와 내가 모두 아름답다는 걸 배웠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아름답다.

나의 아름다움과 너의 아름다움이 다를지언정 거기에 우열은 없다.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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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출판 서평단 하니포터1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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