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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에 걸린지 11일째, 약을 먹기 시작한지 5일째, 항생제까지 먹기 시작한 첫 날입니다.

돈이 남의 호주머니에서 내 호주머니로 오는 건 녹록치 않다고, 가끔씩 타는 택시 기사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곤 합니다. 아침에 타는 택시에서도, 야근 후 밤중에 타는 택시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동질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한 개인의 내밀한 이야기를 왜 읽기로 했는지, 이 책이 출간된지는 알고 있었고, 가족사가 들어있다는 것도, 슬픔이 들어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는데. 힘이 빠진 여름 날에 이 책을 읽고 있습니다.

오히려 항생제를 먹은 날부터 읽기 시작해서 다행일까요? 내 몸의 면역력이 떨어져있지만, 견디기 어려운 내용을 읽더라도 항생제가 나를 지켜줄까요?

나의 직업에서 “일과가 끝나면 갖고 있던 생명이 일정량 빠져나간 것을 느꼈다. 나는 생명을 깎아 일하고 있구나.” 까지는 같지만, “내 생명을 받아간 사람들이 그 힘으로 좀더 살기로 했다면, 나는 잘 쓰이고 있는 걸까.“는 완전히 전제가 다릅니다. ”내 생명을 받아간 사람들“은 자신의 호의호식을 위해 치사하게 산 사람들도 많고, 무엇보다 하고 있는 일이 사람들을 살리는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내 호주머니에 들어온 돈으로는 가끔, 일부를 사람들을 살리는, 아니 사람들을 응원하는 일에 쓰고 싶어 합니다. 지나가는 바람이 시원하게 하듯, 떠가는 구름이 땡볕에 그늘을 드리우듯, 아주 잠시라도 나의 응원으로 잠시라도 마음을 놓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생명을 깎아 일하는“ 나의 생명은, 직장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지구 상의 누군가에게로 갔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아직은 이 책에 대해서 무어라 쓸 수 있을만큼, 읽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이랑 작가가 ’엄마’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따스함과 객관적인 고찰이 들어있다고 생각합니다. 최대한 한 명이 여성으로, 여성이 살았던 시대적 배경과 환경과 인생의 맥락을 짚으면서, 나와 ‘엄마‘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고찰합니다.

왜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보고 들어야 할까. 매일 잠들기 전, 다음날의 일과를 앞두고 이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해가 뜨면 어떤 장소에 나타나 사람들 앞에 내 몸을 보이고, 목소리를 높여 말과 노래를 뱉었다. 일과가 끝나면 갖고 있던 생명이 일정량 빠져나간 것을 느꼈다. 나는 생명을 깎아 일하고 있구나. 내 생명을 받아간 사람들이 그 힘으로 좀더 살기로 했다면, 나는 잘 쓰이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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