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달력을 떼어내고 새 달력을 걸어놓는다.
감개가 무량할 만큼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화장실에 수건을 바꿔놓는 것과는 역시 차원이 다르다. 날짜 지난 달력을 곧바로 휴지통에 쑤셔 넣지 못하고 조심스레 어루만지거나 한 장 한 장 넘겨본다.
나는 하루가 지나면 넘겨버리는 일력이 아닌, 한 달 단위로 된 꽤 큰 달력을 쓰고 있다. 날짜 밑에 메모를 할 수 있는 네모난 칸이 있어서 거기에 그날 일정을 써넣는 식이다. 끝이 말려 올라간 달력에 빨간 색연필이나 볼펜으로 쓴 열두 달의 기록을 보고 있자면, 그날 그런 일이 있었지 하고 바로 기억이 떠오르기도 한다.
하얗게 비어 있어 뭘 했는지 알 수 없는 날도 있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특별한 일도 없이 그저 맥없이 보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써넣지 않았을 뿐 곰곰이 생각해보면 작더라도 반짝 빛나는 무언가를 발견한 날인지도 모른다. 밥알에 섞인 돌을 무심코 씹은 것 같은 사소한 불쾌감을 나도 모르게 잊어버린 날일 수도 있다.
지나고 나면 이미 떠올릴 수조차 없는 시간과 감정이 겹겹이 쌓인 게 바로, 한 해가 끝나갈 무렵의 날짜 지난 달력인 것이다. 그냥 가지고 있을까 하는 미련을 떨쳐버리듯 조금 사납게 휴지통에 던져 넣는다. 그러고는 못이 튼튼한지 확인하고 새해의 새하얀 달력을 건다.